‘코스텔린’은 생각지 못한 따뜻함과 부드러움에 잠에서 깨어났다.
한순간 커미사르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
포로가 된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네크론들은 절대 포로를 편안한 침대에 눕히지 않는다.
커미사르의 외투와 군화는 가지런히 벗어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오른쪽 옆구리의 날카로운 통증에 움찔거렸다.
부상을 당한 것 같았고 상처를 덮은 응급 인공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 느꼈다.
고통의 감각이 그가 겪은 일련의 경험을 상기시켰지만 어지러운 머릿 속에서 그의 기억들은 뒤죽박죽이었다.
광산의 갱도를 기어오르던 걸 기억했다. 그는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손의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그때 한쌍의 장갑 낀 손에 의해 끌어올려졌고, 어두운 갱도에서 밖의 불빛을 보았던 걸 기억했다.
그 다음에는 필사적인 추격전이 있었고...
‘코스텔린’은 우주공항의 개인 사무실보다 조금 큰 방에 있었다.
빨간 촛불의 불꽃이 낡은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오는 듯 창문에 물방울이 부딪히고 있었다.
그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누더기를 입고 팔걸이를 하며 졸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침대에 옆 앉아 그를 지켜보는 사람은 해골 방독면을 쓴 그레네이더 병사였다.
“성공했나?”
그가 힘없이 물었다.
“발전소는 파괴했어?”
그레네디어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코스텔린’은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베개에 쓰러졌다.
다시 잠에 빠질 것 같았지만 그는 엄습하는 의식불명에 저항했다.
그리고 녹색 눈을 가진 네크론 거미를 기억했다.
“얼마나?”
그가 병사에게 물었다.
“생존자는 얼마나 남았지?”
“우리 둘뿐입니다.”
그레네디어가 말했다.
그리고 ‘코스텔린’은 눈이 감겼다.
마치 긴 터널에서 메아리가 울리듯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랑 당신 뿐입니다, 커미사르님. 우리가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그가 두 번째로 깨어났을 때, 한 노파가 그의 이마를 씻고 있었다.
지긋한 나이에 얼굴에는 옛날 병을 앓았는지 곰보자국을 볼 수 있었다.
‘코스텔린’은 시민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목이 너무 말라버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노파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차가운 물 한 컵을 가져다 주었다.
갱도를 빠져나온 뒤 커미사르와 그레네디어 소대는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5개 분대로 나눠 도시로 흩어졌었다.
소대를 쫓는건 공중부양하는 고속의 네크론이었고
놈의 이중총열의 가우스캐논은 크리그 병사들을 하나하나 사냥해댔다.
거의 50명의 그레네디어들이 갱도 입구에서 출발했고 30분도 채 안되어 발전기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 끔찍한 적이었다.
악몽 속에서 그는 전투를 떠올렸다.
제국의 경전차 크기의 기계거미들이 발전소 건물에서 기어 나왔다.
뒤를 쫓는 네크론들처럼 놈들도 땅 위에 떠 있었지만, 움직임은 더 느리고 몸은 무겁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미들은 그레네이더들의 헬건 사격을 가볍게 회피하고 너무도 빨리 그들에게 접근했다.
‘코스텔린’이 세 번째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는 이미 그쳤고 셔터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숨죽여 속삭이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이게 우리가 살 기회야.”
동그란 얼굴의 간호인의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까진 괜찮지만.. 적들을 숨긴 걸 들키면 큰일이 날거라구요.”
“난 못하겠어.”
‘코스텔린’에게는 생소한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 간호인의 친구인 것 같았다.
“황제께서 날 벌하신다고 해도 이건..”
“아까 마스크를 쓴 사람 말을 들었잖아. 네크론과 싸우고 있다고.”
“게다가 생각해봐. 지금 남은 식량도 거의 없잖아.
우리가 저 사람들을 간호해주면 먹을 거라도 떨어지냐?”
다시 눈이 감겼다.
“이제 기억 나는군.”
‘코스텔린’이 말했다.
그는 침대에 앉아서 머그잔을 홀짝거렸다.
“내 앞에 있던 병사를.. 거미가 목을 찢어버렸어. 그 다음엔
내가 권총으로 큰 구멍을 냈었고.. 분명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무슨 명령이십니까, 커미사르님?”
생존한 그레네이더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코스텔린’은 고개를 저으며 여러개의 녹색 눈을 가진 네크론의 이미지를 떨쳐버리려 애썼다.
그의 옆구리 시큰거리며 아팠다.
“모르겠군.”
그가 말했다.
“우리 임무는 여기서 끝났다는 건 확실하네. 어쩌면 그냥 -”
“외람되지만, 커미사르님..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실 수 있습니까?
적들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알았으면 진작에 우릴 발견했을 겁니다.
우리 중 한 사람만 발전소를 통과할 수 있어도 충분히 파괴는 가능합니다.”
“시한 폭탄을 가지고 있나?”
“없습니다. 그게 있었더라면 저는 계속 싸웠을겁니다.”
“그걸 잃어버린 것에 대해 감사해야겠군. 그래서 자네가 날 구해준거니까.”
“커미사르님은 부상을 당했었고 혼수상태였습니다. 저도 지금 승산이 부족하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임무를 끝내지 않는다면, 발전소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크리그 병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그 네크론들은 갱도 터널을 통해 또 다른 침입자를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미 백 명의 병사들이 실패한 작전을 고작 두 사람이 시도한다는 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코스텔린’이 말했다.
“이미 폭탄도 없지 않나? 마지막 장소에서 다시 챙길 수만 있다면..”
그레네디어가 고개를 저였다.
“오늘 새벽에 가능한 한 발전소로 접근했습니다.
대부분 전우들은 가우스 무기에 파괴되어있었습니다."
"온전한 시체 몇 구를 발견했는데 불행히도 -”
“폭탄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겠군.”
‘코스텔린’이 추측했다.
“하지만 소중한 건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레네디어가 말했고 ‘코스텔린’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크리그 병사는 그의 검은 군복 외투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고,
‘커미사르’는 그것이 열리기 전에 뭘 담고 있는 것인지 알수 있었다.
“이제 쓰러진 전우들은 언제나 함께 있을 겁니다.”
그레네디어는 전사한 전우들의 뼛조각 수집품을 보이며 말했다.
“그들의 영혼이 우리의 승리와 함께 할겁니다.”
“그 여자들은?”
‘코스텔린’이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
“내가.. 처음 몇 번인가 깨어났을 때, 여자 두명이 있었어.”
“예, 그 두 사람이 우릴 구해줬습니다, 커미사르님. 두 사람은 적과 싸우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말하길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숨어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어디 있지?”
“우리에게 줄 식량을 구하러 갔습니다. 두 사람이 말하길 네크론은 생존자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코스텔린’은 구석에 있는 작은 난로 위의 선반에 그대로 놓인 통조림들을 보았다.
“여기서 나가야 해.”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들은 꼼짝않는 바리케이트를 만나기 전까지 8개의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코스텔린’은 어쨌든 조급하게 힘을 썼기에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앉아 자신의 데이터 슬레이트에 있는 갱도 터널 지도를 살펴봤다.
“우리가 왔던 입구로 돌아갈 수는 없어. 하지만 여기 몇 개 입구가 더 있군.”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레네디어가 물었다.
“자신은 없네. 이 지도는 정확하지 않으니까.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야할지도 모르고,
네크론들이 고가도로를 파괴하지 않았기를 기도해야겠지.”
“노파들이 생존자들 사이에 정보원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들이 그 정보원이라고 생각되네.”
‘코스텔린’이 말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위험요소가 사방에 있을거야.”
커미사르는 벌써 그의 외투와 모자를 벗어 던지고 있었다.
“이게 제국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되네.”
그레네디어는 예사롭지 않은 침묵 속에서 외투를 벗는 그를 응시했다.
“군복 말이야, 병사. 네가 말했잖아? 네크론들은 병사들은 공격하지만 민간인은 무시한다고.
우리가 이 도시에서 안전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려면, 군인신분을 숨겨야해.”
그래서 두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 버려진 옷가지들을 뒤져서 무기와 권총집을 감추기 쉬운 긴 외투들을 찾아다녔다.
‘코스텔린’은 군화를 운동화 한 켤레로 바꿔 신었지만, 크리그 병사에게도 그렇게해라 고집하지는 않았다.
커미사르는 플라즈마 권총과 권총집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체인소드는 외투에 숨기기에 너무도 컸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때를 기약하며 건물의 바닥판 밑에 그의 군복과 함께 고이 숨겨야했다.
그레네디어는 처음에 그의 외투를 군낭 위에 걸치려고 애썼고 가능한 한 많은 군장비를 챙기려 했다.
그는 호주머니에 파편 수류탄, 의료용품, 라스건 정비 도구, 심지어 예비 신발과 개인 손질 도구까지 쑤셔 넣었다.
부피가 큰 헬건도 문제였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비무장 상태가 되는 것이므로
누군가 병사의 오른쪽 다리를 너무 쳐다보지 않기를 기도해야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방독면과 공기여과기였다.
그리고 그레네디어가 방독면을 벗자 ‘코스텔린’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너무나 어린 병사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연대에서 가장 경험 많은 크리그 병사만이 그레네디어 부대에 배속된다지만 이 병사는 19살도 채 안 된 청소년이었다.
그의 창백한 뺨에는 여드름이, 머리카락은 갸름하고 기름졌고,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얼굴은 일생 동안
써온 방독면의 보안경과 똑같이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움직일 준비를 마쳤고, 추운 저녁 황제를 향한 짧은 기도를 함께했다.
그들은 두 번째로 가까운 갱도 입구로 향했다.
그것은 도심쪽에 있었고 네크론의 무덤과 가까운 곳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자주 지도를 보고 상의했다.
그리고 두사람은 곧 자신들이 목적 없이 거니는 피난민처럼 보이는 게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
고가도로를 걸으며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쳐야했다.
오후가 되자, 그들의 지도는 유용성의 한계에 다다랐고, 두 사람은 거주구역을 수색했다.
그들은 겁에 질려 칼로 위협하는 앙상한 수염쟁이 남자를 발견했고
그를 궁지에 몰아넣어 빈 건물로 걷어차 무장 해제시켰다.
‘코스텔린’은 그 남자를 진정시켜 길안내를 요구하려 했으나 남자는 정신이 나간 듯 이상한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는 복도를 좀더 내려가면 임신한 10대 소녀가 있으니 그녀를 데려가 달라고 그들에게 간청했다.
그 남자의 헛소리에서 광산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층 위거나 몇층 더 위였다.
밖에서 그들은 정찰 중인 네 마리 네크론과 마주쳤고 숨기에는 늦은 상황에서 맞닥뜨렸다.
두 사람은 움츠러들었지만 네크론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두 사람을 지나갔다. ‘코스텔린’은 헬건에
손을 뻗는 그레네디어의 긴장한 행동을 읽을 수 있었고, 조용히 무기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그들은 잔해더미에서 고장 난 비디오 플레이어를 고치고 있는 약탈자 한명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약탈에 집중하느라 두 사람이 바로 뒤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 남자아 거래하기로 결정하고
‘코스텔린’은 또 다시 무기를 겨누려는 병사를 막아야만 했다.
커미사르는 그의 오래된 손목시계를 주는 댓가로 약탈자에게 갱도 입구의 정확한 위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위를 가리키고 그곳에 도착하려면 무너진 고가도로를 우회해야하고 그럴려면 10층을 내려가야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한 그들에게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경고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중노동을 하고 있는 노예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두 사람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휘봉을 휘두르는 주인들이 잠시 자리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고분고분하게 기계적으로 계속 잔해를 부수고 있었다.
그레네디어는 뒤에서 그 중 한 명을 붙잡아서,
그가 소리 지르기도 전에 입을 손으로 막고 그를 조용한 거주 구역으로 끌고 갔는데,
노예는 자신을 포로로 잡은 두 사람을 향해 욕하고 발로 차며 위협적으로 덤벼들었다.
노예의 모욕적 언행에 그레네디어는 다시 총을 겨눴고 이번에는 아무도 보지 않기에 ‘코스텔린’은 굳이 막지 않았다.
노예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신들이, 강철의 신들이, 칭송하는 대사제 ’아마레스‘님이 우릴 대신전으로 안내할거다.
어젯밤 영광스러운 소식을 가지고 차를 몰며 설교하셨다.”
라고 광적으로 떠들어댔다.
‘코스텔린’은 그것보다 노예들의 교대시간에 더 관심이 많았고 비록 그의 의중을 들킬까봐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노예들이 일하는 주변 광산의 입구가 언젠가는 자리가 비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노예의 형편없는 대답을 듣고나서 그는 그레네디어와 눈을 마주쳤다.
“조용히 처리해.”
그가 덧붙였다.
노예는 단검을 보자 분노에 찬 비명을 질렀고 앙상한 체격과 다르게 격렬하게 몸부림치면서 두 사람에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그가 숭배하는 외계의 신이 하인들에게 명령해 자신의 복수를 할 것이라는 모욕과 위협을 뱉어댔다.
곧 능숙하고 재빠르게 그레네디어는 노예의 목을 베어 저주받은 입을 영원히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내려다보며 그레네디어는 혐오감에 입술을 오므렸다.
그건 ‘코스텔린’이 이 젊은 크리그 병사의 얼굴에서 본 첫 인간다운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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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의 유머 포인트
1. 유일하게 살아남은 크리그 정예병이 마스크를 벗자
고작 중고딩 나이라는 거에 경악하는 커미사르
2. 피난민으로 신분을 위장한 뒤에 뭐만하면
총부터 겨누고보는 병사를 자제시키는 커미사르의 애처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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