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가 말을 마치자 신전 뒤 어딘가에서 폭발의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아났다.
감독관이 수류탄의 처리를 끝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렉스’는 그 폭음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있었다.
‘테일러’의 거짓말은 그에게 시간을 벌어주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이 두 가지에 감사했지만 곧 빨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지않을 수 없었다.
‘아마레스’는 휘파람으로 행성방위군의 군용트럭을 불렀다. 그의 교세가 나날히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렉스’와 ‘테일러’는 에메랄드 빛 옷을 입은 사제들이게 둘러싸여 수갑이 채워지고 트럭 뒤에 묶였다.
“‘신들의 거처’는 멀지않다.”
‘테일러’가 오늘 아침 걸어갔던 길을 이젠 두 사람이 트럭에 묶여 함께 걸었다.
‘아렉스’가 처음으로 검은 피라미드를 흘겨본 건 고가도로 난간을 가로지르면서 였다.
피라미드는 두 개의 황량한 탑 사이를 간격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 녹색 빛은 세상의 모든 빛, 모든 희망을 빨아들이는 악마처럼 느껴졌다.
리프트의 전력은 끊겨있었기에 두 사람은 주거 구역의 긴 계단을 내려가야했다.
부상과 탈진한 체력으로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기도 했고 한 번은 도미노처럼 네 명의 사제들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위협을 가했고,
일부는 ‘철의 신’들이 그녀를 바치게 되면 그녀가 겪을 운명에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테일러’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사제들을 막으려했고 ‘아렉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 최하층의 오물을 헤집으며 걸었다.
‘아렉스’는 불과 몇주 전까지만 해도 고가도로의 난간에 기대 밑세상을 내려다본 때를 생각했다.
그녀 평생 이 거리를 가까이서 보는걸 꿈꿔왔지만 결코 이런 끔찍한 곳이란 건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녀는 그림자 속에서 숨어 자신들을 지켜보는 돌연변이들의 눈을 보았고 거리를 유지하려했다.
아마도 돌연변이들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건 사제들이 쓴 해골 철가면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돌연변이들은 일행이 주인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더 많은 돌연변이들과 몇 명의 인간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윗층에서 노예들이 했던 것처럼 잔해 속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아렉스’는 그들을 동정해야할지 경멸해야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녀가 네크론을 보았을 때, 숨이 막히고 몸이 떨렸다.
그녀는 먼 곳에서만 괴물과 참상을 보았을 뿐, 멀지 않은 곳에서 금속의 두개골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눈구멍에는 녹색 빛이 반짝이고 괴물이 가진 죽음의 기운이 그녀의 영혼을 서늘하게 옥죄어왔다.
그녀는 다급히 도망치려고 했으나 ‘아마레스’와 사제들이 붙들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차 ‘아렉스’는 몸을 일으켜 세워 필사적으로 도망치려했고 제지당하기를 반복했다.
“물러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아마레스’..”
네크론과 가까워지자 ‘테일러’가 교주를 설득했다.
점점 다가갈수록 피라미드의 녹색 빛 속에서 더 많은 네크론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잔해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조차 없는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대작업을 보노라면 섬뜩해보이기 까지 했다.
“저것들이 우릴 데려온 걸 고마워할 것 같나?”
‘테일러’가 계속해서 말했다.
“잘했다고 쓰다듬어 준 다음 애완동물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해?
너나 우리나 저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아.
저 위에 날아다니는 벌레들이 널 발견하게 되면 사정없이 공격할거다.”
그는 끈질기게 대교주와 사제들을 설득했지만 그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곧 작은 무리의 네크론 앞에 멈춰서서 사제들이 ‘아렉스’와 ‘테일러’를 그들 앞으로 밀어냈다.
‘아마레스’는 잠시 주목받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쌍의 네크론이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그의 방향을 한 번 훑어보지도 않고 지나가자,
그는 초조한 듯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신들이 제물을 무시했다.
그러나 ‘아마레스’는 준비한 연설을 시작했다.
“신들이시여!”
그가 내뱉었다.
“저는 ‘아마레스’. 당신들의 대신관입니다. 절 굽어 살피소서.”
교주의 평소 우렁차던 목소리는 확신이 덜 찬 듯 작아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네크론들의 관심을 끌었다.
놈들 중 몇몇은 그를 보기위해 말없이 돌아섰고, ‘아마레스’는 공허한 초록 눈빛에 주춤거렸다.
그는 갑자기 깨달은 듯 금속 가면을 벗어서 스스로의 인간적인 모습,
검은 머리와 땀범벅이 된 맨얼굴을 드러냈다.
“저는.. 당신께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 제물들, 이 여자와 여기 있는 이 남자는.. 우리 행성의 총독과 관련된 자들입니다.
총독의 이름은 ‘헨릭’. 저 두 사람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자들입니다.”
그는 신들의 무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그는 어깨너머로 뒤를 힐끗 돌아봤고 집중해서 자신을 보고 있는 사제들을 볼 수 있었다.
‘아렉스’가 보기에 사제들의 표정은 믿음이 흔들리는 듯 겁이 난 모습이었다.
교주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들에게 전쟁을 벌이는 저 피조물들.
헨릭 총독과 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와 상관없습니다.."
"..당신들이 이 세상에 온 걸 기뻐하며, 섬길 준비가 되었나이다!”
그는 무릎을 꿇었고, 그의 사제들도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혼자만 서 있으면 네크론의 주의를 끌지모른다는 무서움에 ‘아렉스’도 무릎을 재빨리 꿇었지만
‘테일러’만은 홀로 그녀 옆에 당당히 서서 있었다.
철의 신들은 자칭 대주교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쌀쌀하게 외면했다. ‘
아마레스’는 말없이 일어났고 그의 추종자들은 주저하며 일어서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이었다.
‘아마레스’는 자신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의 권력과 꿈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가 ‘아렉스’의 팔을 붙잡아 그녀의 얼굴에 권총을 겨눠 피라미드 입구 쪽으로 밀었다.
“안돼!”
그녀는 “안돼!” 라고 소리지르며 저항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다시 그녀의 뒤에 서서, 등에 전력 몽둥이를 휘두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점점 관문이 커져갔다. 그녀는 그 너머의 녹색 찬란한 빛에 눈이 멀 것 같아 시선을 돌리며 저항했다.
그녀는 ‘테일러’를 잡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단단히 잠긴 수갑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기억해요.”
‘테일러’가 그녀에게 외쳤다.
“황제께서는 당신을 살리실꺼에요. 그러니까 우린 계속 싸워야해요!”
곧 철의 신들이 낯선 인간들의 소동을 보고 그들을 애워싸기 위해 움직였다.
그 네크론 중 하나는 ‘아마레스’가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막아섰고 대주교는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하지만.. 그럴순 없습니다.. 제가 한 말을 못 들었습니까?
이단자들을 물리칠 도구가 여기 있습니다. 왜 절 알아보지 못하십니까?”
그러나 네크론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레스’는 그들을 잠시 노려보다가 어깨를 낮추어 지나가려 시도했고,
네크론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어올려 에메랄드 빛 광선으로 그를 가루로 만들었다.
‘아마레스’가 한때 서 있었던 자리는 이제 한 줄기 김이 땅위에서 흐늘거렸고,
‘아렉스’는 사이비 교주의 최후에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 무섭고 속이 메스꺼웠다.
사제들 중 절반은 다시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왜 신들이 등을 돌렸는지,
그들을 달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간청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고 있었다.
‘철의 신’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치는 자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 앞에 무릎 꿇은 자들에게 주의를 돌렸고 이들 역시 살해하기 시작했다.
‘아렉스’도 도망치려 시도했지만 ‘테일러’가 그녀를 붙잡아 당겼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이끄는 곳을 깨닫고 항의하며 반항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당장은 그들을 쳐다보는 네크론들이 없었지만 곧 쳐다볼 것이고 숨을 곳은 없었다.
아무리 빨리 달린들 몸을 숨길 잔해 한조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렉스’는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동료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검은 피라미드의 문턱을 넘어갔고 차가운 피라미드의 빛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은 그녀는 눈꺼풀 사이로 증오스럽게 불타는 초록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방울이 ‘권터 소르손’의 뺨에 떨어져 흘러 목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한나절 동안 다른 소대원들과 함께 이곳에 서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그는 사격 훈련을 연습하고 있었고
자신의 의무를 다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 아침 라스건을 지급받았었다.
그것은 행성방위군의 라스건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반대로 전력을 더 많이 먹는 크리그 연대의 루시우스 패턴 라스건이었다.
‘소르손’은 세 개의 배터리 탄창은 각각 25발이라는 경고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아직 이 새로운 라스건을 쏴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지금 사격 감각을 익히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그가 감명 받은 고성능의 라스건은 크리그 103 보병연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너희들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은 하나다.
적의 광선에서 무기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가능한 그 총을 멀리 던져라.”
크리그 연대의 쿼터마스터가 명령했다.
모든 병사들을 수송할 수 있을 정도로 차량은 충분하지 않았기에 거의 2천명의 병사들은
도시로 가는 진입로를 따라 우주 공항 언덕을 행진해 내려왔다. 그들의 경로에는 난민들이 줄을 서 있었고
일부는 응원하고, 일부는 감정을 주체못하는 듯 흐느끼고 있었다.
그 광경은 치수에 맞지 않는 군복을 입은 이 신병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소르손’은 신병들이 쉴시간도, 충분한 준비 시간도 없다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젯밤 숙면을 하고 일어났고 자신의 최적의 준비를 마쳤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쉬는 시간은 그저 반갑지 않은 사색의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도시의 서쪽 외곽은 한때 높은 산처럼 무너진 건물잔해로 막혀있었었다.
하지만 아침 내내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온 넓은 공간이 한때 그곳이었다는 것에 ‘소르손’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동시 그는 북쪽과 남쪽에서 오는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연대의 행군을 보며 감탄했다.
질서정련한 제국방위군들의 모습은 일행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였다.
그가 있는 행성방위군의 발걸음도 맞추지 않는 행군은 제국방위군과 반대로 오합지졸처럼 보이게 했다.
그가 상상한 첫 실전은 이런 게 아니었다.
훈련을 처음시작하면서 ‘소르손’은 ‘아렉스’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임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커미사르 ‘코스텔린’은 그를 버리고 떠났고, 통신이 두절되어 실패했다는 게 알려진 이후,
그는 그러한 기대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제국군은 적보다 숫적으로 우세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만약 그가 하나의 네크론만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거라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루시우스 패턴 라스건을 손에 든 ‘소르손’은 그보다 더 많은 네크론들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있었다.
네크론 방공망의 사거리 밖을 돌아 한 쌍의 비행기가 선회하고 있었다.
곧 비행기들은 방향을 꺾어 우주공항을 향해 돌아섰고 행성방위군 중위가 ‘소르손’ 뒤에서 소리쳤다.
“여기다, M 소대! 적들이 이곳에 있다. 모두 전방을 향해 무릎 꿇어 조준!”
중위의 명령에 좌우에서 복창했고 3백명의 병사들이 떨어져 무기를 들었다. ‘소르손’도 역시 몸을 일으켰다.
앞에 더 많은 아군이 있었기에 그가 겨냥해야할 표적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훈련을 기억해라!”
중위가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각자의 위치를 사수해라. 라스건은 연사로 바꿔서 네크론을 쏜다.
놈들이 쓰러져도 계속 쏴. 총독님께서는 우리의 희생에 경의를 보내셨다.
인류의 신 황제의 축복이 있으리라!”
- - - -
이번화는
크리그 연대의 라스건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네요.
루시우스 패턴이 화력과 사격횟수를 등가교환했다는 설정은 알려져있지만
보통 라스건이 최대 100발 사격이 가능한데 25발 정도라니
생각보다 훨씬 화력이 강하다는 뜻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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