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총독이 186번 대령을 발견했을 때 그의 몸은 이미 땀투성이었다.
한 번에 세계 계단을 올라왔기 때문이었는데, 계단을 오르기 전에는 우주 공항의 터미널을 통과해야했다.
그는 터미널을 통과하며 산비탈에 있는 난민촌을 헤쳤고 난민들의 침묵의 시선을 애써무시했다.
총독의 도시는 이전과 비교해 많은 부분이 무너져있었고 간헐적으로 빛나는 포탄의 섬광과 연기, 스파크가 보였다.
‘헨릭’은 자신이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령은 옥상에 서서 한 쌍의 망원경을 통해 전선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총독 장군과 대화를 하고픈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헨릭’은 186번 대령에게 할 말을 해야했다.
“당신도 동의한 사안이오.”
대령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장군의 행성방위군이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그렇소.”
‘헨릭’이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야. 아니란 말이오.”
“장군은 당신의 병력배치를 내 중대장에게 일임하는 것에 동의했었소.”
“근접 포격을 했잖소!”
‘헨릭’이 화가 난 목소리로 반박했다.
“넌 내 부하들을 포격을 위한 미끼로 사용했어.
지금 내게 들어오는 보고를 봤소. 이건 대학살 수준이오!”
“그들도 군인이오, ‘헨릭’ 장군.”
“하지만 너무도 많은 이들이 죽었소. 저기 병사들은 그저 3주간 훈련을 받은 민간인이나 다름없었소.
경험많은 병사들이라고 해도 이런 싸움은 해본적이 없소. 거기다 장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때 대령은 고개를 돌려 방독면의 보안경을 통해 ‘헨릭’을 쳐다봤다.
“그것이 당신의 병사들의 작전참여가 제한되는 이유요.”
“그 말은 저들이 소모품이라는 뜻인가?”
‘헨릭’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겠다면 반박하지 않겠소. 하지만 장군, 장군은 당신의 부하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합니다.
우리 연대의 야전 장교들이 보고를 했소.
전선의 행성방위군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1분 이상 네크론의 진격을 막는데 성공했소.
이게 모두 장군의 훈련의 공이오.”
“저들도 사람들이야.. 젠장! 주위를 둘러보시오, 대령!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저 사람들을 보란 말이오.
당신에게는 그저 숫자로 보일 병사들이겠지만,
난.. 시민들의 형제들, 아들들이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겠소?”
‘헨릭’ 총독은 제국방위군으로 복무하던 아들이 전사했던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19개월 동안 3통의 성간 통신을 보냈지만, 아들에게는 한 마디의 답신도 없었던 초조했던 그날 말이다.
대령은 총독의 말을 무시하듯 말했다.
“당신과 행성의 시민들은 나약해졌소. 황제폐하께 진 빚을 잊어버린거요.”
대령의 말에 ‘헨릭’은 얼굴에 일격을 받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고 재차 반박을 했다.
“그쪽이 내 말을 이해못할거란건 알고 있었소. 당신은 인간적인 감정을 못 느끼는 존재니까.
심지어 자기 얼굴조차 두려워서 감추는 사내지. 대체 뭘 신경쓰는 거요, 대령? 당신은 일말의 동정심 따윈 없소?”
대령은 대답 대신 등을 돌려 망원경을 치켜들었고, 이 행동은 ‘헨릭’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소, 대령.”
그가 딱 부러지게 말했다.
“당신은 내 말을 따라야해. 우린 서로 다른 군대를 지휘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 계급이 대령보다 높소.
주변에 물어보니 그쪽이 전투에서 병력을 지휘한 건 고작 5분 뿐이었고 반면에 나는..”
“그럼 내 병사들을 죽게 했어야했나?”
갑작스러운 대령의 질문에 ‘헨릭’은 당황했다.
“내가 크리그 병사들을 모두 희생시키고 행성의 방어를 오합지졸 신병들에게 맡기는게 나은 선택인가?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면 장군의 발언은 반역 혐의가 될 수 도 있소.”
“물론 나는.. 나는.. 병사들의 목숨을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이었소.
물론 내 부하들보다 당신의 부하들이 더 잘 싸울 수 있다는 건 인정하고 있소.“
“크리그 연대의 피를 보고 싶은 마음이라면, ‘헨릭’. 몇 시간 후에 실컷 보고받을 수 있을 거요.
우리들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죽어갈 거니까.”
“그것 알고 있소, 대령. 미안하네. 그런 의도로 말한건 아니었네. 하지만..”
대령이 도시 북쪽을 보기 위해 망원경을 이리저리 비트는 뒤에서 ‘헨릭’은 대령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총독의 말을 듣지 않았다. 대령은 귀에 통신기를 꽂고 있었는데,
방금 뭔가 나쁜 소식이 들려온게 분명해보였다.
“무슨 일이오?”
‘헨릭’이 물었다.
“왜 그러는거요?”
“거미들.”
대령이 침울하게 말했다.
“기계 거미들이 네크론의 전차에서 소환되었소. 놈들이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소.”
“그 말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게 현실이 되었다는 말이로군.”
‘헨릭’이 말했다.
“네크론 군대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거요. 우리가 맞서 싸울 대마다 새롭고 더 강력한 병기를 전쟁터로 보내잖소.
대령, 우리가 적보다 숫적으로 우세하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만약에...”
“우리는 그에 맞춰 대응하고 있소.”
대령이 말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통신기의 말을 들었다.
“메두사 공성전차가 거미들을 겨냥하고 있소. 놈들의 약점을 파악 중이오. 그 중 하나가..
박격포를 직격으로 맞고도 움직인다고 보고가 왔소. 말도 안되는군! 분명 파괴되었었는데..”
대령은 자리에서 벗어나 두 명의 보좌관과 함께 우주공항을 향해 뛰어갔다.
‘헨릭’은 서둘러 그들과 보조를 맞추었다.
“내 지휘실로 돌아가겠다.”
대령이 다그쳤다.
“42연대, 103연대에 추가 증원 요청을 해야한다!”
“증원군이라니? 우리가 지고 있는거요?”
“분명히 네크론의 물자는 유한하오, 장군. 이건 놈들의 최후 발악이오.
그게 아니라면 왜 이런 병기가 이전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겠소?
우린 이 전쟁에서 거의 승리에 가까워져있소. 그리고 이기기 위해서는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 되오. 지금 우리 상황은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소. 지금은 서로 주고받은 감정싸움에 치중할 때가 아니오.”
‘헨릭’은 대령의 말에 항의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대령은 그를 앞질렀고 총독은 도시를 돌아보며 그곳에 죽은 이들을 생각했다.
모두가 그곳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실 ‘헨릭’은 ‘아렉스’를 잃은 후 좌절의 나날을 보냈었다. 그는 처음부터 생각하던 일을 했어야했다고 생각했다.
제국 전쟁보급부에 연락해서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의 월권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총독 본인의 위치는 확고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령은 그의 자리를 위태하게 만들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총독은 지휘실로 돌아와 몸을 움츠리고 복스 통신기에 손을 뻗어 최근을 보고를 들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잠시 말없이 앉아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헨릭’은 그의 손을 뻗어 군복의 주머니 속 데이터 슬레이트의 차갑고 딱딱한 감촉을 느꼈다.
그가 메시지를 옮겨 적은 것을 보았다.
8년 전에 중지된 군용 암호로 전송된 이 메시지는 오늘 아침 일찍 행성방위군의 지휘통제실에 전송되었었다.
소수의 장교들만이 암호화 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헨릭’ 만이 완벽하게 그 해독법을 알고 있었다.
그가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그 정체불명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데는
두 시간이나 걸렸고 단지 열세 마디였지만 그는 그 해독문을 열백번을 읽었었다.
< 헨릭, 우린 네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다. 공격을 중지하라. 하루만 기회를 주겠다. >
그는 자리에 다시 앉아 지친 눈을 비볐다.
그는 커미사르 ‘코스텔린’이 함께 있기를 바랬지만 여전히 그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는 늙은 커미사르의 현명한 조언과 재량권을 원했다.
커미사르라면 대령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설득하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대령은 문간에 서있었다.
‘헨릭’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슬레이트를 책상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대령은 얼마나 그곳에 있었던가?
“어떻게.. 어떻게 되었소?”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증원군 말이오.. 내말은 -”
“현재 우리 기대보다 적은 10개 소대만 있소. 우리로써는 최선이고 103 연대는 6개의 메두사 전차를 보냈소.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오. 추가 병력이 있다면 -”
“이젠 없소.”
‘헨릭’은 조금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줄 수 있는 병력은 이게 다요. 이 공항에서 신병이 될만한
남자들은 병자나 훈련중 부상당한 사람들 뿐이오.”
“이 행성에는 다른 도시도 있잖소?”
“다른 도시에서도 이미 모든 적합 징병대상자를 보낸 상태요. 더 많은 신병들을 보낼 수 있다고 해도..
병사들을 무장시킬 장비가 하나도 없소. 지금 전선에 나간 병력도 겨우 전사자들에게서 입수한 라스건이었지 않소.
칼이라도 들고 싸워야 할 판이오.”
186번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총독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볼터 권총집에 손을 뻗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군.”
그가 말했다.
“나는 전선으로 가겠소. 장군도 나와 함께 하겠소?”
“아니.”
‘헨릭’이 황급하게 대답했다.
“난.. 대령 말이 맞소.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도시관리자들을 독촉해서 압력을 가할 참이었소. 낡고 잊혀진 군수품 창고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무기는.”
대령이 말했다.
“무기보다 우리는 사람이 필요하오, 장군.
일단 이 전투가 끝나면 여분의 장비를 갖게 될 거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소.”
‘헨릭’이 대답했다.
그리고 대령이 전선으로 떠난 후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얼굴 모를 시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게 된 자신을 비난했다.
그는 또다시 크리그 대령이 원하는 것을 동의해주고 말았다.
‘헨릭’의 사무실은 어두었지만 그는 몸을 일으켜 불을 켤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공항은 매우 조용했고 그의 군용 복스 통신기에서는 잡음만이 공허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고독했고 이로웠다. 그의 장교들은 그에게 현 상황에 대해 보고를 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대부분은 최전선이 아닌 공항에 숨어 있었고 야전의 하급 장교의 보고만이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다.
‘헨릭’은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는 통신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전황의 정보를 들을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소식이든 전황에 관한 보고는 긍정적이었다.
크리그 데스라이더들이 힘을 합쳐 네크론 전선을 50미터 뒤로 밀어냈다.
대부분 아군 보병은 전사했고 시체들.. 잿더미가 되버린 시체들이 바람에 흩어졌다.
남쪽에서 증원된 새로운 메두사 공성전차는 피라미드 모양의 네크론 전차와
기계 거미들을 포격하면서 변화를 일으켰다.
“멜타건은 여전히 거미들을 상대로 유효합니다.”
‘브라운’ 대령이 처음으로 낙관적인 보고를 했다.
“그레네디어들은 공격을 받으면 동료에게 멜타건을 던지고 있습니다.”
‘헨릭’은 다시 자신에게 보내진 협박글을 읽었다.
하루.. 이제 하루도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총독은 이 메시지가 네크론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도시의 누군가로부터, 더 끔찍한 가설이었지만, 자신의 백성들이 황제를 배신하고 적과 협력한다는 뜻이었다.
침상에서 깨어난 총독은 제일 먼저 구조선이 오지 않았다며 항의하는 시 행정관의 답신을 들었다.
‘헨릭’은 더 많은 군수품을 요청하는 대령의 통신을 받았고
그날 밤 총독의 물자공급 요청의 기한을 맞출 수 없다는일련의 항의에도 시달렸다.
그는 이 보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의료품도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다.
전투가 끝났다는 소식은 현장에 있던 행성방위군 소령에게서 나왔고
남은 네크론들은 눈 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헨릭’은 통신에서 186번 대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레네디어 부대를 이끌고 발전소를 파괴시키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곧 총독은 사상자의 최종집계를 해야할 차례가 왔음을 감지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침묵 속에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헨릭’ 총독에게는 진짜 일이 막 시작되는 참이었다.
하늘은 아직 잿빛이었지만 해는 떠있었다. 그는 거의 25시간 동안 잠도 못잤고 식사도 하지 않았었다.
지금 당장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 휴식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는 애도의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는 자신의 말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군병원에 직접 시찰을 나가 병사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의 노력 덕에 영광스러운 승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망이 없는 중상자를 버리고자 하는 크리그 의무관과 한바탕 말싸움을 하기까지 했다.
그 날 총독의 군대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거창한 승리의 기념식도 없었다.
크리그 연대의 귀환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적었고 대다수가 부상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전선을 사수해야했고 대부분은 도시 가장자리에 남은 상태였다.
너무도 많은 연락책들이 전사했기에 ‘헨릭’은 이 결정에 대해 어떤 상의도 통보도 받지 못했었다.
이로 인해 사망자 명단을 작성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고,
슬퍼하는 수만은 시민들에게는 거짓 희망이 생기게 되었다.
‘헨릭’은 임시 지휘부에서 지친 장교들과 동석했다.
그는 숟가락으로 아무렇게나 떠밀어 놓은 식기와 식은 죽을 떠먹었다.
침묵의 식사시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처음 말한 건 ‘브라운’ 대령이었다.
“불충한 소리일지 모릅니다만..”
“황제께서 더 많은 지원을 보내주셨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네크론이 행성을 버려라고 했을 때 동의했어야 했다는 건가?”
‘헨릭’이 말했다.
“적들과 싸울 수 있게 더 많은 물자가 있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브라운’ 대령이 좌절하며 말했다.
“제국 전쟁보급부에서 더 큰 병력을 보내줬다면, 4개 이상의 연대를 보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황제를 위해 보호해야할 민간인들을 최전방에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올리브색 피부를 가진 젊은 ‘호크’ 소령이 한탄했다.
“그래도 우린 싸워야합니다.”
“맞는 말이야.”
‘브라운’ 대령이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싸울건가?”
“나는 ‘코스텔린’이 옳았다고 생각되네.”
‘헨릭’이 말했다.
“‘익스터미나투스(행성파괴)’를 했어야했어! 우리가 이 행성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그게 불충한 행동이란 건 알겠지만 단 한 명의 생명도 잃지 않고..
모든 시민들을 대피시키는게 가능하다면 이 네크론들을 일격에 전멸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어.”
“대피선은 부족했을 겁니다.”
또다른 젊은 소령이 말했다.
“대피한들 어디로 가야했겠습니까?”
“우린 크리그 연대에 구조선을 요구했어야했어.”
‘헨릭’은 분한 듯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다른 개척행성을 찾으면 될 일이었네. 정말 바보같은 짓을 해버린거야! 젠장! 제국 전쟁보급부가..
아니 내가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연대에 도움을 요청해버렸다니! 놈들이 우리 행성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해버렸어.”
“그렇다면.”
그의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말했다.
“피난으로 시간을 소모하면서 네크론들이 모든 군대를 깨워
제국을 위협하도록 방관했어야 했단 뜻인가?”
다시 한 번 ‘헨릭’은 186번 대령이 다가온 걸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그의 주위에는 장교들이 있었고 그는 당당하게 서서 크리그 대령에게 대들었다.
“그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무슨 성과를 얻었소?”
그가 되물었다.
“난 대령의 방식대로 싸우도록 허락했소. 때문에 오늘 수많은 시민들이 죽었고.
뭣 때문에 저 많은 목숨이 죽었단 말인가? 고작 1개 보조 발전소를 파괴하는데 이만큼 죽었어.
그마저도 ‘코스텔린’이 주력 발전소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오!”
“우리는 네크론에게 일격을 가했소.”
“42연대의 전투 후에도 똑같이 말했었지. 근데 오히려 오늘 적들이 더 강해져서 돌아왔소.
우리는 저 네크론의 자가 수리 능력의 한계조차 모르고 있잖소. 얼마나 더 많은 군대가 깨어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텔레포트라도 시키는지 아무것도 몰라! 그런건 신경쓰긴 하나, 대령?
고작 작은 승리는 보이고 죽어간 수많은 인명은 보이지도 않나?”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군대를 철수시킬까?
장군 혼자서 네크론을 막을 수 있소? 그러면 지금까지 목숨 바친 병사들은 뭐가 되지?”
“나는 이 행성의 총독이야.. 네가 여기 온 이후로 줄곧 나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내 걱정거리를 한낱 종이쪼가리 정도로 취급했어.”
“헨릭, 당신은 이름과 얼굴을 가진 개개인의 삶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고 있소.
당신과 달리 나는 그 이상의 것을 위해 싸우고 있소. 네크론의 존재에 위협받는 수십억을 위해서요.
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상관없소. 내 행동에 불평하고 싶다면 하시오. 물론 그건 당신의 권리니까.”
“그렇게 할거요.”
‘헨릭’이 호적적으로 대답했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할 일 이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이 드는군!”
“다만 조심해야할 거요.”
대령이 으르렁 거렸다.
“우리의 적들이 당신의 약점을 쥐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이지.”
헨릭은 결국 인질범에게 답장을 보냈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조카의 소식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조카의 죽음에 후회하며 살 자신이 없었다.
그는 밤 내내 속이 메스꺼웠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앉아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눈을 감았지만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오늘 결국 협박범에게 답장을 했고.. 186번 대령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도착해있었다.
186번 대령은 초대를 받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게 분명했다.
대령의 뒤에서 두 명의 크리그 보좌관들이 공격적으로 회의실 문을 가로 막아 섰다.
“무슨 짓인가?”
‘헨릭’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우린 의심할만한 이유가 있소.”
대령이 말했다.
“여기에 반역자가 있다.”
“무슨 말인가, 도데체 누가..?”
“장군, 오늘 광장에서 나와 이야기한 후에 바로 이곳에 왔소?”
“그렇소, 자기 15살 아들을 전사자로 보게 된 한 어머니를 위로해주고 오던 길이었소.
당신이 명령한 근접포격에 희생된 병사말이오.”
“그럼 지난 90분간 이 회의실에 있었겠군.”
“그래,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거지?”
“그 시간 사이에 그 메시지를 보냈나?”
“그렇겠지. ‘테로니우스 시티’ 행정관과 통화를 했었지. 그곳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어.
지금까지.. 어떤 시민들은 하층민들이 네크론을 숭배하기 시작했다더군. 믿을 수 가 없었네.
나는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명령했을 뿐이야.”
“다른 메시지는?”
대령이 으르렁거렸다.
“아니오.. 다른 건 없었소. 나는.. 아무런 불평불만을 밖으로 전송하지 않았소.
내가 어쩌면 대령을 과하게 질책했을지도 모르겠구려. 나중에, 이 일이 끝나면 다시 이야기하지 않겠나?”
“내 통신교환병이 전송을 감지했소.”
대령이 말했다.
“이 방에서.”
‘헨릭’은 대령을 쏘아보았다.
그럴 리가 없다.
대령은 그 메시지를 알 리가 없었다.
“메세지가 보내진게 확실하다.”
대령이 계속해서 말했다.
“행성방위군의 명령 채널로.”
“그건.. 그 채널은 내 장교들과 나 사이의 사적인 연락을 위한 것이오!”
‘헨릭’이 반발했다.
“대령이 그걸 도청할 권리는 없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통보했듯이, ‘헨릭’. 이 행성은 계엄령이 내려졌소.
그건 내 직권이오. 그래서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내게 통보되게 되어 있소.
그게 제국에서 내게 내려준 권리요.”
대령은 헨릭의 초조한 손으로 쥔 데이터 슬레이트를 뺏고 내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섬뜩한 긴장감이 총독을 덮쳤다. 일단 암호화된 그 메시지는 그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헨릭’은 잠자코 태연하게 대처했다.
“이미 모든걸 알고 있소.”
대령이 '헨릭'에게 말했다.
“당신이 어제 09.46시에 메시지를 받고 오늘 아침 09.13시에 답신했다는 걸.”
“그걸 알고 있었다니? 어떻게? 혹시 기다리고 있었던건가? 내가 뭘 할지 기다리면서.
하지만.. 내 메시지 속 암호.. 그걸 해독할 순 없을텐데.. 옥좌시여 맙소사.. 그럴순 없어.”
“그건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헨릭’.”
“그래, 대령 말이 맞네.”
‘헨릭’은 한숨을 쉬고 패배를 인정했고 의자에 다시 주저 앉았다.
“내가 설명하길 원하는 모양이군... 대령 자네가 이해해주길 바라네. 아니, 제발 이해해주게.
‘아렉스’는 내게 남은 유일한 가족일세. 내 평생을 제국을 위해 모든 걸 바쳤는데
한 소녀의 생명마저 지키기 못한다면 여기 모든 군대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제국은 우리가 함께 서있는 한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협조에 관한 칙령이 -”
“협조라고?”
‘헨릭이 소리쳤다.
“그런 이유로 날 비난할 수 없어... 이 메시지를 읽었잖소? 난 그저.. 인질범에게 동조하는 척만 했을 뿐이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내 명령으로 전투를 취소할 수 있겠소?
알다시피 그냥 놈들에게 맞장구쳐준 척 한 것 뿐이오.
그 아이는 내 하나 뿐인 조카요, 대령.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단 말이오.
그쪽이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겠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총독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말이 끝나자 마자 186번 대령은 총독의 머리에 볼터 권총을 뽑아 겨눴다.
“이미 충분히 경고했다.”
그가 조용히 말했고, ‘텔마르 헨릭’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볼터 권총의 총구가 번쩍이는 것이었다.
- - - -
결국 총독 리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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