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손’이 해야할 일은 이제 총을 들어 적을 쏴서 자신을 목표로 삼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착륙한 비행선의 동체에서 자세를 낮추고 라스건을 조준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의 방금 전 말에 겁먹은 나머지 차마 방아쇠를 당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선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총을 든 손이 덜덜 떨렸고 스코프를 통해 조준이 불가능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몸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그리고 자신이 총을 쏘기 전에 전투가 끝나기를 빌었다.
아니, 그걸 소원하며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시체괴물들은 숫적으로 열세였고 이미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전장을 훑어보며 ‘소르손’은 적들 중 벌써 셋이 소각되는 걸 보았다. 그리고 네 번째도..
더 많은 수의 시체괴물들이 나타났다. 그는 어디서 놈들이 나타났는지 알고 싶었다.
최소한 세 마리, 아니 네 마리였다.
그리고 놈들을 향해 사격을 시도한 제국방위병들은 에메랄드 빛 광선을 맞고 ‘소르손’이 몸을 숨긴 쪽으로 쓰러졌다.
‘소르손’의 코 속으로 끔찍한 화상을 입은 병사의 탄내와 오존의 악취가 훅 밀려들어왔다.
그 후 시체괴물이 자신 쪽으로 돌아봤을 때 죽은 듯한 고요함이 이어졌다.
‘소르손’은 이런 상황을 꿈 속에서 수천번 겪었었다. 그는 황제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 내야했다.
느려지는 시간 속에서 ‘소르손’의 긴 인생이 아득하게 스쳐지나갔다.
그의 집, 그의 직업, ‘아렉스’ 모두 사라졌다.
그의 정겨운 동네, 술집, 상점 그리고 ‘아렉스’와 함께 식사를 했던 고급 레스토랑도..
함께 일했던 비서 ‘크레우즈’도 불현 듯 떠올랐다. 아마 이제 그녀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소르손’은 자신은 여기서 죽게 될테지만 그녀만이라도 안전하게 이 행성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가 일궈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버렸다고 생각했다.
악착같이 일하면서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려 했던 모든게 무너졌다고.
그때 그의 라스건 스코프에 적이 들어왔다.
그가 생각하던 것들은 모두 그의 인생 자체였다.
하지만 모든게 사라졌고 ‘소르손’은 자기 목숨 외에 더 이상 잃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아쇠를 당겼고 첫 번째 라스빔은 빗나갔지만 그는 계속해서 총을 쐈다.
그리고 그는 라스건에는 연사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뉴스에서 봤던 내용이지만 그는 기억을 더듬어 엄지손가락을 급히 훑어 연사 버튼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단발로 사격되던 라스건이 마치 태풍처럼 시체괴물에 화력을 쏟아냈다.
‘소르손’은 자신의 라스건이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에게 반격한다는 사실자체에 충분히 음울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창 사격하던 라스건이 갑자기 휘파람 소리를 내며 죽어버렸다.
그는 또다시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겁이 났다.
급한 마음에 방전된 배터리 탄창을 빼낸 다음 흔들고 다시 그걸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어떻게든 여분의 라스빔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좌절감에 마음 속으로 울부짖었다.
‘웨버’에게서 왜 여분 탄창을 챙기지 않았냐 멍청아!
그 후에 일어난 일은 기적과 같았다.
수많은 시체괴물들 중에 살아남은 건 그의 앞에 있던 것 하나뿐이었고 놈이 맹렬한 바람과 함께 몸을 피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녹아버린 괴물의 시체를 제외한 모든 것들도 함께 사라졌다.
‘소르손’은 적들이 후퇴하는 걸 보고 안심했고 동시에 그들의 미지의 힘에 경악했다.
그는 이 짧은 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제국방위병들이 죽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겨우 다섯 명의 병사만 그의 곁에 살아 있었다.
테크프리스트 ‘엔진시어’와 그의 조종수 서비터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제국방위병들은 숨을 돌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장 고가도로로 이동했고 ‘소르손’은 하사로 불리는 남자에게 ‘엔진시어’와 합류할 것을 명령받았다.
‘엔진시어’는 또 다시 손에서 휴대용 장치를 꺼냈다.
‘소르손’은 그 기기에서 삐져나오는 전기선이 직접 테크프리스트의 눈에 연결되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1분이 조금 지난 후 제국방위병들은 특정 지점에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 중 한명이 잔해 더미에서
붉고 작은 뭔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엔진시어에게 보여주었다.
그 후 하사가 명령을 내렸고 ‘소르손’을 뒤로하고 지나갔다.
“이해가 되지 않네요.”
‘소르손’이 말했다.
“아렉스는 어디있죠? 걔를 찾고 있는게 아니었나요?”
“총독의 조카딸은 여기에 없어.”
하사가 말했다.
“어떻게 확신합니까? 아렉스는 여기 건물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구요!”
“여자는 이곳에 없다.”
수송기의 엔진이 기동하며 세찬 바람을 만들었다.
마지막 병사가 탑승을 끝마쳤고 남은 병사들이 더 없음을 확인한
하사가 마지막으로 탑승하려는 그때 ‘소르손’이 말했다.
“저도 데려가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사는 인내심이 바닥난 듯한 감정을 담아 ‘소르손’을 주시했다.
그는 결국 하사가 자신의 요청을 거부할 것이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익숙한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체 괴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앞에 네 마리가 있었고
또다른 네 마리가 고가도로에, 그리고 더 많은 숫자가 건물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소르손’은 라스건을 그 중 한 마리에 조준했다.
그때 수송기가 날아올랐고 ‘소르손’은 자신의 뒤를 누군가 홱 하고 잡아당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붙잡아 수송기로 끌고 온 하사가 조종사를 향해 “당장 이륙해!”라고 외쳤다.
비행선이 느릿느릿 고도를 상승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옆구리를 타격했고 병사들은 충격으로 자리에서 튕겨져나갔다.
그리고 ‘소르손’도 그들 한가운데로 날라갔다.
수송기의 엔진은 삐거덕거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소르손’은 곧 비행선이 추락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윽고 하늘로 상승했다.
“운이 좋았소, 하사.”
엔진시어가 말했다.
“가우스 빔이 엔진을 스쳤을 뿐이오. 정통으로 맞았다면 엔진이 산산조각 났을거요.”
기체가 안정을 찾은 후 ‘소르손’은 병사들 사이에 앉아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네 명의 해골 방독면을 쓴 병사들은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그들 각각은 쓰러진 동료를 대신해 들어온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을지 의심해 하는 것 같았다.
‘소르손’은 ‘아렉스’의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지만 감히 병사들의 작전에 대해 질문하지 못했다.
그리고나서 엔진시어가 아메사이트 보석으로 된 목걸이를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걸 보았고,
단번에 그 목걸이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건 어디서 났죠?”
그가 물었다.
“저건 ‘아렉스’의 목걸이인데. 죽은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했어요.
걔가 항상 차고 다니던거에요.”
“우린 이걸 찾기 위해 온거였다.”
엔진시어가 대답했다.
“이 목걸이에는 추적장치가 심어져 있다. 총독은 우리가 이걸로 그 여자를 찾아주길 바랬지.
보다시피, 그녀는 이 목걸이를 차고 있지 않았다. 고가도로의 잔해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런다면 거기 있다는 뜻이잖아요!”
‘소르손’이 소리질렀다.
“모르겠어요? 목걸이가 있다는 건 아렉스가 있었다는 뜻이고 거기서 얼마 떨어진 곳에 살아 있을거라구요.
비행기를 돌려야해요! 찾을 수 있다구요!”
하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살아있다고 해도 -”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다구요. 저는 알 수 있어요. 아렉스는 살아 있습니다.”
단호하게 말했다.
“여자가 살아있다고 해도 마지막 위치에서 확인된 지 20시간이 지났다.
그 정도 시간이면 도시 어디로든지 갈 수 있어. 지금 상황에서 여자를 찾는 건 무리다.
더 이상 위험을 감수 할 수는 -”
“저라도 그곳에 데려다주십쇼.”
‘소르손’이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괴물들이 절 무시하거든요.
그러니까.. 건물을 뒤져서.. 그냥 다시 내려주세요!”
그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사는 대꾸를 하지 않음으로서 그의 항변에 대해 명확히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소르손’은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버리고 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는 시련에 들었고 믿음과 용기가 부족해 실패했다고 자책했다.
그녀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릎 위에 올린 라스건을 움켜 쥐었다.
한때 그의 고향이었던 도시에서 점점 멀어져가며,
자신과 연인에게 그리고 황제에게 무언의 맹세를 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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