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코스텔린’은 습관적으로 부대를 시찰했다.
이전 임무에서도 커미사르의 시찰은 연대의 사기를 돋구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크리그 연대의 병사들은 그의 시찰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들의 사기는 이미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높다고 커미사르는 생각했다.
그의 반궤도 차량이 공항을 가로질렀다. 크리그 병사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모르고 있었고 신경쓰지도 않고 있었다.
그들은 연대를 지휘하는 장군들을 신뢰하고 있었고
명령은 그들의 목숨을 황제에게 바치기 위한 기회로 여겼다.
확실히 병사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궤도 차량의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묻힐 정도로 요란한 포격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제186 보병연대의 중자주포들은 도시의 서쪽 외벽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 시간 전부터 계속 포격이 이어졌지만 견고한 도시의 외벽은 완전하게 무너지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메두사’ 공성전차는 사거리가 짧지만 강력한 화력 덕에 제일 가까이 배치되어 사격을 하고 있었다.
얕은 참호에 주차된 이 강력한 공성전차들은 긴 외벽해체 작업을 증명하듯
빈 대포의 탄피를 하나득 쌓아놓고 있었다.
감마 소령이 중대 본부로 지어진 텐트 앞에서 커미사르를 맞이하기 위해 나타났다.
그러나 큰 소음과 마스크를 쓴 소령 덕에 입모양도 유추할 수 없었다.
커미사르는 소령이 밖으로 나오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안내를 계속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가 외벽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자욱한 분진의 폭풍이 ‘코스텔린’의 목과 그가 쓰고 있는 마스크 주위로 날아들었다.
평소에 크리그의 방독면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몇 채의 건물과 뒤로 너머 보이는 고가도로들을 제외하고는 서쪽 거리는 완벽하게 평탄화되어 있었다.
이제 보병들이 투입되어 부서진 잔해를 쓸어내면서 전차들이 전진할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후방의 병사들은 원래 메두사 공성전차가 있던 곳에서 불과 50미터 앞으로 나가 전차용 참호를 파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커미사르에게 ‘히에로니무스 시티’의 철거작업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진행 될 거라는 걸 유추하게 할 수 있었다.
‘코스텔린’은 네크론들이 얼마나 더 인내심을 가질지, 공격자들은 얼마나 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용인할지,
이 광경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제국방위병들이 먼곳을 응시하며 라스건을 고쳐잡았다.
포격을 이어가던 메두사 공성전차가 침묵했고 라스건의 총성은 이제 커미사르에게도 들렸다.
틀림없는 아군의 교전 소리였다.
커미사르는 재빨리 권총집에서 플라즈마 권총을 빼내들고 주위를 살폈다.
그의 앞에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유연하게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고 100미터 떨어진 메두사 공성전차들 사이를 맴돌았다.
거인의 형체는 사람의 골격과 똑같았다.
늑골과 척추가 드러나 있었고 몸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 뼈들은 금속 장갑으로 도금되었거나 그 자체가 금속처럼 보였다.
놈은 누더기가 된 푸른색 비단 망토를 입고 있었고
끝이 양쪽으로 갈라진 형태의 자기 키보다 큰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 지팡이 아래로 녹색의 눈이 은빛 두개골의 눈구멍에서부터 불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거인의 모습은 반투명한 이미지로 흡사 제국의 ‘홀로그램’ 기술처럼 느껴졌다.
크리그 병사들이 거인을 향해 라스건 사격을 시작했을 때 라스빔은 거인을 관통해 의미없이 흩어졌다.
‘코스텔린’은 그것이 단지 이미지인지 의심했지만 거인이 스스로 서있는 모습, 주위를 관찰하면서
크리그 병사와 전차들을 보는 걸 보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코스텔린’은 훈련받은대로 야전에서 의심스러우면 일단 쏘고 봐야한다는 상식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크리그 병사들도 배터리 탄창을 아끼기 위해 총만 겨눈 채 사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거인은 자신을 향한 공격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듯 아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모든게 조용해졌을 때 마침내 놈은 입을 열었지만
그 목소리는 ‘코스텔린’이 살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끔찍한 소리였다.
거인의 목소리는 증오를 담은 뒤틀린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컸으며 ‘코스텔린’은 그 소리가 너무 컸기에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고통을 버텨야했다.
그러다가 거인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침묵만이 감돌았다.
급하게 ‘코스텔린’이 공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어린아이와 여성으로 구성된 피난민 무리와
심지어 헨릭 총독의 행성방위군까지 그에게 몰려와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건데
그들도 ‘코스텔린’과 같은 거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크리그 중위 하나를 붙잡아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아까 전 그가 도시에서 봤던 거인의 이미지가 공항에서도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도시 곳곳에 흩어진 다른 크리그 연대에서도 거대한 외계 거인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빗발쳤다.
이를 증명하듯 녹화된 동영상과 사진들이 전송되어 같은 시간에 도시 북, 남, 동쪽에서 거인이 출현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시간 후 ‘코스텔린’은 다시한번 더 186번 대령의 집무실에 오게되었고 ‘헨릭’은 창가를 맴돌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동시에 노련한 엔진시어들은 외계인의 말을 제국의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86번 대령은 고대의 기록장치를 꺼내 결과물을 동료 장교들 앞에서 재생했다.
그것은 무감정의 기계적인 어조로 “이 행성은 짐의 것이다.” 라며 완벽한 악센트의 제국 고딕어로 나타났다.
“짐은 지배하는 자이며 통치자다.
너희 어리석은 종족들이 이 땅을 걷기 수 백만년 전부터 짐의 백성들은 이 행성 곳곳을 걸어 다녔다.
너희는 우리가 긴 잠에 빠진 기회를 틈타 그 위에 도시를 지었지만 우린 깨어나 원래의 것을 되찾으리라.
지금 당장 이 행성을 버리고 떠나라 어리석은 종족아, 그렇지 않으면 짐은 파멸을 내릴 것이다.”
“물론.”
대령은 뒤에 이어지는 긴 침묵을 깨며 말했다.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는 이 명백한 침략행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코스텔린’이 대답했다.
“의심할 여지없는 경고 메시지군요. 놈의 말에 다른 메시지가 들어있었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단순한 경고였다니..”
“네크론이 우릴 두려워한다는 확실한 증거다.”
대령이 말했다.
대령의 의견에 ‘코스텔린’은 동의할 순 없었지만 굳이 논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커미사르와 다르게 헨릭 총독은 허둥대는 표정을 지으며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실례하네만.”
그가 말했다.
“어제 내게는 행성을 구할 가능성이 낮다고 하지 않았소, 대령?”
“확률은 알수 없소.”
대령이 말했다.
“우리는 네크론과 교전은 처음이니까.”
“전에 자네가 나보고 기함에 탑승해라고 했었지.”
‘헨릭’ 총독은 ‘코스텔린’을 가리켜 말했다.
“서둘러야해. 이 행성에는 90억의 시민들이 있어. 대피까지는 얼마나 걸리겠나?”
그의 말에 186번 대령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헨릭’ 장군?”
“내 말뜻은.. 모든 선택지를 고려해야한다는 거요.
네크론의 영주가 이 행성을 떠나라고 했소. 어쩌면 우리가 - ”
“우리는 적과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소.”
“황금옥좌를 걸고 결코 그런 뜻이 아니오! 물론 거부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메시지가 적어도 이 근방의 6개 다른 도시에도 전송되었소.
시민들이.. 시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단 말이오.
지금 내게 들어오는 행정보고에 따르면 행성 전체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소.”
“그건 내 알바 아니오.”
대령이 말했다.
“그리고 행성방위군도.. 그 거인이 등장 한 뒤로 한시간 동안 100명이나 탈영자가 발생했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체포도 추적도 불가능합니다, 대령.”
“그렇다면 장군이 본보기로 그 100명을 처분하리라 믿겠소.”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대령. 저 많은 시민들.. 90억명의 시민들에 대한 거요.
지금 구조선은 터무니없이 부족해. 시간을 벌수 있다면 피난민들 중 일부는 구할 수 있을거고.”
“물론, 우리는 시간을 벌겁니다.”
‘코스텔린’이 대답했다.
“네크론을 최대한 막을 겁니다.”
커미사르는 총독의 의견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판단이 옳을 지도 몰랐다.
현재 히에로니무스 시티 전체적으로 진행되는 대피상황을 본다면 네크론들은 만족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90억명 시민들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고 ‘코스텔린’이 처음에 거부당했던 제안,
‘행성의 모든 시민들을 대피시킨 후 행성 자체를 파괴한다’는 옵션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건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는 크리그의 장군들이 반대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사태를 보고 있지도 않았고 설사 행성의 주민들 전체가 대피할 수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90억명은 최전선으로 돌격시켰으면 돌격시켰지 그대로 놔줄 일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유감스럽게도 총독의 의견을 지지할 수 없었다.
만약 커미사르인 그가 계속 후퇴를 주장한다면 186번 대령은
그에게 권총을 겨누거나 심지어 쏠 수도 있었다.
‘코스텔린’은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총독.. 아니 장군. 장군의 의견은 이해합니다.”
대령이 말했다.
“1시간 후 장군을 위한 첫번째 탈출선이 이곳 태양계로 진입 할거요.
그건 그렇고 구조작전은 어떻게 되가고 있소? 그.. ‘아렉스’라는 아이 말이오.”
“그건..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오.”
대령의 능숙한 화제전환의 늪에 ‘헨릭’ 총독은 허우적댔다.
“수송기가 15분 전에 출발했소.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을거요.. 그건 그렇고,
그레네디어 분대를 빌려준 것에 감사도 못했군. 병사들을 빌려줘서 고맙소, 대령.
분명 이번만큼은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소..”
“당신의 조카딸은 해가 지기 전에 이 행성을 떠날 수 있을거요, ‘헨릭’ 장군,”
대령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당신과 같이.”
“아니오.”
‘헨릭’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말하겠소. 나는 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도망칠 생각은 없소.”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대령은 조용히 말했다.
“방금 전까지 이 작전에 대한 당신의 헌신에 의문을 품던 참이었소.”
‘헨릭’ 총독은 대령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확신하지 못한 채 눈을 찡그린 채 크리그 장군을 바라봤다.
대령은 그저 그 자리에서 서있었다. 하지만 ‘코스텔린’은 이미 모든 걸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대령이 권총집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는 걸.
- - - -
30년 짬밥은 괜히 먹은게 아니죠. 커미사르는 눈치보고 짜지는데
눈치 없는 총독은 바른 말하다가 총맞을 뻔함 ㅋㅋ
'워해머 소설 번역 > 데드맨 워킹 Dead Men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 시련과 맹세 (0) | 2022.01.24 |
---|---|
20. 안습의 주인공 (0) | 2022.01.24 |
18. 협상왕 커미사르 (0) | 2022.01.24 |
17. 겁쟁이, 일어서다. (0) | 2022.01.24 |
16. 대탈출 (0) | 2022.0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