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발의 라스빔이 ‘소르손’ 뒤편 잔해더미로 쏟아졌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귀를 스쳐 상처를 냈다.
‘소르손’은 잔해 더미로 몸을 숙였고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다행이 ‘웨버’와 라스건을 든 다른 일행이 곧바로 반격했고 적과 일행이 서로 라스빔을 주고받았다.
‘소르손’은 그림자 속에서 곱추 등의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영락없는 돌연변이들이다.
이틀 전 그가 겪었던 끔찍한 돌연변이와 비교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 최하층 밑바닥에서 숨어살던 돌연변이들은 도시가 혼란에 빠지면서 기회를 잡았고
도시의 4분의 1 가까운 층 구역을 차지했던 것이다.
적어도 저 돌연변이들은 최소 두 정의 약탈한 라스건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또 다른 빔이 ‘소르손’ 근처로 날아들었다.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의 여성의 가느다란 팔이 빔에 잘려나갔다.
여자는 잘린 팔을 보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 손으로 감싸 쥐었고 곧 기절했다.
‘웨버’의 라스건이 돌연변이의 목을 관통했고 놈은 끽끽대다가 쓰러졌다.
‘소르손’이 몸을 숨긴 곳은 적에게 주목당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몸을 숨길 곳이 보이지 않았다.
라스건이 빗발치는 한가운데를 벗어나기 위해 ‘소르손’은 낮은 포복으로 전진하기 시작했고
그의 앞에 더 많은 돌연변이들이 보였다.
여덟 아니, 아홉 마리 정도.
라스건 사격이 그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소르손’은 몇 초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절망 속 유일한 희망은 그에게 다가오는 돌연변이들이 화기를 갖고 있지 않은 가능성 뿐이었다.
궁지에 몰린 ‘소르손’에 있어서 이건 최악의 계획이었다. 그는 고개를 낮게 숙이고 전속력으로 돌연변이에게 뛰어들었다.
악취나는 냄새와 농포로 뒤덮힌 괴물은 ‘그록스(워해머 세계관의 파충류 가축)’만큼 힘이 대단했다.
놈은 가볍게 ‘소르손’을 넘어뜨리고 그의 가슴을 앙상하게 뼈만 남은 무릎으로 짓눌렀다.
녀석은 ‘소르손’을 향해 승리의 미소를 띄며 웃었고 역한 침이 그 위에 떨어졌다.
‘소르손’은 본능적으로 돌연변이의 팔을 막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는 또 다시 시작된 폭발의 지진에 구원받았는데 흔들리는 폭진에
돌연변이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고 ‘소르손’은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일어난 폭진으로 그는 한번 더 균형을 잃었고 돌연변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발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소르손’은 바닥에 쓰러졌지만 그의 눈앞에 단단한 벽돌하나가 보였다.
그래서 그것을 한 손으로 잡고 발목을 잡고 있는 돌연변이를 향해 휘둘렀다.
얼마나 쎄게 후려쳤는지 다음 타격을 하기도 전에 충격으로 벽돌이 날아갔다.
하지만 두 번째는 필요 없어보였다.
돌연변이의 못생긴 얼굴이 말 그대로 구겨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르손’은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폭발로 인한 지진의 흔들림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는 서있을 수도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출렁이는 고가도로 위에서 ‘소르손’은 황제께 살려달라 기도했다.
곧 지진은 가라앉았다.
‘소르손’은 겁에 질려 도망가는 네 마리 돌연변이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돌연변이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다음 함께 싸우던 사람들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고
그의 옆에 생명을 잃은 피투성이 괴물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쓰러트린 돌연변이의 시체 앞에서 그는 숨을 죽였다.
그는 죽은 돌연변이를 보며 질겁하는 두려움과 적을 쓰러트렸다는 자부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시체는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소르손’은 난투극을 벌이는 소리를 듣고 마지막 남은 돌연변이를 처리하는 일행 한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돌연변이를 제압한 후 라스건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는 돌연변이의
최후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 총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게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때 한 여자가 도움을 청했고 ‘소르손’은 누군가가 다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자는 파편의 잔해 옆에 기대있었고 그녀가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부상자가
검은 머리의 ‘웨버’라는 걸 보았을 때 ‘소르손’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의 친구 곁으로 달려갔다.
‘웨버’는 숨을 쉬고 있었지만 라스빔에 관통당한 가슴의 상처가 화상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고 눈의 초점은 흐려지고 있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소르손’은 울부짖었다.
“병사용 의료함이 필요해요!”
“그냥.. 바람좀 쐬게 해줘..”
‘웨버’가 말했다. 그는 손으로 ‘소르손’의 팔을 잡고 상체를 올리기 위해 애썼다.
‘소르손’은 그를 조심스럽게 부축해 잔해 더미에 기댈 수 있도록 도왔다.
“잠시.. 숨좀 돌리자..”
그의 근육은 마치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듯 강하게 ‘소르손’의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의 손은 죽음을 가져오는 경련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태도에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는 간절한 마음으로 ‘소르손’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뭐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까 전에 들었던 말에 대한 확신이 듣고 싶었다.
‘소르손’의 마음 속에서 꼭 물어보고 싶은 단 한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웨버’에게 물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아까 말했던 여자요.”
그가 말했다.
“친구가 어떻게 그 여자를 알았던 거죠?”
처음 ‘웨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과 관계되지 않은 대화라는 것에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떤거 말이지?”
그가 말했다.
“그.. 총독의 딸?”
“걔는 조카에요.”
“총독의 조카요. 근데 확실해요? 그 여자가..”
“그.. 친구는 뉴스에서 본 얼굴이랬어.. 작년 식량..폭동 뉴스에서.. 확실하진 않아..”
“그 친구가 묘사한게 있어요? 생김새라든지 옷차림.”
“모르겠군. 그냥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데. 하지만 착각한거겠지..
그런 사람이 왜 하층구역까지 오겠냐.. 애송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웨버’는 눈을 감았고 ‘소르손’은 그의 팔을 쥐고 있는 ‘웨버’의 힘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에 ‘웨버’의 손을 힘껏 쥘 뿐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깊은 숨을 끝으로
그의 영혼은 사라졌고 ‘소르손’의 손아귀에 힘없는 손가락만 절룩 거렸다.
“이제 어떡하죠?”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르손’은 남은 피난민들이 모두 자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팔을 잃은 여자는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소르손’이 대답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계속 갈까요?”
다른 사람이 물었다.
“다른 관문을 찾아보는게 나을지도 몰라.”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몰라! 몰라! 모르겠다고요!”
‘소르손’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그걸 기점으로 ‘소르손’의 가슴 속에 묵혀놨던 여러 감정들이 붓물처럼 터져나왔다.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양의 눈물이 서럽게 쏟아졌다.
마음을 진정하려 애쓰며 ‘소르손’은 심호흡을 시도했다.
“‘웨버’ 아저씨 말이 맞아요.”
그가 말했다.
“도시 밖으로 나갈 방법은 없어요. 다시 상층으로 올라가야해요. 거기가 안전하고..
또.. 총독이 뭐라도 할거에요. 황제를 믿는다면 반드시.. 구조대가 올거에요.”
그 말을 하면서 ‘소르손’은 이제 이 일행들과 작별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치열한 하루를 보내면서 ‘아렉스’에 관한 건 잊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정전이 있던 이틀 전 밤. 그녀는 집에 있던게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204 층 구역에 있었다.
‘웨버’는 그녀가 총독의 조카라는 걸 믿지 않았지만 그건 ‘웨버’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204층 구역은 그녀가 사는 최상층에서 ‘소르손’이 사는 223층 거주구역까지 연결되는 유일한 고가도로가 있는 곳이었다.
‘아렉스’는 자신을 찾으러 왔었는데 지금껏 두려움 속에서
그의 이기심 때문에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또한 그녀의 성격 상 삼촌에게 어디로 갈거라고 말을 하진 안했을 것이므로 병사들에게 구출된 가능성도 없다.
아마 그녀는 혼자일 것이고 크게 다쳤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어디있는지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그곳으로 돌아가야했다.
그녀를 찾아야했다.
'소르손'은 쥐고 있던 ‘웨버’ 아저씨의 손을 그의 가슴 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웨버'의 것이었던 주인 잃은 라스건을 집어들었다.
놀랄 만큼 라스건의 무게는 가벼웠다.
마치 황제께서 그에게 싸우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소르손’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서 싸우기를.
그런 이유시라면 기꺼이 받아드리겠노라고 결심했다.
왜냐면 지금 그는 싸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소르손’은 자신은 영웅이 될 자격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은 될 수 있었다.
그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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