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릭슨’은 세명의 광부를 대동하고 안내를 시작했다.
작업반장은 그가 발견한 물체를 감독관에게 보여줄 일에 흥분해있었다.
분명 현장 인부들 사이에서도 이 사건은 꽤나 화젯거리였을 것이다.
터널입구에서 거대한 채굴 트럭이 지나가자 ‘헤릭슨’은 “불 켜세요.”라고 안내하며 안전모에 달린 전등을 켰다.
다른 세 명의 광부들도 전등을 켰지만 ‘소르손’은 안전모에서 전등 버튼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번 손을
더듬거리다 당황한 ‘소르손’은 옆에 비서 ‘크레우즈’가 능숙하게 키는 것을 보고 겨우 체면을 차려 불을 켤 수 있었다.
갱도는 그의 예상과 달리 무척 넓었다. 다섯 사람과 ‘크레우즈’는 함께 따라 걸었다.
반장 ‘헤릭슨’이 앞장서고 ‘소르손’과 ‘크레우즈’가 그 뒤에 나머지 인부 셋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일종의 예의를 차린 셈이었는데 6인의 전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어둡고 분진이 휘날리는
갱도를 밝히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두 세 번 갱도가 갈릴 때마다는 그는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르손’은 ‘헤릭슨’이 옆에 서서 길을 안내 해주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했다.
‘소르손’은 곧 목적지에 다다를 것을 느꼈다. 왜냐면 채굴 드릴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6인의 전등빛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작업 중인 인조인간들의 뚜렷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인부들이 작업을 거부해서 말이죠. 서비터라도 급하게 챙겨와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래도 제가 남은 인부들을 감시하지 않으면..”
‘소르손’은 별로 개이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10개의 서비터들이 작업을 돕고 었었다. 아마 인공 배양기에서 자라난 인조인간들이겠지.
그 외형은 ‘소르손’이 돌연변이를 봤을 때가 상기될 만큼 끔찍한 몰골이었다. 그나마 서비터가
돌연변이보다 나은 점은 적어도 이 인조인간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 서비터들은 철처하게 제국을 섬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으니까.
채굴 작업을 위해 이 인조인간들은 특화설계가 되어있었다. 뼈와 살은 금속 드릴과 융합되어 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대쪽 팔은 압축 피스톤으로 작동하는 암석파쇄용 해머가 있었고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근육흥분제는 평범한 인부라면
지쳐 쓰러질 고된 작업에도 쓰러지지 않도록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었다.
허나 ‘소르손’은 거리를 두기 위해 서비터들을 의식했다.
반대로 그의 시선을 끈건 요상하게 생긴 기둥이었다.
그것은 동굴의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1미터 정도 높이였다.
어쩌면 2미터 정도일지도 모르겠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소르손’의 키보다 조금 더 작은 수준이었다.
마치 미니어쳐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 같았다. 그리고 그것과 같은 타입으로 보이는 네모난 조각이 동굴 벽에 삐져나와 있었다.
‘소르손’은 기둥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검은 암석으로 조각되어 있었고 창백한 녹색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데체 저건 무슨 암석입니까?”
그가 ‘헤릭슨’에게 물었지만 작업반장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저 새겨진 표식은 또 뭐고?”
그의 비서 ‘크레우즈’가 흥미롭다는 듯 데이터 슬레이트의
조사용 빔으로 기둥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그.. 문자 같은게 아닐까요?”
‘헤릭슨’이 주장했다.
“이런 문자는 본적도 없는걸.”
‘소르손’이 말했다.
그러나 ‘헤릭슨’의 말 뜻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규칙적인 패턴처럼 종종 같은 모양의 기호들이 반복해서
눈에 띄는 것이 그에게도 마치 문자처럼 보였으니까. 기둥 둘레를 따라 긴줄처럼 이어지고 기본적으로는
원형의 상징이었지만 더욱 복잡한 수준의 파생 상징들이 빼곡했다.
“다시 시작된 것 같아요.”
광부가 겁에 질린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이라니? 뭐가?”
‘소르손’이 질문했다.
감독관의 반응에 ‘헤릭슨’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대꾸했다.
“그냥 겁쟁이들의 상상이죠.”
“반장님은 못 느끼세요?”
광부가 항의했다.
“머,머릿속을 조여오는 압박감이.. 지난번에 제가 저걸 봤을 때.. 저게..”
그 순간 ‘소르손’도 그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두개골에서 뭔가가 자라나는 것처럼 심각한 두통이 발생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눈을 감고 깊은 심호흡을 시도했다.
그러자 증상은 호전되었다.
‘소르손’은 작업반장 ‘헤릭슨’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저 겁쟁이 광부들 때문에 괜히 자신도 겁을 먹어 똑같이 행동하게 된거라고 말이다.
그가 다시 기둥을 쳐다보았을 때 비서 ‘크레우즈’가 맨손으로 기둥을 만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소리쳐서 그걸 제지하려했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 다르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스로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여기 광부들은 ‘크레우즈’가 기둥을 만지기 전부터 수 천번 손으로 만졌을텐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충분히 본 것 같아.”
‘소르손’이 심호흡을 하며 결론지었다.
혹시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건 아닌지 의식하며 내뱉은 한마디였다.
“저 기둥을 보여줘서 고마웠습니다, 반장. 본사에 돌아가 임원들과 상의해볼테니 작업은 마저 개시해주세요.
저 구조물은 별다른 해를 끼치지도 않으니 열심히 작업해서 이번 달 할당량은 채워야죠. 알겠습니까?”
‘헤릭슨’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두 사람을 출구를 향해 안내했다.
한편 한시라도 빨리 지상으로 올라가고픈 ‘소르손’과 달리 ‘크레우즈’는 그 기둥에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기둥을 관찰하던 그녀는 자세를 바로하고 데이터 슬레이트에 몇 가지 메모를 끝내고 두 사람을 따라왔다.
그들이 출구로 나와 여섯 걸음도 채 떼지 않았을 때 광부 하나가 말했다.
“이 소리 안들리세요?”
그가 말했다.
“제발 들린다고 말해줘요. 이 웅웅거리는 소리 말이에요.”
‘소르손’과 일행은 가만히 멈춰서 소리를 들어보려했으나 주위는 조용했다.
화가난 ‘소르손’이 한마디를 하려는 찰나 그 옆에 서있던 비서 ‘크레우즈’가 놀라면서 외쳤다.
“저, 저도 그 소리가 들려요.”
‘헤릭슨’은 그녀의 반응에 고개를 저었다.
“터널에 설치된 음향장비의 소리 때문일겁니다.
게다가 서비터의 드릴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서..”
“그래, 나도 반장 말에 동의해.”
‘소르손’이 재빨리 반장을 두둔했다.
“아무것도 아닐거야.”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걸어갔지만 그때 그에게도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기계적인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유기적인 성질을 띄기
시작했는데 마치 수많은 소음의 합창처럼 느껴졌다. 그는 검은 기둥을 보고싶지 않았지만 격렬한 소음의 고통에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서비터만이 묵묵히 채광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비터 한기가 무거운 왼쪽 기계팔로 기둥을 때리고 말았다.
서비터가 기둥에 충격을 가한 그 순간 밝은 녹색 섬광이 터져 ‘소르손’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아 허우적거렸다.
점점 섬광에 먼 눈이 시야를 되찾아가면서 반쯤 녹아버린 서비터의 몸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웅웅 거리던 소리는 더욱 커졌고 드릴이 코앞에서 작동하듯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을 마구 때려댔다. 겁에 질린 ‘헤릭슨’은
아퀼라의 기호를 그리며 기도했고 두 개, 아니 세 개, 네 개의 서비터가 기둥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평생동안 서비터가 이런 이상증세를 보이는 건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겁에 질린 광부가 말했다.
“어,어떡해요.”
‘크레우즈’가 울먹이며 말했다.
“소르손씨 우리 어쩌면 좋죠?"
“기둥을 만지지마!”
‘소르손’이 패닉에 빠져 어버버거리자 ‘헤릭슨’이 소리쳤다.
“저걸 자극하지 않도록 천천히 이곳을 빠져 나가야해요.
행성방위군에 연락을 취하고 봉쇄를 해야합니다!”
“기둥이!”
또다른 광부가 소리쳤다.
“기둥을 봐 비, 비, 비, 빛난다!”
그의 말이 맞았다. 검은 기둥이 녹색 빛을 뿜어내며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소르손’은 또다시 속이 메스꺼워짐을 느꼈다. 아마도 그가
들이마시는 공기에 녹아버린 서비터의 냄새가 들어온 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작업 중이던 광부들 모두 반장의 말대로 조금씩 뒷걸음질치며 기둥과 멀어졌다.
“혹시 폭탄 같은게 아닐까요?”
광부 한명이 초조하게 소리쳤다.
“시한폭탄이 시작된 걸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에 ‘소르손’ 일행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공유했다.
그리고 ‘소르손’은 귀신에 쫓기는 아이처럼 겁에 질려 내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 고통스러웠고 또다시 ‘아렉스’가 자신을 겁쟁이로 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날카로운 암벽에 몇 번이나 몸을 부딪혔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정신이 번쩍들면서 ‘소르손’은 자신의 행동이 감독관으로서
얼마나 무책임한 짓을 한건지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가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본 순간 모두가 그의 뒤를 쫓아 도망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리프트 앞에 ‘소르손’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맨 먼저 도착했다.
“그래. 여, 여길 빠져나가야해 모두들!”
그가 소리쳤다.
“빨리 나가야해!”
“안전지침대로 광산을 폐쇄해야합니다.”
반장 ‘헤릭슨’이 ‘소르손’이 하려했던 말을 보강했다.
“소르손씨, 당신은 본사에서 왔잖소.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반장의 말에‘소르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반장 말이 맞아. 다른 광산 감독관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야해.”
“그치만 소르손씨..”
‘크레우즈’가 걱정하듯이 말했다.
“그럴 권한이 없으시잖아요?”
“상관없어!”
‘소르손’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지금 상황에 본사와 연락할 길은 없잖아.”
그가 리프트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던 시간을 기억하며 그녀를 설득했다.
‘헤릭슨’은 겁에 질린 광부들을 다독이며 안전지침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소르손’의 어깨를 붙잡고 리프트로 밀어넣었고 ‘크레우즈’와 세명의 인부들이 황급히 뒤따랐다.
“함께 안가는 겁니까?”
‘소르손’이 고개를 돌리며 ‘헤릭슨’에게 외쳤다.
“아뇨.”
반장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는 아직 200명이 넘는 인부들이 있소. 이 리프트는 한번에 5명씩 밖에 탈수 없수다.
모든 인원을 내보내려면 족히 1시간은 걸릴거요. 다 내 가족같은 부하들이지.
그 친구들을 놔두고 혼자 대피할 순 없소.”
그의 말에 ‘소르손’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가시오.”
반장이 리프트의 상승 버튼을 눌렀다.
“최대한 빨리 상부에 알리십쇼!”
올라가는 리프트를 뒤로하고 반장 ‘헤릭슨’은 어두운 갱도로 달려갔다.
그들의 지상으로 올라가는 여정은 죽음같은 침묵 속에서 이뤄졌고 그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졌다.
- - - -
툼월드에서 잠자던 네크론을 깨움
'워해머 소설 번역 > 데드맨 워킹 Dead Men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8. 카놉텍 스캐럽 (0) | 2022.01.23 |
---|---|
7. 말괄량이 귀공녀 (0) | 2022.01.23 |
5. 소르손의 평범한 일상 (0) | 2022.01.23 |
4. 커미사르의 존재 의의 (0) | 2022.01.23 |
3.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0) | 2022.0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