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세타’.
인류제국 템페스투스 은하구역 외곽에 자리한 이름조차 낯선 행성.
비교적 최근에 개척된 곳이기 때문이리라 커미사르 ‘코스텔린’은 추측했다.
행성의 인구는 90억명을 웃돌았고 행성 지표면의 3분의 1은 아직 미개척지대였다. 인류제국의 수많은 신개척지처럼 이 행성
또한 풍부한 광물지대를 가진 곳이다. 덕분에 이 행성은 광물을 채굴하고 이를 공장에서 정제하는 것이 주요 산업이었다.
물론 행성의 십일조의 상당부분이 광물을 납세하는 거고.
이런 자원적 중요도로 인해 ‘히에로니무스 세타’는 제국군에 의해 철처하게 보호받는 행성이 되었다.
커미사르 ‘코스텔린’은 자신의 휴대용 데이터 슬레이트를 조작해 행성이 개척된 후 분쟁 기록을 검색해보았다.
예상대로 이 행성과 근방의 태양계는 완벽하게 제국에게 통제되고 있었고 이 작은 행성은 주변의
다른 이웃행성과 어느 하나의 군사적 충돌이나 갈등이 없었다.
‘완벽한 곳이군.’
그가 생각했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장교님?"
‘코스텔린’은 놀라서 슬레이트를 보던 고개를 들었다.
그는 분명 데이터 슬레이트를 가져온 병사에게 들어가라 손짓했다고 생각했었다.
무심코 데이터 슬레이트를 받아 읽어 내려가면서 가벼운 손짓을 했던 것은 맞는데 좀 더 병사가 알아먹을 수 있도록 제대로 행동을 했어야했었다.
30살의 열정적인 커미사르였던 ‘코스텔린’이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연대에 배속된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임관 초기 그가 연대에
몇 년을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제국방위병들은 장교의 손짓이나 몸짓에 어떠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연대의 병사들은 무조건 명령을 받아야만 행동한다.
제국방위병은 그의 책상 옆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뻣뻣히 서있었다.
비록 이곳이 군함 내부이지만 전투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이 병사는 완전군장을 하고 있었다.
회색빛의 군용 코트와 군복바지, 군화는 ‘크리그 제 186 보병연대’의 상징색이다.
비록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연대들은 회색과 검은색 외에 다른 색을 군복에 채택하는 일은 없기에
서로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병사는 군모와 장갑, 군용 배낭 모두 착용하고 있었다.
라스건도 옆구리에 끼고 있었고.. 그놈의 방독면으로 완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으로부터 연결된 고무호스가 가죽가방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고 산소여과기가 보였다.
커미사르 ‘코스텔린’은 이 특별한 병사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크리그 연대’의 병사들은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극소수의 병사들만 자신의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이름을 가진 병사를 이름으로서 부르는 행위는 연대 내에서 흔한 행위는 아니다. 이름대신 연대의 병사들은 숫자로 불린다.
문서상으로도 이 살아있는 인간들은 그저 숫자일 뿐이고 야전에 투입된 대령과 장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도 크리그 인들 만큼 불쌍한 케이스는 없었다.
이들의 고향 ‘크리그’는 데스월드로 분류된 행성이다.
그는 연대로의 임관 직전 유독한 대기로 인해 이곳의 아기들은 태어날때부터 방독면을 차고 자란다고 들었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이 방독면을 벗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건 틀린 예측이었었다.
그들은 항상 방독면을 쓰고 생활한다.
심지어 같은 방독면을 쓰는 동족끼리도 거리를 둔다.
‘코스텔린’이 근무했던 다른 연대와 다르게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연대는 병사들 사이에서 강한 유대감 따윈 전무했다.
병사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훈련하고 함께 잠을 잤지만 그들 사이의 어떠한 전우애도 우정의 흔적을 살펴볼 수 없었다.
철처히 상호 무관계의 연대다.
임관 후 해가 지날수록 ‘코스텔린’조차 전우애란 것이 허황된 주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그래, 문제 없어.”
그는 이름 없는 병사에게 명령하며 빨리 사라지라는 손짓을 함께 했다.
병사는 경례하고 발뒤꿈치를 돌려 문을 향해 절도 있게 걸어갔다.
“잠깐, 궁금한게 있는데.”
‘코스텔린’이 문으로 걸어 나가는 병사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 측은 몇개 소대가 행성에 상륙하지? 내가 알기론 이 함선에 4개 연대가 있는 걸로 아는데.
일단 이정도 되는 대규모 상륙이라면 ‘하이에로무스’ 당국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관례야."
병사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마스크 속의 공허한 눈동자는 이 커미사르를 섬뜩하게 만들정도였다.
“저희는 ‘메멘토 모리’함에 승선해 있을 것입니다, 장교님.”
그가 말했다.
“앞으로 6일간 정규 전투훈련이 계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네들도 휴가를 즐길 권리가 있어, 병사."
커미사르 ‘코스텔린’이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다스크’ 행성 작전에서 예상보다 많이 고생했잖나.
제국 국방부에서 연대의 희생을 치하하면서 내준 포상 휴가란 말이야.”
“알고있습니다, 장교님.”
“물론 자네 중위가 어떤 훈련 일정을 잡았든
모두가 스스로 훈련을 자원했다는 건 잘 알아.”
“그렇습니다, 장교님. 모두가 훈련을 자원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커미사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초에 왜 나가는 이 병사를 붙잡고 이렇게 뻘줌한 분위기를 조성해야하는 지 이해가 안됐다.
일단 이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머리를 굴려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그가 떠올렸다.
“감마(Gamma) 소령이 진급했다면서?
내 대신 진급 축하한다고 전해주게. 최대한 빨리 직접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말이야.
이번 진급으로 인해 새로운 증원 병력을 지휘할 수 있을 거라고도 말하고.”
“감마 소령이라면?”
“내 말은 186번 감마 소령 말이야.”
‘코스텔린’이 정정했다.
“기왕하는 김에 진급한 감마 소령 대신 들어올 새 감마 소령한테도 축하한다 전해.”
“예 알겠습니다, 장교님.”
커미사르 ‘코스텔린’은 진급 축하는 직접 가서 말해줘야 한다는 것 즘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연대의 병사와 장교들은 그가 축하해준다고 웃을 인물들이 아니다.
게다가 오늘 오전 6시부터 공식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휴가가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다시 데이터 슬레이트를 읽으려했으나 여전히 병사는 문간에 서있었다.
“고마워, 그게 다야.”
‘코스텔린’이 말했다.
“해산.”
병사는 다시 경례를 했고 자동문이 스르륵 닫혔다.
30년간 근무해왔지만 이 ‘데스 코어’들을 상대하는건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다.
한 점의 감정을 들어내지 않는, 표현력 따윈 전무한 병사들을 상대하는 건 그에게 미칠 노릇이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데이터 슬레이트로 ‘하이에로무스 세타’에 대한 정보를 읽어내려갔다.
현재 행성의 수도인 ‘하이에로모니 시티’는 온화한 가을의 계절이었다. 올해 강우량은 평균을 밑돈다.
그에게 휴가를 보낼 행성의 날씨가 어떠한들 상관없었다.
‘코스텔린’은 6일간의 휴가동안 답답한 군함을 벗어나 술집, 식당, 각종 유흥업소에서 굶주려있던
진짜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즐길 작정이었다.
진짜 사람과 평범한 대화를 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즐거운 일이 되버렸다.
그중에서 제일 행복한건?
그의 휴가 동안 반경 3만 키로미터 이내에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 연대의 병사 단 한명도 얼쩡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때 갑판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한 무리의 ‘데스 코어’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고 커미사르는 이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느끼는 진동음은 똑같이 군홧발을 맞춰 걷는 병사들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맨 앞에 있던 워치마스터(크리그 연대의 부사관 계급)가 “고개 왼쪽으로 돌렷!” 이라 외치자
일제히 병사들은 ‘코스텔린’을 향해 고개를 돌려 경례를 한다. 그리고 커미사르는 다시 경례를 되돌려줘야했고
이 병사들은 커미사르가 뒤로 걸어 나갈 때까지 참을성 있게 예의를 갖춰 대기했다.
공허하고 어두운 60쌍의 시선이 멍하게 그를 주시한다.
가끔씩 ‘코스텔린’은 이 병사들 과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이 연대에서 보기 힘든 백발에 매부리코의 늙은 커미사르를 말이다.
오목한 창문을 통해 그는 훈련준비를 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보급상자를 치우며 그들만의 훈련장을 만들고 있었다.
모두가 검은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42연대 아니면 81연대 소속으로 추측되었다.
어깨의 뱃지는 너무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두 연대중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병사들은 모래주머니를 향해 총검을 찔러넣는 훈련을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모래주머니에는 본인들의 모습을 딴 그림이 붙여져 있었다.
‘코스텔린’은 임관 초기 이런 비상식적 훈련에 대해 워치 마스터에게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데스 크리그 부사관이 말한 대답은 실로 가관이었다.
그는 딱딱한 어조로 군대에서 가장 큰 위협요소는 각자의 계급에서 시작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메멘토 모리’함에는 전문적인 훈련시설들이 있다. 사격실이라던가 체력훈련실이라던가.
근데 그는 휴가이기 병사들이 아무도 시설을 사용하지 않을거라 생각했기에 보급상자를 옮겨놨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다르게 휴가 6일간 병사들의 자체 훈련이 실시되었고 상자는 다시 치워지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관 식당은 비어있었다.
오직 한명의 커미사르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탈모가 진행되는 머리와 굽은 턱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커미사르들과 대조적으로 ‘데스 크리그’의 부사관들은 사관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리 계급이 높아져도 항상 병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코스텔린’은 식사를 받아들고 먼저 앉아 식사를 하는 그 커미사르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는 먼저 자기소개를 했고 그 댓가로 그 이름모를 커미사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만하임’. 42연대에 새로 배속된 커미사르였다.
그의 신상을 알게되자 ‘코스텔린’은 이 식사의 이야기 주제가 무엇이 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저는 ‘다스크’에서 한달 반정도 있었습니다. 전쟁의 거의 끝무렵에 참전했지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이 병사들은 터무니 없더군요. 무모하다는게 맞을겁니다.”
“그래서?”
‘코스텔린’이 자연스럽게 말을 붙였다.
그는 다음 이야기가 ‘그래서’로 시작될 걸 예상하고 있었다.
“이 연대에 오기전에 다른 연대에서도 근무해보셨죠?”
커미사르 ‘만하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코스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타찬 정글파이터 14연대였지.”
“와 카타찬!”
커미사르 ‘만하임’이 탄성을 질렀다.
“그 병사들은 다루기가 절대 쉽지 않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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