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터 소르손’은 평생에 지금처럼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
숨을 고르면서 영화에서 보았던 근육질에 네모난 턱을 지닌 터프가이들을 떠올렸다.
그 터프가이들도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똑같이 무서워했으려나?
남자라면.. 아마도 그럴걸?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무섭다고 겁쟁이처럼 내빼지는 않을 것이다.
싸나이답게 일단 맞부딪혀 보는거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건 그때가 되봐야 알 일이다.
곧 그는 현실로 되돌아와 주머니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차갑고 단단한 반지를 움켜쥐었다.
“어머 큰일났어!”
‘아렉스’가 놀라며 말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소르손'는 깜짝 놀라며 주머니 속 손을 황급히 빼내었다.
뭐지? 그녀가 내 행동을 눈치 챈 건가? 아니면 얼굴에서 너무 티가 났나?
‘소르손’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식사를 하던 포크를 내려놓고 얼굴을 손으로 반쯤 가리는 행동을 했다.
마치 무대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녀는 시선을 조심스레 그에게 맞췄다.
“내 뒤로 두 테이블 뒤.”
‘소르손’의 시선이 그녀가 말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니 아니, 좀더 오른쪽에. 파란 옷을 입은 남자보여? 수염에 대머리.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소르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냥 밥먹고 있잖아. 내가 왜 너랑 여기서 데이트하겠어? 여긴 어둡고 사람도 많아서
네가 누구인지 들킬 일도 없어. 그냥 지나가다 봤다고 알아차릴 일 없어.”
“그래 오빠 말이 맞아. 너무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가봐..”
긴장했던 어깨를 축 내리며 그녀의 동그란 얼굴은 안도감에 누그러졌다.
“그 사람이 왜 여기서 밥을 먹고 있겠어?”
“근데 넌 여기있잖아.”
‘권터 소르손’은 웃으며 그녀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치만 난 지금 신분을 숨기고 온거구.”
그녀는 포크를 들어올리고 남자가 심술궂다는 듯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발각되기 싫어. 근데 여기 정도면 ‘히에로니무스 세타’의
행성총독의 조카를 찾기 위한 수색지역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니까.”
“그래.”
'소르손'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네 말이 맞길 바란다.”
두 사람은 ‘히에로니무스 하이브 도시’의 짧은 첨탑들 중 하나에 있었다. 초저녁의 시간이었지만
바깥의 공중도로는 한적했다. 그리고 남자는 이 식당에 여자친구와 들어가기 위해 몇주 간 모은 돈을
식당 문지기에 뇌물로 찔러주었던 것이다. 그들이 식사하는 이곳은 합성 식품으로 만들어진 인공 육류가
아니라 진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이른바 하층민이 갈 수 없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의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는 충분히 떨어져있었고
손님들의 요청을 받기 위해 친절한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렉스’에게는 이 식당의 퀄리티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녀의 인생은 이것보다 더 화려한 것에 익숙했다.
“내가 너무 민감했던 것 같아. 미안해.”
그녀가 말했다.
“‘한릭’ 삼촌이 계속 신경쓰여서. 그래도 내가 집에서 이렇게 먼 곳까지 와있다는 건 상상도 못하겠지.”
"그래."
'소르손'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래..”
그는 사실 일단 최대한 멀리 간 뒤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랬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한 상상에 빠지게 했을까?
이런 깜짝 계획도 세우고 그녀와 남은 생을 함께하리라 마음먹게 했는지 생각했다.
이전까지 두 남녀는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하층구역의 '소르손'은 절대 ‘아렉스’의 구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녀가 ‘소르손’의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꽉 쥔 주먹에 든 반지를 다시 호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하고픈 말이 많았다.
왜 그녀는 여기 있을까?
이 정기적인 데이트는 그녀에게는 그저 재밌는 놀이에 지나지 않는 건가?
최상층부의 귀공녀의 스릴 넘치는 하층부 대모험같은거.
고작 그런 일탈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지도 모른다는 건 자각하는 걸까?
그는 다시 주머니에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여기서 고백한다면..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는 여전히 두려웠다.
두 사람의 데이트는 총독부 구역으로 향하는 자동택시를 타면서 마무리를 짓는 듯 했다.
비록 도시 관리자들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몇 구역을 남겨두고 내려야했지만 말이다.
거리를 걸으며 ‘권터 소르손’은 자신의 직장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대화를 리드했다.
광산의 연간 생산량이 어쩌고 저쩌고. 남자는 분명 그녀가 지루해할 거라는 생각에 아차 싶었지만 막상
그녀의 표정은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사실 ‘아렉스’는 관심 있는 척 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재능 덕에
그녀는 최상부에서는 항상 지루한 행성의 공식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었지만 말이다.
남자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때는 광산의 정재소의 개장일이었다.
그녀가 축하를 위해 참석한 그 행사에서 ‘소르손’은 ‘아렉스’의 아름다운 녹색 눈빛을 처음으로 보았다.
살랑거리는 부드러운 갈색머리의 그녀의 옆에는 공장의 관리자가 공손하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고 그녀는 지금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뜨거운 용광로의 열기로 인해 생긴 현기증으로 그녀 앞에서 발을 헛딛여 넘어졌을 때 그녀가 건넨 친절한 농담은 그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지금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가장된 호기심일까?
두 사람은 플라스틸과 유리로 된 보도용 도로를 걷고 있었고 멀리 방울방울 자동차들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고가도로가 눈에 띄게 적었고 군중들도 적었다.
“근데.”
남자의 광산 이야기를 듣던 ‘아렉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네 광산에 문제.. 같은 건 없는거지?”
“문제?”
갑작스러운 여자친구의 질문에 ‘소르손’이 놀라며 되물었다.
“에이, 문제라니. 내 팀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할당량도 잘 채우고 있는데.
근데 갑자기 왜 그런걸 물어?“
“그게 우리 삼촌이 그 광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걸 들은 적 있어서.
내가 그냥 잘못 들었던걸 수도 있고.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봤어. 나보다 오빠가 잘 아니까 별 상관없겠지.”
이야기를 하며 두 사람은 교차로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렉스’는 ‘소르손’을 자동 리프트로 이끌었다.
작은 공간의 리프트는 이전 탑승자의 땀냄새와 역한 대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분명 최하층에서부터 올라오는 리프트임이 확실했다.
“잠깐, 나는 이러면 안돼.”
그가 말했다.
“니가 최상층부로 갈거라면 난 여기서 내려야된다고.”
“누가 올라간데?”
그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녀가 승강기의 전자패널을 만지더니 철문이 덜컹거리며 닫혔고 빠른 속도로 리프트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소르손’은 그녀가 기계를 조작해 중간에 승객들을 받지 않기 위해 총독 조카인 자신의 개인코드를 입력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난 내 구역에서 몇 층 아래에 내리곤 해.”
“거기에 최상층으로 가는 비밀통로가 있어. 최상층 구역에 내려서 경비병이랑 감시카메라를 피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
“몇 층 정도가 아니라! 무진장 빠르게 내려가고 있거든?”
‘소르손’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남자가 너무 걱정이 많은거 아니야?”
‘소르손’의 겁먹은 행동에 그녀가 일갈했다.
“오빠 하층 출신인거 맞아?”
“아니 이정도로 낮은 곳은 아니라고!”
‘소르손’은 꽥꽥 소리질렀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하는 듯 보였다.
오히려 초롱초롱 흥분한 눈빛으로 리프트의 안전바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또 다시 제멋대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고속으로 하강하던 리프트가 덜컹거리며 멈춰섰다.
그리고 내부 통신 패널에서 관리자가‘더이상 하강하려면 높은 수준의 보안키가 필요합니다,’라며 그녀의 모험에
제동을 걸자 ‘소르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녀는“누구 맘대로?”라며 강제로 리프트의 철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어둡고 엉망진창인 하층 구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익숙해지면..”
안도한 ‘소르손’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자신있게 하층구역을 소개했다.
“생각보다 나쁜 곳은 아니야. 해가 져버려서 아쉽다.
낮에는 난간에서 지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겨우 사람들이 피워둔 화톳불만 보이겠네.”
게다가 지금처럼 어두운 밤이면 괜히 난간에 기대려다가 추락할 수도 있었다.
두 연인은 군중들 사이를 헤치며 느릿느릿 나아갔고 두 사람의 꽤 고급스러운 옷 때문에 주목을 받을지언정 별다른 범죄에 노출되지는 않았다.
‘소르손’은 이번 일만은 ‘아렉스’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이 하층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건만 오후에 있었던
고급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하층으로 내려온 순간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철처히 익명이었고 중층이나 상층부에서
그 누구도 그와 특히 총독의 조카인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지 심문하지도 않으니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두운 거리의 상점은 모두 문이 닫혀있었고 창문마다 플라스틸 철제로 막혀있었다.
희긋희긋한 백발의 노인만이 손수레를 끌며 회색 단백질 블록을 주섬주섬 꺼내 먹는게 다였다.
주위에는 불에 탄 자동 택시의 프레임이 널부러져 있었고 골목에 유일하게 빛을 제공하는
전등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상당수가 부서진 상태였다.
거리를 걸으며 두 연인은 폭력사태만 3번을 목격했었다. 치안 유지대가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개입했지만
더 많은 군중들이 몰리며 혼란만 가중되었고 ‘소르손’과 ‘아렉스’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와야했다.
“총독이랑 함께 있었다면..”
그녀가 슬픈 듯이 말했다.
“이런 건 볼 수도 없었을거야. 이게 ‘히에로니무스 세타’의 진짜 모습이고.”
“높으신 분들이 고가도로를 연결하려고 한다더라.”
‘소르손’이 말했다.
“하층을 완전히 봉쇄할 작정인거지.”
“그래, 우리 삼촌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아니라 덮는걸 원해.”
‘아렉스’가 대답했다.
“문제를 외면하고. 태양을 향해 올라선들 결국 이 도시는 스스로 무너지고 말거야. 이 도시의 기초는 썩어 문드러졌으니까.”
“그래도 여긴 새로운 세상이잖아?”
‘소르손’이 말했다.
“게다가 니가 이야기하는 건 앞으로 수백년은 지나야 일어날 일이잖아.
우리한테는 아직 시간이 있고 황제폐하는 여전히 우리를 살펴주시고 말이야.“
그렇게 걷는 두 사람 앞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군중들을 술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술렁거리는 목소리와 외침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또 누군가 쌈박질을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또 누가 싸우는 걸까? 아니 더 심각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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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워해머 소설 번역 연재함
남주는 하층 출신 광산 채굴 관리자
여주는 행성총독의 조카님.
그리고 이번 소설의 제국방위군 연대는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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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최애 왕조인 메이나크 왕조의 네크론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설인 데드맨 워킹입니다!
해당 소설을 통으로 번역하신 분이 계시기에 그분께 허락을 받아 퍼왔습니다 :)
'워해머 소설 번역 > 데드맨 워킹 Dead Men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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