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손’은 업무 책상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의 하얀 책상 위에 데이터 슬레이트 패드들. 광부들의 업무 교대, 이번 달 채굴 할당량과
신규 고용 그리고 해고자, 기계의 유지보수에 관한 보고서가 어지럽게 흩어진 채였다.
그는 지난 밤 일어난 사건의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개인 통신 단말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단말기의 규칙적인 잡음을 들으며 안정을 취하려했다.
‘소르손’은 어제 그 사건을 겪고 나서 잠을 못자고 있었다. 잠을 자려고 시도할 때마다 끔찍하게 생겼던
그 붉은 눈의 돌연변이가 꿈에서 나오거나 그의 눈앞에서 절규하던 죽은 희생자의 비명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잠도 오지 않고 불안한 그 긴 밤 내내 그는 TV를 켜 뉴스를 시청했지만
그가 하층에서 겪었던 끔찍한 사건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연인 ‘아렉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진실을 감춘다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소르손’은 그녀에게 건내주지 못한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의미 없이 만지작거렸다.
언제 주머니에서 이 반지를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손은 갈 길을 잃었다.
마치 반지가 ‘아렉스’에게 가지 못한 것처럼.
어제 이 반지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반지는 6개의 붉은 아메시트 광석이 장식된 것이었다. 왜 붉은 색이냐면 ‘아렉스’가 좋아하는 색이 붉은색이라는 이유였다.
게다가 이 광석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행성에서만 채굴되는 것이었기에 그녀에게 줄 프로포즈 선물로 제격이라 생각했었다.
그 보석은 그가 사는 이곳 ‘히에로니머스 세타’의 특산품이었다.
다른 행성이었다면 이 반지는 엄청난 가격에 팔렸을 테지만 ‘소르손’의 고향에서는 흔하디 흔한 잡 광물로 취급 받는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광산 회사에서 일하는 덕에 품질 감독관이 하자가 있어 버린 원석을 챙겼기에 실제로 반지 가격은 가공비가 조금 든 정도였다.
통신기가 울리자 ‘소르손’은 일을 시작했다.
그는 반지를 주머니에 다시 넣고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는 ‘소르손’.”
그의 통신에 잡음 섞인 목소리가 응답했다.
“여기는 ‘헤릭슨’입니다. 용건 있습니까?”
“예. 어디보자..”
‘소르손’은 한손을 뻗어 어지러운 책상을 더듬거렸다.
“며칠 전 보고서를 받았는데 뭔가 이상한 걸 그쪽에서 발굴했다구요?"
‘헤릭슨’이 그의 말에 대답을 했지만 채굴기계의 삐걱대는 소음과 통신기의 잡음으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소르손’은 다시 한번 더 인부에게 반복해달라고 요청해야했다.
“.. 지시대로 계속 파내고 있습니다.. 어느정도 형체는 보이는데..”
또 다시 빗발치는 채굴작업의 소음이 말을 흐렸다.
“아예. 이 아래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소르손’씨 어제 제가 보고서에 보낸 것 봤죠?
이거 요상한 문자가 조각되어 있어요. 내 부하들이 이 문자가 불길하다면서..그러니까..”
어제 ‘아렉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르손’은 그가 감독하는 광산의 보고서를 다시 한번 더 정독하기 위해 펼쳤다.
어쩌면 그가 아침에 놓쳤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구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이미 세명의 동료 감독관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조금씩 줄어드는 채굴량과 인원 손실에 대해 의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일을 떠올린 후 ‘소르손’이 ‘헤릭슨’의 보고 데이터 슬레이트를 보았다.
분명 지난주부터 그의 담당 광산 인부들이 가동된 정체불명의 암석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긴했었다.
워낙 돌아가는 일이 바빠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고 기억에서 잊혀졌었지.
고작 희한한 암석 때문에 인부들이 불평한다는게 그를 화가 나게 했다.
아마도 돌연변이들이 조각한 암석이 지진 때문에 지하 깊숙이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행성 개척 이전의 고대 문명의 흔적일 수도 있었다. 근데 그게 뭔 대수인가?
‘소르손’은 급히 ‘헤릭슨’에게 답장을 했다.
그들의 발견한 ‘독특한 암석’이 무엇이든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자기가 담당하는 광산의 할당량이 뒤쳐져 있는게 가장 무서운 일이라고 말이다.
그는 작업 책임자를 질책하며 당장 땅을 팔 것을 지시했다.
“..인부들이 작업을 거부합니다. 이 친구들 말로는 이게 기분을 이상하..”
불과 한 시간 전에 ‘소르손’은 회사의 감독관 전체 회의에 참석했었다.
지난 6개월간 광산에서 일어난 인부의 사망사건을 수집한 이 보고용 홀로그램은 ‘헤릭슨’이 담당하는
광산의 북서쪽 모퉁이 지역의 인부 사망률이 높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회장님의 반응은 침착했지만 그에게는 상관없었다.
‘소르손’은 하급자들의 불평은 충분히 들었다고 판단했다.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으면서 그는 “내가 직접 내려갈테니까.”라고 전달했다.
‘소르손’은 14살에 학업을 그만둔 후 광산에서 일을 해왔다.
이 행성의 청년들의 운명은 군대에 징집되거나 징집을 피해 광산에서 근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 경력에도 불구하고 ‘소르손’이 광산에 직접 들어가는 건 이번을 포함하면 두 번 정도였다.
그의 업무는 행정직이었고 높고 잘 꾸며진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갱도의 입구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있었지만 리프트를 타고 몇 구역을 내려가야 했다.
다만 ‘소르손’은 어제의 일 때문에 어두운 갱도로 내려가는 게 막상 두려웠다.
갱도 입구로 향하는 자동 택시를 잡고 좌석에 앉았을 때 그의 배가 긴장으로 인해 복통을 일으켰다.
근데 왜 굳이 회사 일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냐면 회사 전용 차량은 항상 부족하고 대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아렉스’가 연락해주길 기다렸었다. 그리고 연락이 왔을 때 그녀는 단지 그에게 집에 잘 도착했다는 말만 했었다.
어제 그 뉴스처럼 그녀도 진심을 전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곧 ‘크레우즈’가 그의 옆 좌석에 동승했다.
그녀는 무릎에 올려둔 데이터 슬레이터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일종의 법무사로 그의 개인 비서를 겸했고 그가 업무차로 어디를 가든 함께 했다.
택시는 설정된 목표에 도착했고 ‘소르손’은 두명의 경비원의 안내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회사 ID 카드를 보여주었고 ‘크레우즈’와 함께 소음과 증기가 가득한 아치형 도로를 걸어갔다.
달가닥 거리는 거대한 기계와 파이프들이 둘러 쌓인 현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쉼 없이 뛰어다니는 게 가히 장관이었다.
그곳은 광산에서 채취한 원석을 가공하는 공장지대였다. ‘소르손’은 가공된 자원을 싣기 위해 대기 중인 트럭들을 보았다.
이 트럭들은 가까운 우주공항으로 할거고 제국 곳곳에 보내져 제국군을 위한 병기로 만들어질 것이다.
‘소르손’은 바쁘게 기계 사이를 돌아다니는 직원을 붙잡았다.
“어이! 그쪽 담당자를 찾고 있는데. ‘헤릭슨’ 씨라고.”
까무잡잡한 인부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노란 귀마개를 가리켰다.
그러자 ‘소르손’의 비서 ‘크레우즈’가 인부에게 “헤.릭.슨!” 이라고 외쳤지만 인부는 반응이 없었고
그녀는 업무용 데이터 슬레이트를 펼쳐 코앞에 들이밀었다. 인부는 드디어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하로 내려가는 리프트를 가리켰다.
그 후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리며 공장의 소음을 뚫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다.
“밑으로 가이소!”
‘소르손’이 리프트 근처에 다가갔을 때 엔진과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곧이어 지하에서 일을 마치고 올라오는 리프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두 명의 땀투성이의 인부 두명이 지상으로 발을 디뎠다.
두 인부들이 지나가며 하는 말을 들어보건데 ‘헤릭슨’의 부하들인게 틀림없었다.
‘소르손’은 리프트 옆에 걸려있는 호흡기와 안전모를 챙겼다.
첫 번째 호흡기는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껄 착용했을 때는 시원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분진을 막기 위한 고글을 착용하고 비서와 함께 지하 갱도로 내려갈 리프트에 탑승했다.
리프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전체적으로 출렁거렸고 ‘소르손’은 겁이나 움찔거렸다.
곧 진동은 잦아들고 점점 더 어두운 수직굴로 내려가면서 지하에 서식하는 곤충들의 야광빛이 반짝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갱도의 어둠 속에 무언가가 숨어있지 않을까란 상상에 긴장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종종 리프트가 고장 난 듯 멈췄다가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이러다가 중간에 고장으로 멈출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소르손’은 자신이 왜 이런 힘든 일을 자처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아렉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겁쟁이가 어제의 일을 만회하고 싶었던거냐?
멋진 영웅이 될 기회를 잡고 싶어서 그래?
초조하게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3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이정도면 이미 갱도에 도착해야했다.
그런 그의 바램을 들어주듯 거친 표면의 암석들이 사라지고 그 표면을 덮는 금속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진이 짙게 휘날리기 시작했고 고글을 끼고 있음에도 ‘소르손’은 눈이 간질간질 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분진이 옅어지며 그는 방대한 채굴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녹슨 채굴기계와 광업용 서비터들 그리고 광산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소르손’의 도착을 환영하듯 코기에이터(컴퓨터)가 찰칵찰칵 거리며 작동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갱도에 도착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붉은 눈썹에 고글을 쓴 중년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소르손’씨로군요. 본사에서 오셨죠? 현장 반장 ‘헤릭슨’입니다.”
그 사내는 강한 악력으로 ‘소르손’의 손을 잡고 일방적으로 흔들어댔다.
“광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요?”
‘소르손’이 말했다.
“여기서는 할 일이 태산이오. ‘소르손’씨. 무슨 말이지 아시잖습니까? 월별 할당량 때문이죠.
호흡기는 있으시군요. 혹시나 몰라서 두 개 챙겨왔는데. 그럼 문제없고 그 이상한 암석이나 보러 가시죠.”
“그러죠.”
작업 반장의 말에 ‘소르손’이 동의했다. 그는 대충 문제의 그걸 보고나서 이 답답한 갱도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게 뭐든지 간에 행성방위군측에 해결을 요청하면 될 일이다. 또 따분한 업무 이야기보다 이런 재밌는
일화라면 ‘아렉스’와 다음 데이트에서 이야기 주제로 삼기도 괜찮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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