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2월 말 언젠가, 동생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물었다.
"형, 산나비라는 게임 해본 적 있음?"
산나비.
사이버펑크풍 조선을 그려낸 국산 인디게임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이름만 알고 있다고 답했었고, 동생은 그런 내게 꼭 해보라고 말했다. 자기가 게임하다 간만에 울컥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꽤 흥미가 갔다.
안그래도 사이버펑크 조선이라는 컨셉 때문에 흥미 자체는 있던 게임인데, 마침 정식 출시도 했고 차가운 도시남자인 내 동생이 울컥했다고 말할 정도면 폭풍감동러인 나에겐 정말 좋은 게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운받아 시작한 산나비는 과연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줄거리는 심플하다.
산나비라는 범죄자(혹은 범죄조직)에 의해 아내를 잃은 퇴역군인이 복수를 위해 마지막으로 놈이 목격된 마고특별시에서 여정을 펼치는 게 주된 내용으로,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복수극이다.
허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 이 부분은 반드시 직접 플레이해보길 바란다.
게임 플레이는 단순한 편으로, 기본적으로 공격은 특별한 무장이 따로 필요하다거나 어려운 컨트롤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동은 갈고리를 걸어 움직이는 방식 덕분에 초보자들도 속도감 있는 액션 플레이를 어렵지않게 즐길 수 있게끔 안배되어 있었다. 괜시레 고수가 된 기분이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도 좋았다. 작중 주인공부터 시작해 또다른 주연인 금마리, 조연 백대령, 송소령 등 하나같이 만족스러웠고, 보스들도 사이버펑크스러우면서 조선 느낌이 나 보는 게 정말 즐거웠다.
특히나 좋았던 건 사용된 어휘로, 단순하게 사이버펑크에 조선 스킨만 끼운 거라 내심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금부, 묘비 부대, 조정 등 꽤 본격적인 단어가 나와 생각보다도 더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는 나로하여금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특히 역성혁명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는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즐거움도 느꼈다. 역사교과서에서나 보던 걸 사이버펑크 게임에서 보게 되다니 제대로잖아? 최고다! 싶었다.
연출도 참 맛있었다. 글의 서두에 올려둔 마고특별시 와이드씬이나 작중 인물 간의 대화 컷씬, 인게임 배경, 보스 연출 등도 몰입감을 한층 올려줬는데, 그중 제일 좋았던 건 바로 감독관이었다.
게임을 진행하며 감독관은 꽤 길게 플레이어를 괴롭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든 친구는 아니었으나 처음 등장했을 때의 이펙트가 너무 강렬해서 괜히 더 긴장되었던 것 같다.
도트가 훌륭하니 배경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몇몇 배경은 무언가 유도하는 듯한 장치가 되어있는데 위 사진에서 나는 토탈리콜이 생각났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한 분들이라면 저 문구를 보고 다들 공감하실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슬슬 할 말도 떨어져가고, 이미 충분히 스포한 듯 하지만 혹시라도 못해봤을 누군가를 위해 너무 많은 말을 담으면 완벽하게 스포가 될 수 있을듯해 엔딩 분기점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할까한다.
이 게임에는 딱 하나의 분기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위 사진의 엔딩 분기점이다. 여기에서 이제 플레이어는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랬고, 두 분기점 모두 확인하면서 이에 대한 대답을 알게 되었다. 과연, 실망은커녕 기대 이상인 작품이었다.
산나비, 아직 안해보셨다면 꼭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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