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및 영화와 차별화되는 게임만의 매력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직접 경험한다는 점인 거 같다. 그리고 데스 스트랜딩은 그런 점에 있어서 가장 좋은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샘 브리지스는 세상과 단절된 남자다. 쉽게 말해 친한 사람이 없다는 소리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그는 유명한 배달부지만 마음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유일하게 연이 닿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와 누나뿐. 그런데 이 무슨 장난인지, 단절된 그와는 달리 어머니와 누나는 망해버린 세상을 다시금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으려하고 그 역할을 샘에게 부탁한다.
그렇게 샘은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인연맺기를 위해 미국 방방곳곳으로 배달을 떠나게 된다.
샘은 정말 많은 곳으로 떠난다.
비가 내리건 눈이 내리건, 심지어 포장도로도 아닌데! 제 아무리 길이 험하고 불친절할 지라도 그는 걸어간다. 그 끝에 그의 배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과정 속에서 철저한 고립주의자였던 샘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사람들에 대해 조금은 열린 시각을 지니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험한 길만으로도 힘든데 뮬이라는 강도들이 종종 그를 덮쳐오고 우리의 샘은 살금살금 걷거나 때로는 거친 반격을 해가면서 위험을 헤쳐나간다.
게다가 진정한 위험을 따로 있었으니.
BT, 세상을 망하게 만든 사건인 데스 스트랜딩 이후 등장한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그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샘에게는 BT를 감별할 수 있는 BB라는 작은 친구가 있었고, 덕분에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위험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BB는 단순한 조력자 그 이상이었는데, 갑작스레 빨려들어간 다른 차원의 공간 속에서 BB를 집요하게 노리는 적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BB는 데스 스트랜딩의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한 키가 된다.
매즈 미켈슨이 분한 클리프 엉거라는 사내가 BB를 애타게 찾는다.
그냥 찾는 게 아니다. 폭약이 작렬하는 전장에서 자신의 군인들을 풀어다가 샘을 집요하게 추적해온다.
진정한 배달부라면 물건을 뺏기지않기 위해 총질 정도는 할 줄 알아야하는 법.
샘은 BB를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그 과정 속에서 미국은 점차 하나로 다시금 묶이기 시작한다.
게임이 무르익어가니 적절하게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의 내밀한 이야기가 드러났다.
이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미국을 재건하고자하는 지, 무슨 목적으로 샘을 지원하는 지, 아니면 샘을 막아서려는 지 등등.
솔직히 말해 빌런 힉스의 경우 크게 공감되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다른 이들도 조금 아쉬웠으나 별 기대를 안했던 데드맨과 하트맨의 서사가 좋았다.
이케저케해서 여정의 마지막인 미국의 끝 에지 노트 시티에까지 도착한 우리의 샘.
그 끝에 왠 이상한 거인이 있었지만 로켓으로 참교육해주고 전 미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아우른다는 목표를 달성해낸다.
이제 다시 돌아가 세상과 단절하고 함께 역경을 헤쳐오며 과거 아들의 이름이었던 루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BB와 행복 히키코모리 삶을 즐기는 일만 남았으나 어림도 없지.
사실 이 일을 맡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됐던 그의 누나 아멜리가 사실은 진정한 흑막일 수 있다는 소리를 듣게되고, 그녀에게 도달하기 위해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야한다고 한다. 말은 쉽지...
그렇게 샘은 산맥을 힘들게 넘어오며 귀찮더라도 꾸준히 설치해둔 집라인의 수혜를 톡톡히 보며 거의 40시간 걸리며 나아갔던 길을 단 몇 시간만에 주파해 돌아온다.
도착하기 직전, 태풍이 그를 휩쓴다.
정신 차리니 샘은 또 한 번 의문의 전장에 떨어져 클리프와 피튀기는 총격전을 펼친다.
아마 눈치 빠른 사람들이라면 진작에 눈치를 챘을 거 같고, 아니면 나처럼 클리프의 군복이 샘을 안으며 정장으로 바뀌는 씬에서 눈치를 챘을 것 같다.
클리프가 찾던 BB는 루가 아니라 샘인 게 틀림없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이때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참 훈훈하고 좋았으나 세상은 지금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여운을 만끽할 새도 없이 당장 돌아가 아멜리를 만나야했다. 고래를 물리치니 길이 열렸다.
데스 스트랜딩으로 비롯된 멸종은 사실 아멜리가 일으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샘의 진심을 알고 멸종을 연기해주며 샘의 행복을 빌어준다.
꽤 중요한 서사겠지만 진짜 내겐 크게 와닿지 않았다. 게다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는 크레딧씬까지...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마지막에 시간이 부족해서 대충 때웠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짜 서사, 클라이맥스는 이 다음에 있었으니.
다시 한 번 엿보게 된 과거에서, 예상했던대로 샘이 바로 클리프가 찾던 BB였다.
작은 포드 안에 담겨있던, 클리프가 어디로든 데려가주겠다던 아기는 어느새 훌쩍 커서 온세상을 걸어다니고 있었고 그 이름처럼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어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참겠는가. 나는 정말로 펑펑 울었다. 그저그런 억지 신파가 아니라 정말 가슴 한 켠에서 물밀듯 차오르는 깔끔한 감동에 찝찝함 없는, 아주 시원한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정말 정말 좋은 게임이었다.
아버지와 재회했던 샘은, 현실로 돌아와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루를 포드에서 꺼내 세상에 소개시키며 아버지가 된다.
햇살이 화창하다. 그렇게 데스 스트랜딩은 막을 내린다.
엔딩을 보고,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전하고자하는 게 삶이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샘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길 위에 서서, 고독하다. 처음에는 누구와도 연결되어있지 못하나 길을 걸어가며 다양한 군상들을 마주하고 그들과 동화되어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삶은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비록 잘 닦인 도로는 아니지만 길은 분명 존재하며, 험하고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그 끝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 내가 필요로 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갈 것이고, 그렇게 우리네의 이야기를 써가는 것이다. 조금 서툴면 어떠한가, 이리저리 치여가며 때로는 날강도 같은 놈들도 마주하겠지만 그토록 이해하고싶었던 아버지의, 부모의 심정마저도 어느 순간 이해하는 때가 올텐데.
사람마다 이 게임을 즐기고 느끼는 바가 다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길 위로 걸어 나아가야 한다.
정말 좋은 게임이고 주변에 자신 있게 추천하고픈 작품이었다. 강렬한 경험을 선사해준 코지마 히데오 감독에게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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