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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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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그들의 방어는 느슨해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치명타를 허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피로로 탈진한 근육이 그들을 배반하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소라엘의 길게 뻗은 검날이 라그나르를 걸어 넘어뜨렸고, 울프로드가 땅에 닿기도 전에 내려쳤다. 살인적인 그 공세를 완갑으로 튕겨내면서 라그나르는 옆으로 굴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파워소드가 소라엘의 손아귀에서 날아갔다.
라그나르는 소라엘이 검을 다시 집을 수 있도록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얼어붙은 땅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불운을 쫓기 위해 침을 탁 뱉었다. 그가 원래의 자세를 회복했을 때, 라그나르는 그와 가장 가까운 늑대의 두 눈과 마주쳤다.
늑대들은 더 이상 주군을 부르짖거나 적수를 모욕하지 않았다. 늑대, 검은 천사, 그 외 제국의 장병 등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참석자들은 그저 침묵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 전투의 종지부를 찍을 단 한 번의 실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소.’ 소라엘이 되찾은 검을 쥐고 다가오며 말했다.
라그나르 또한 그 잠깐의 휴식에 감사했다. 그는 금세 지쳐버렸고, 결투에서 지친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지는 첫 단계였고, 의심은 상대방의 검술만큼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는 이빨을 드러내고 검은 천사와 마주 보면서 억지로 건방진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나 소라엘은 헬멧으로 가려진, 절제된 음성 외엔 그 어떤 약점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약함을 보이지 안돼, 라그나르는 생각했다. 내색하지 마라.
세 개의 폐가 통증을 호소하며 가쁘게 숨을 끌어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라엘에게서는 여전히 냉정한 시선만이 보였다. 이에 라그나르는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지 않는 이상 그에게 승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깊은 숨을 질질 끌며, 울프 로드는 재빠르고도 저지불가한 공세를 퍼부었다.
항상 전진해오는, 공격일변도의 참격 아래에 소라엘의 파워소드가 놓였고, 그러한 프로스트팽의 공세와 부딪칠 때마다 기사의 검에 둘러싸인 동력장의 불꽃이 번개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검은 천사는 그의 앞에서 위협적으로 회전하는 은빛 검벽劍壁에 맞서 그 또한 양손으로 검을 쥔 채 휘몰아치는 칼날 세례로 반격했다.
라그나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또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가 밀어붙였던 것보다 더 빠르게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곧 라그나르의 부츠는 빙판을 밟게 되었고, 위험하리만치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그는 두 번이나 나자빠질 뻔했다.
우세를 점한 소라엘의 검이 번뜩이는 빛을 내며 라그나르의 얼굴을 스쳤고, 그 살인적인 검격을 피하기 위해 그는 몸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기사의 검이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가는 찰나, 라그나르는 검이 지나가며 태워버린 공기를 맛볼 수 있었다. 마치 오존이 혓바닥에 닿은 것만 같았지만 음미할 새도 없이 후속타가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떨어지는 검날을 막기 위해 라그나르가 프로스트팽을 들어올렸을 때, 그는 그의 절망감이 함성처럼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두 개의 검이 늑대의 얼굴에서 한 뼘도 채 못되는 거리에 놓였다. 파워소드의 동력장이 조금씩 살갗을 태워왔다.
라그나르는 거센 포효와 함께 검은 천사를 뒤로 내던졌고, 가쁜 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라그나르가 뒤로 물러선 바로 그 순간.
소라엘은 승리를 직감했다.
앞선 공격들에서 이점을 얻었던 천사는 그의 검세를 완벽하게 가다듬고는 백 년에 걸쳐 올린 베테랑으로서의 유려함과 경험을 단 한 번의 일격에 담아 승부의 끝을 향해 그 종지부를 찍었다.
라그나르의 자세에 맞춰 목 높이에서 찔러진 소라엘의 검은 오로지 한 세기 동안의 전투 경험을 지닌 자만이 가능한, 한 치의 오차조차 용납지 않는 완벽한 치명타라 할 수 있었다.
늑대와 검은 천사들은 결투의 끝을 볼 수 있었고, 그보다 느린 감각을 지닌 이들은 그 공격이 끝날 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른 검은 휘감긴 동력장으로 인해 왜곡되게 반사된 빛을 남겼고, 직후 갑작스럽게 눈밭으로 떨어져 나갔다.
다크 엔젤은 완벽한 일격을 뻗었던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팔은 팔꿈치에서 그 끝을 보였고, 검을 쥔 건틀렛은 그게 속했던 잘린 팔뚝과 함께 떨어져 있었다.
천사 앞에 무릎 꿇고 있던 라그나르는 프로스트팽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소라엘과 마찬가지로, 본능은 그가 그의 반격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라엘의 몸통을 뚫고 들어가 천사의 내장을 찌르고 그것을 상대에게 털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하지 않았다.
대신 펜리스의 유물인 검으로, 그 치명적인 이빨이 소라엘의 목 부분을 얕게 썰어 피를 맛볼 수 있을 정도로만 물어뜯었다.
라그나르는 소라엘의 목에 검을 대고 일어섰다. 그는 검은 천사의 붉은 렌즈를 들여다보면서 헬멧 뒤에 있을 전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끝났어, 소라엘.’
‘끝나려면 멀었다는 걸 알잖소. 이건 듈럼 돌로르요, 야를 블랙메인. 항복하거나 죽음을 맞이하거나, 그게 바로 우리가 묶인 규칙일지니. 여기서 벗어날 방법이라곤 항복해서 다른 이의 검에 목숨을 바치거나, 아니면 결투 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뿐.’
‘그렇다면 항복해.’
‘싫소.’
‘항복해, 그러면 살려주겠어.’
‘절대.’
라그나르는 검날을 적수의 목에 더 가까이 댔다. 칼바람으로 인해 자연스레 입김이 흘러나왔다.
‘내가 널 죽이게 만들지 마. 사십 년 전 내가 저지른 죄를 또다시 짓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네가 졌어, 소라엘. 다 끝났다고.’
소라엘은 아직 남아있는 손으로 헬멧을 벗었다. 라그나르가 그랬듯 그도 땀을 많이 흘렸었고, 찬 공기 속에서 맨얼굴과 엄숙함을 드러낸 채 서 있었다.
‘그럼 죽이시오, 늑대의 군주여. 나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터이니.’
라그나르는 그가 듣고 있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소라엘은 이제 어둡고 창백한 늑대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극도로 사나운 분노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반쪽짜리 팔뚝을 로브에 파묻고 있었는데 절단면의 상처는 그의 향상된 신체능력 덕에 진작에 아물어 있었다.
과거 라그나르가 느꼈던 오래된 분노가 지금 또다시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피부 위로 꿈틀거리며 타고 올랐고 기생충처럼 그의 두개골에 자리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크 엔젤들의 눈길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들이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수백 명의 카디안 장병들이 지켜보는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제국 최고의 전사들이 이 중요한 행성을 구하기는커녕 서로를 죽이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피 토하는 심정으로 그는 그 자신을 자제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아드레날린만이 그를 서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분명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다.
레이저텅이라면 알고 있었으리라, 불현 듯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게 맞건 틀리건 간에 그 독설 가득하고 죽은 지 한참이 지난 바드였다면 애당초 라그나르가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에 대해 무자비하게 조롱했을 것이었다.
라그나르는 비뚤어지고, 영악했던 바드의 미소를 따라지었다.
‘아니.’ 그가 말했다. 그리고선 귀중한 프로스트팽을 옆으로 내던지곤 소라엘의 검 옆에 쌓인 눈 속에 같이 파묻히게 했다.
다크 엔젤의 눈이 떨어진 무기를 흘끗 쳐다보았다.
‘아니?’
‘아니야.’ 라그나르가 반복했다.
‘우리는 위태로운 제국의 끝자락에 서서 형제들끼리 으르렁대고 있지.
러스의 피에 대고, 만일 플래시 테어러가 나의 목숨을 구해줬다면, 챕터 간의 유혈 사태가 있었다고 한들 나는 그의 편에서 그 어떤 증오 없이 함께 싸울 테야. 너도 그렇게 해 줄 순 없는 거냐?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하늘을 봐, 소라엘. 이 행성을 보라고. 지금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남는 건 오직 패배뿐이야!’
소라엘은 침을 삼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십 년 동안 나는 이 끝맺지 못한 결투에 대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지니고 있었다.’ 라그나르가 말했다.
‘이제야 끝났지, 마침내 말이야. 내가 이겼다, 소라엘. 그러니 내가 그 끝을 정하겠어.
이 결투는 너와 나의 피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 우리의 검이 눈밭으로 던진 것으로 끝을 맺겠어. 항복해, 이 긍지 높은 자식아. 상처를 치료하고, 내 곁에서 싸워달란 말이다!
아직 나의 전사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 갇혀 있어, 사촌. 그들을 찾을 수 있도록 날 도와줘.’
검은 아머를 입은 형제들의 대열을 훑어보고 소라엘은 정확히 아홉 번의 심장박동이 뛸 동안 울부짖는 늑대들을 쳐다보았다.
생각하고, 고민하여, 결정한다.
‘항복하겠소,’ 마침내 그가 말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우린 그대의 곁에 서서 함께 케이저 벨록을 탈환할 것이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크 엔젤의 대열은 그들의 검을 땅에서 뽑아내어 쌓인 눈을 털고선 검집에 꽂아 넣었는데, 이 모든 일련의 행동들이 마치 한 사람이 한 것처럼 칼같이 이루어졌다.
그들의 엄숙한 존재는 사라지고, 로브 쓴 전사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질서한 무리 사이로 끼어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나의 형제들은,’ 소라엘이 말했다. ‘그리 축하할만한 기분은 아니겠군.’
‘내 형제들은 그런 기분인 거 같군.’ 라그나르는 그의 대중대의 생존자들이 밤하늘을 향해 길고도 큰 포효를 내지르기 전에 말했다.
울음소리가 그치자 소라엘이 목을 가다듬었다. ‘다음 전투 전까지 아포세카리에게서 나의 팔에 끼울 수 있는 대체용 생체품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소. 떠나기 전엔 연락할 테니 기다려주시오.’
‘그 전에,’ 라그나르가 손을 내밀었다. 왼손이었다.
소라엘은 그날 오전 보레인이 울프 로드에게 했던 것과 같이 그의 손부터 손목까지 붙잡고선 흔들었다.
‘도시에서의 지원 덕분에 한숨 돌렸었지. 이건 그 감사야, 다크 엔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소라엘이 짧게 웃으며 답했다. 그것은 라그나르가 다크 엔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 말을 하고선 캡틴은 떠났다.
라그나르는 떠나가는 소라엘의 등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침착함은 나를 끊임없이 놀라게 해.’ 그가 보레인에게 말했다.
‘확실히 너와 나보다는 더 냉정하고 침착한 핏줄을 타고났지.’ 플래시 테어러가 인정했다.
‘사십 년 만이야.’ 라그나르가 중얼거렸다. ‘사십 년간 나를 죄었던 죄책감이 순식간에 쓸려나가더군.’
좀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다크 엔젤의 경직된 광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저었지만, 그럼에도 중대를 구하기 위해 그들의 해줄 역할을 떠올리니 염치없게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운이 좋았어, 블랙메인.’
부족의 이름을 쓰는 것에 용서를 구하며, 라그나르가 보레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아무리 도끼를 쓰는 나라지만 칼잡이들의 결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고, 늑대여.
네게 내리쳐진, 당연하게도 네 어깨부터 머리까지 잘라낼 수 있었던 그 일격을 피할 수 있던 건 정말 행운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더군. 넌 네가 졌어야만 했던 결투에서 이긴 거야. 단 몇 초만 있었으면 널 죽였을 적수를 이긴 거지.’
‘내가 그를 잡은 거야.’ 라그나르가 완벽하게, 거짓 없는 것처럼 말했다.
보레인은 쉰 목소리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네 비밀은 내 무덤까지 갈 꺼니까 걱정 마, 블랙메인.’
그가 산성으로, 건쉽으로, 차량에 올라타는 전차병들에게로, 여기저기서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센티넬들에게로, 십여 명의 플래시 테어러에게로, 섞이길 주저하고 있는 늑대와 천사들의 무리에게로 손짓했다.
‘그래, 나를 비롯해... 네가 그 치명적인 공격을 피한 게 순전히 빙판 위에서 미끄러졌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본 이들은 걱정 안해도 될 거야.’
‘아, 거짓말이야, 플래시 테어러. 넌 마치 화톳불 옆의 호사가들처럼 거짓말하고 있잖아.’
‘네가 싸우던 그 격렬함을 뚫고 과연 누가 자신들이 본 것을 확신할 수 있겠어, 나는 내가 본 게 어찌 보였을지 다 알고 있지. 그러니 이제 이 얘긴 그만하자고, 사촌.’
라그나르는 반박하지 않았고, 동의하지도 않았다. 젊은 왕은 그저 눈 속에서 프로스트팽을 집어 들며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네 운이 다하고 있어, 블랙메인
그래, 노래하는 이여.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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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라그나르의 엔딩을 번역했네요.
소설 초반부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던 라그나르가 결국 후반부에서 소라엘과의 끝을 잘 마무리짓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라그나르의 성장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네요. 깨알같은 쇼크트루퍼들도 귀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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