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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해머 소설 번역/라그나르 블랙메인 Ragnar Blackmane

크레타시아의 용, 냘피르의 죽음(1)

by 맥주수염 2020. 12. 26.

 

https://beerbeard.tistory.com/11

 

탈출하는 길, 냘피르와 라그나르

https://beerbeard.tistory.com/5?category=1170223 플래시테어러, 챕터를 위한 봉사 https://beerbeard.tistory.com/4?category=1170223 블랙레이지를 마주친 라그나르 https://beerbeard.tistory.com/3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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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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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톰레이븐 건쉽이 나무들 위로 낮게 날아왔다.

 

 함선은 무겁게 쏟아지는 산성 폭우 탓에 장갑판에 칠해진 페인트가 녹아 줄무늬가 그어져 있었는데, 상위 기체인 썬더호크 급의 추진력과 동력원에 못 미치는 어뎁투스 아스타르테스의 비행체로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민첩함으로 하늘을 선회했다.

 

 철권을 연상시키는 생김새의 스톰레이븐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터빈의 굉음도 커졌다. 함선의 상부에는 유인 포탑이 느린 호를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는데 포신은 목표물을 찾아 하늘을 가로지르며 움직이고 있었다.

 

 포대에 갇혀 있던 서비터는 그의 임무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라그나르는 저 서비터의 존재의의가 지금 맡고 있는 단 하나의 임무만을 위한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 어떤 생각이나 불평 없이 오로지 저 좁은 포탑 안에서 살다가 죽을 운명일 것이었다.

 노예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영양실조에 걸린 회색 인간이라는 것으로 그가 한때 가졌을 성별, 정체성, 성격의 정의를 대체하면 충분해 보였다.

 

 함선이 비스듬히 내려오며 조종석 아래가 드러나 움푹 들어간 공간이 보였다. 총걸이에 걸린 볼터들과 탄약 상자들이 스트립라이트가 비치는 승무원실에 놓여있었다.

 

 보레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끔찍한 빗속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던 돌부리를 깨는 것이었다. 함선의 착륙장치가 바위 고원에 긁히며 부딪히자 보레인은 폭풍우로 걸어 나갔고, 늑대들은 그가 조종사와 상의할 때 복스 채널에서 곤충이 타닥거리는 듯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조종석의 창문으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냈다.

 

 그들이 할 수 있던 경고라곤 오직 달 위를 어떤 그림자가 스쳐 갔다는 것뿐이었다. 저곳에 있다가, 사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얼룩처럼.

 

 함선 상부 포탑에 달린 돌격 대포가 윙윙거렸으나, 발포할 기회도 없이 그 생을 마감했다. 그림자는 금속성 천둥소리와 함께 위에서 내리쳤고, 라그나르는 뭔가 거대하고, 뭔가 날개가 뻗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그것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파충류 특유의 노린내와 고통스러운 금속성 메아리를 남겼다.

 

 포탑은 포대의 연결부까지 뜯겨있었다.

 

 보레인은 복스를 가로질러 조종사에게 소리치며, 그들의 불안한 은신처로 되돌아왔다.

 

 스톰레이븐의 동체가 이륙을 위해 떨려오고, 터빈이 고도를 높이기 위해 덜덜거리며 엔진 연기를 뿜어냈다. 이윽고 탄내 나는 아지렁이와 함께 늑대들을 가로질렀다.

 그들이 무기를 꺼내고 있을 때, 뜯어나갔던 포탑이 천둥소리를 내며 그들 아래의 비탈로 곤두박질쳤다.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과 대파된 금속들 사이로 용케 서비터는 그 안에 남아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죽어가는 와중에도 헛되이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다. 라그나르는 노예가 조종석 유리의 날카로운 파편에 의도치 않게 목이 잘릴 때까지 헛수고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스톰레이븐은 탈출을 시도한 게 아니었다. 플래시 테어러 조종사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비행했고, 함선 선두의 헤비볼터는 밤하늘을 망치질하기 위해 열려있었다.

 

 다시금 포식자가 공격해올 때 조명이 켜졌고, 찰나의 순간 만에 그것을 단순한 그림자에서 짐승으로 탈바꿈시켰다. 폭풍우 속의 거대한 가죽 날개가 펜리스의 함선에 달린 돛처럼 길게 갈라졌다.

 칼날 같은 발톱이 번쩍거리며 스톰레이븐의 선체를 움켜쥐기 위해 빗속을 뚫고 들어오자 함선이 다급하게 회피기동을 하며 원 통제하에 돌아오기 위해 분투했다.

 그 생명체는 바위 너머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힘으로 비탈에 착지했다. 검은 눈이 영활하게 빛났고, 부리부리하고 뼈가 드러난 머리를 전사들에게 돌리니 달빛이 반사됐다.

 

 ‘타이라돈.’ 보레인이 저주를 담아 놈의 이름을 말했다.

 

 

 용이군, 라그나르에게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신을 숭배하는 용.

 

 세 개의 볼터가 하나처럼 불을 뿜었고, 놈의 빽빽이 비늘 찬 가죽을 향해 폭발성 탄환들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 어떤 탄환도 짐승의 살점에 타격을 주지 못했다.

 불타는 포탑을 앞에 두고, 녀석의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마의 가죽이 눈 위에 덮였고, 장갑처럼 씌워진 채로 달려들었다.

 

 맹렬하게 진격해오는 짐승에게서 피하기 위해 라그나르가 택한 건 돌무더기로 몸을 내던지는 것이었다. 육중한 무게로 몸을 날린 탓에 헐거운 돌더미들이 무너져 내렸고, 그 옆에 있던 보레인은 라그나르와는 다르게 폭우 속으로 뛰쳐나가 짐승을 피했다. 재빠른 볼터 장전은 덤이었다.

 

 오직 냘피르만이 그의 자리를 고수했다. 그는 발톱 달린 손을 들어 짐승의 날개 끝을 겨누었지만 녀석의 달려드는 속도가 너무 빨라 늑대의 공격은 제대로 된 초점을 놓쳐 날개에 약간의 상처를 내는 것에 그쳤다.

 

 허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지막 순간, 타이라돈의 움직임이 살짝 비틀거린 사이, 냘피르는 그의 멀쩡한 다리로 바닥을 박차면서 플래시 테어러를 따라 몸을 던질 수 있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파충류 짐승이 방금까지만 해도 냘피르가 서 있던 곳에 턱을 부딪쳤다.

 

 몸을 날린 냘피르는 무너져내리는 돌더미들을 타고 비탈길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 사이 스톰레이븐이 그들 위로 다시 내려와 선두를 내보이고 있었고, 뒤이어 헤비볼터들은 스페이스 마린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막대한 양의 포탄들이 불을 내뿜음과 동시에 타이라돈의 비늘을 두들기며 뜨겁게 달궈진 증기를 토해냈다.

 

 곧바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그 짐승은 찢겨진 날개로 하늘을 날아오르고, 발톱과 발톱이 함선의 선체에 매달리기 위해 움켜쥐었다. 스톰레이븐의 엔진이 새로운 무게로 인해 고전했고, 과열된 터빈이 길게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함선과 함선을 움켜쥔 괴물이 모두 땅으로 추락했다.

 

 돌무더기에 부딪치고, 튕기고, 화마에 휩싸인 채 그들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20미터, 30미터, 50미터... 비탈길 중간쯤에 가서야 연기를 내며 비로소 멈춰 섰다.

 

 일순간 정적이 지배했다.

라그나르는 그의 볼터를 경사면을 향해 겨누고,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용을 향해 겨누었다. 녀석은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놈이 숨을 내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레이저텅!’ 그가 소리쳤다. 바드는 그 비탈을 훨씬 더 내려갔던 덕분에, 스톰레이븐의 잔해와 그 위에 있는 부상당한 괴물에게서 코 닿을 거리에 있었다. ‘어서 올라와!’

 

 문득 냘피르는 그 자신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나약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러스와 만물의 아버지의 영원불멸한 번영 아래 수십 년을 살아왔었고....지금은 정글 속 해충의 침과 물린 상처들에 짓눌려 있었다. 라그나르는 그에게 오르라고 말했다. 올라오라고? 그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숨을 내쉬는 것,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상하게 애처로운 흐느낌을 내며, 부상당한 타이라돈이 고개를 들고 눈을 보호하던 가죽을 들어 바드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야 그는 둥글고 납작한 눈동자가 무색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눈알의 우윳빛 검정색보다 더 어두운, 가늘게 쪼개진 파충류 특유의 동공으로 갈라져 있었다.

 냘피르는 놈의 목에 달린 가시뼈가 서서히 떨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제각각 정맥이 뻗은 막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헬멧을 써!’ 보레인이 더 높은 비탈길에서 소리쳤다. ‘놈의 독은 눈을 멀게 해!’

 

 냘피르는 그의 헬멧이 그가 주로 두고 다니던 홀름강 호에 있긴 한 건지 궁금해졌다. 대다수의 늑대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자신의 감각을 억제하는 것을 경멸했었고, 자주 전투 헬멧을 쓰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회상이 지나갔다. 타이라돈이 머리를 뒤로 젖히자 녀석의 목주름살이 떨림과 동시에 툭 튀어나온 돌기들 사이로 점액과 같은 독이 줄줄 뿜어져 나왔다. 떨어진 도끼를 줍기 위해 손을 뻗은 냘피르가 절뚝거리며 눈을 감았지만, 놈의 독이 그의 아머에 튀고 말았다.

 

 

 ‘숨 쉬지 마!’ 그는 플래시 테어러가 다급히 외치는 걸 들었다. 마치 그에게 또 다른 경고가 필요한 것처럼.

 

 냘피르는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도끼의 손잡이를 감싸들며 굳세게 움켜쥐었고, 손잡이의 동력 룬을 툭툭 건드렸다.

 파워 엑스가 탁탁 소리를 내며 활성화되자 넓은 칼날 주변에 피어난 동력장에 빗줄기들이 닿으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의 눈이 멀었다.

 

 그의 다리 하나는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감각이 없었다.

 

 그의 손 하나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머는 진작에 맹독으로 점철되어 한 번이라도 숨을 들이쉬었다간 그의 폐를 중독시킬 터였다. 그의 살갗은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인 세계가 준 발진과 상처들 때문에 가려움과 고통을 느꼈다.

 

 그의 유일한 동료들 중 하나는 그를 부당하게 크레타시아의 광야로 추방한 플래시테어였고, 남은 하나는 그가 속했던 대중대에 따라 다혈질의 멍청이로도, 야를의 정당한 후계자로도 보인 그의 형제 블랙메인이었다.

 

 

 솔직히, 냘피르는 라그나르가 그 둘 모두에 해당된다고 믿었다.

 

 이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도, 냘피르는 그의 혈관 속 피를 마치 점액처럼 바꾸는 뱀독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는데, 마크Ⅱ 파워 아머의 섬유다발성 강철 근육을 물어뜯을 수 있는 송곳니를 가진 뱀이 선사해준 것이었다.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 한 번 시작된 웃음을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웃음은 그의 폐에 유황처럼 지독한 향의 독기를 불어넣었고, 그 즉시 그의 목과 가슴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즐거움이 킬킬거리는 정도로 잦아들 때까지도 그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독이 그의 눈알을 태우는 것 대신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결과는 같았지만, 적어도 고통의 산만함은 없었다.

 

 냘피르 레이저텅은 그의 발을 끌어당기며 그의 마지막을 준비했고, 그의 도끼가 허공을 가르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도끼로 허공을 베니 경련으로 마비되었던 근육이 풀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향해 기어오는 용 형상의 괴물을 향해 눈먼 몸뚱아리를 돌렸다.

 

 다리를 질질 끌며, 그는 그의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펜리스의 전사라면, 두 발로 우뚝 서서 그것을 마주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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