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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
크레타시아의 정글로 추방당했던 라그나르와 냘피르를 만난 보레인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스톰레이븐을 호출한다.
허나 정글은 너무나도 울창했기에 스톰레이븐이 착륙점과 시야를 확보할 수가 없었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고지대로 올라가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다. 크레타시아의 독사에게 물린 냘피르의 상세가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희미해져가는 정신 속에서 냘피르는 힘겹게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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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선 건 보레인이었다.
그는 크레타시아가 펜리스인들에게 가한 고난을 알고 있었고, 바위가 많은 언덕을 올라갈 때 천천히 그들을 이끌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헐거운 흙과 자갈들의 잔해들로 뒤덮인 돌무더기 아래로 쓸려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은 자연스럽게 두 손을 쓰게 됐다.
때때로 플래시 테어러가 그들의 행로를 표시하기 위해 뒤돌아설 때면, 그는 그를 따르는 이들이 야만적이고 짐승 같은 모습으로 기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크레타시아의 달은 높이 떠 있었으나, 습한 밤은 그간의 나날들만큼이나 무자비했다. 적도의 열기 속에서 숨을 헐떡일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마치 개 같군, 플래시 테어러의 생각이었다.
냘피르는 금세 뒤쳐졌다. 라그나르는 계속해서 말과 욕설을 섞어가며 그의 곁을 지켰는데, 냘피르는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마다 이빨 사이에 피가 섞인 침을 질질 흘리며 투덜거렸을 뿐.
점차 그의 두 심장이 박동을 잃어갔다. 뱀에게 물린 뒷다리의 상처는 이틀째 정강이와 허벅지를 거쳐 독을 퍼뜨리고 있었지만, 면역체계의 활발한 저항 덕에 그 이상 퍼지는 것을 억누를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얼얼함은 별개였고.
이제 그것은 단지 걷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의 왼쪽 다리는 뻣뻣하게 마비되어 있었고, 지난 두 새벽 동안 숨기고자 했던 절뚝거림은 완전히 자리를 잡아버렸었다.
‘닥쳐봐.’ 그들이 보레인에게서 꽤나 멀어졌을 때, 냘피르가 말했다. ‘좀 닥치고, 내 말 좀 들어봐, 블랙메인.’
라그나르의 일방적인 대화가 잦아들었다. ‘왜 그래?’
바드는 위태로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또 다른 헐거운 자갈더미에 다다랐을 때, 그는 그나마 움직이는 다리를 바위 위로 끌어 올리며, 남은 손으로는 잡을 수 있을 만한 곳들을 잡아가며 간신히 네 발로 기어올랐다. 바위를 오를 때마다 세라마이트 장갑이 긁히는 건 덤이었다.
‘내 생각엔, 내가 죽어가는 거 같아.’
라그나르의 웃음소리가 총성처럼 울려 퍼졌다. ‘제발, 궁상 좀 떨지 마.’
‘새끼야,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냘피르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변했다. ‘이틀 전, 위에서 내려온 그 저주받은 뱀이 우릴 덮쳤다. 단검을 이빨로 가진 놈이었지.’
라그나르는 그것을 떠올렸다. 거대한 뱀이 나무의 높은 가지에서 그들을 향해 튕겨져 나왔고, 냘피르의 몸통과 팔, 그리고 다리를 칭칭 감아서 그를 조여 죽이려고 했다. 겹겹이 둘러싸인 아머를 뚫을 수가 없었던 녀석은 냘피르의 무릎 뒤에 있는 부드러운 관절부를 찾아냈고, 그곳으로 네 개의 둘쭉날쭉한 단검 같은 송곳니를 박아넣었었다.
식은땀이 흐르자 냘피르는 충혈된 그의 눈을 깜빡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 몸이 그 독을 배출해내지 못하고 있어. 진짜 날 죽이고 있다고.’
바드의 말투에 담긴 진지함에 라그나르의 웃음이 희미해졌다. ‘말이 되는 소릴 해, 레이저텅, 그건 그냥 뱀이었어.’
‘아 그래? 서리이무기도 그냥 뱀이겠네,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놈들의 독으로 에인헤야르가 죽어가는 걸 봤잖아.’
그들이 더 단단한 바위에 다다르자 냘피르는 몸을 밀어 일어섰다. ‘나는 이야기꾼이야, 이야기들을 모으지. 나는 저 밤하늘의 별들보다도 많은 언어들을 내뱉을 수 있어, 형제여.’
라그나르는 고개를 끄덕여 오십 미터쯤 앞서있는 보레인을 바라봤다. ‘크레타시아어도 가능하겠지?’
피가 나는 잇몸을 보여주며, 냘피르가 웃었다.
‘더듬더듬 말하는 것도 언어로 칠 수 있다면야, 그래, 가능해. 몇 년 전쯤에 공부했지. 야를 썬더피스트가 언젠가 내게 말하길, 우리가 플래시 테어러를 방문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 내가 그들의 언어를 통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알게 된 거야.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이건 보레인이 복스 건너편에서 한 말이라고.’
‘그가 틀렸을 거야.’
‘틀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거 같진 않아. 내 몸속엔 지금 불길이 흐르는 거 같고, 이젠 내 눈앞의 팔 길이 정도조차 보이지가 않거든.’
라그나르가 답하기도 전에 냘피르가 검은 핏덩이를 토했다.
‘만물의 아버지의 뼈에 대고, 진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야. 만약 형제들에게 이 일을 말한다면, 맹세코 무덤 속에서 널 저주할 거다. 내가 싸우다가 죽었다고 전해, 뭐랑 싸웠냐고 하면...음... 그냥 뭔가 거대한 것, 네 다리만한 길이의 이빨을 가진 놈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해.’
‘무슨 일 있나?’ 보레인이 그들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아무 일도!’ 라그나르가 대답했다.
냘피르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래.’ 그가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아니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라그나르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몰라, 딱 하나 분명한 건 죽음이 코앞이라는 거지. 저 플래시 테어러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게 몹시 놀라운 거 같더군. 거짓말 좀 보태자면, 진작에 죽었지만 죽었다는 걸 잊고 돌아다니는 거 같아.’
그 순간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고, 울창한 나뭇잎 장막 사이로 날카로운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썩 괜찮은 나날들이었어.’ 바드의 말에 라그나르는 자신이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았다.
‘그냥 가기나 해.’ 1분이 지난 후에야 블러드 클로는 말을 이을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냘피르는 다시금 피비린내 나는 웃음을 지었다.
‘네 멋진 연설에는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듯한데, 형제여. 그냥 계속 가라고? 그게 다친 혈족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인가 봐?’
‘슬슬 네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레이저텅.’
‘하하!’ 바드는 굳은살이 배긴 손바닥으로 땀에 절어진 수염을 닦아냈다. ‘내가 곧 그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르지. 물린 건 나여야 했다는 걸 아나? 응? 너 말고, 오, 넌 안되지. 빌어먹을 행운이 널 따르는 동안엔 말이야. 근데 블랙메인 내가 그 말을 한 적이 있나? 네 운이 다하고 있다고?’
‘고작 육천 번, 칠천 번 정도밖에 안했어.’
‘그 말은 진실이야, 너도 알잖아. 야를은 네가 위대한 일을 할 인물이라고 믿고 있는 듯 하지만, 글쎄, 네 연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듣는다면 그 생각을 접을지도 모르겠어.’
그 말을 들은 라그나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슨 소리야?’
‘진짜 그렇게 멍청하게 굴 거야, 블랙메인?’ 냘피르가 핏덩이를 바위로 뱉었다. ‘네가 퍼스트 팩에 합류한 이후로 왜 내가 널 열받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누가 감히 나로 하여금 널 재물로 유혹해서 매일같이 시험에 빠지게 만들었을 거 같아?’
진실과 매스꺼움 사이에서, 라그나르의 머리가 휘청였다. ‘야를의 지시였다고?’
‘썬더피스트는 중대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교활한 작자야.
그는 언제나 이런 식의 게임과 시험을 여러 번 치르게 하지. 그는 내가 너의 자존심과 야심을, 특히나 네 성질머리 때문에라도 널 자극하라고 지시했었어. 울프 가드 중 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없다는 걸 알아야지.
옥좌의 불길이여, 네가 저 재수 없는 다크 엔젤을 죽였을 때, 야를이 크게 분노했다는 걸 알아둬라. 형제. 그는 지금까지의 두 배 강도로 널 시험하게 했어. 그는 더 이상 너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럼 퍼스트 팩의 난로에서의 싸움이.’
냘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리오닉스에서 승선했을 때.’
‘역시나 너일 줄 알았다.’ 라그나르는 분노에 찬 플래시 테어러의 손길이 다시금 목에 감기는 게 느껴졌다. 전사의 광기에 찬 힘에 짓눌리는 압박감도 느껴졌다. ‘네가 스테이시스의 잠금을 해제했다는 걸 알았지.’
‘그것도 야를의 뜻이었다.’ 얼굴을 구기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냘피르는 히죽 웃었다. ‘게다가 넌 살아남았고, 안그래?’
일순간 라그나르의 말문이 막혔다. ‘나는...나는 네가 그저...’
‘개자식이라고?’ 냘피르는 그의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
‘레이저텅...’
‘이 얘긴 이제 그만하고, 내 도끼를 좀 가져다주지 그래? 내가 퍼스트 팩이 되던 날, 그레이록이 만들어서 준 물건이지. 난 이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쓰러지고 싶진 않거든.’
‘물론이지, 형제여.’
‘좋아, 아주 좋아. 고맙군 그래.’ 냘피르는 바위군의 돌출부 위로 몸을 끌어올렸고, 그의 코에선 한 가닥 선혈이 흘러내렸다. 킁킁거리는 것으로 그는 그것을 다시 콧속에 집어넣었다.
‘아직 죽지 않았어.’ 냘피르가 숨을 내쉬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울창하던 나무들은 어느샌가 얇아졌고, 장막들은 부서진 채 칙칙한 회색 하늘을 완연히 드러내어 더는 망치처럼 두들기는 계절성 폭우에게서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앞으로 보레인이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에게 다가왔을 때, 보레인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는 냘피르에 닿았다.
헬멧의 구강 격자 사이로, 그가 라그나르에게 낮게 말했다.
‘이제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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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저 또한 라그나르처럼 뒤통수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네여.
진짜 소설 내내 냘피르가 너무 싸가지 없어서, 와 이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닌가? 싶었는데.
베렉 썬더피스트 이 능구렁이 같은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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