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손’은 마침내 면도기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3일 전에 도착했고, 그의 군용 갑옷도 함께 있었다.
이 우연의 일치에 딱히 의문을 갖진 않았지만, 아침에 시작될 총독과 간부들과의 만남에 앞서 병사 ‘소르손’은
턱에서 면도용 거품을 긁어내고, 2층 방 한구석에 있는 갈라진 세면대에 담긴 찬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일회용 면도기는 오랫동안 써야하기에 조심스럽게 닦고 보관했다.
세면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울 속에 낯선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망설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소르손’은 남은 비누 얼룩을 닦아내고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곱슬곱슬하던 검은 머리카락은 입대 첫날에 사라졌었다. 그는 지금 군인임을 명시하는 민머리를 하고 있었다.
체중도 원래보다 더 줄어있었고 볼이 헬쑥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왼쪽 눈에 아직 다 낫지 않은 연보라색 멍은
그의 마냥 착해보이던 얼굴을 다르게 보이게 했다.
그는 기억했다.
더 둥글고 생기가 있던 자신의 얼굴을, 순진한 얼굴을.
비행선을 탔던 그날 데스 코어 워치마스터의 멍한 눈에는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행성방위군 비행선의 엔진이 징징거리며 ‘소르손’이 앉아있는 탑승석을 통해 진동을 보내며 그의 뼈를 진동시켰다.
‘소르손’에게 다가온 워치마스터는 어떻게 그가 ‘아렉스’의 행방을 아는 것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소르손’은 웨버 아저씨가 그에게 말했던 걸 자백했을 뿐, 그녀를 짐짓 모르는 척 했지만,
그 크리그 남자가 자신의 거짓말을 꿰뚫어 볼까봐 두려웠었다.
‘소르손’은 우주공항에서 총독을 만나게 될 걸 반쯤 기대했었고
만약 총독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거짓말을 해야할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나쁜 소식이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조카의 실종에 슬퍼하는 ‘헨릭’ 총독에 있어서 고작 ‘소르손’에게
자신의 시간을 할애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그는 그저 수천 명 피난민 중 한명일 뿐이었다.
그는 기억했다.
행성방위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었다.
그가 거의 결정을 내렸을 때, 엄격한 태도의 중위 하나가 그에게 달려들어 군복은 어디다가 버렸냐고 오해를 했을 때,
그는 자신이 이제 막 도착한 난민이고 총독의 징집령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설명해야했다.
다음으로 그가 기억하는 건 덩치큰 하사가 면도칼을 머리에 가져다대고 있었고,
‘소르손’은 그에게 너무 작은 군화와 너무 큰 군복을 받아 입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날은 모든 면에서, 광산감독관 ‘소르손’에서 이병 ‘소르손’이 된 날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던 걸 기억했고 이것이 그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힘이 샘솟았다.
그는 기억했다.
끝이 없는 팔굽혀펴기와 4킬로미터를 달리고 10킬로미터를 행군했다.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훈련조교들, 그러나 좀처럼 그에게는 덤벼들지 않았다.
‘소르손’은 6년 전 자신을 탈락시킨 뚱뚱한 신병모집관 중사 때와 다르게 지금의 자신은
유망한 훈련병 중 한명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었다.
아마도 강제로 끌려온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자신이 여기서 왜 이 훈련을 받아야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르손’은 군사 행동 규범, 차량 및 무기 사용법, 기본적 응급처치술, 생존 기술,
그리고 그의 야전에서의 잠자리를 구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라스건의 분해재조립도 훈련받았는데 아직 자기 무기는 아니었지만
2분도 안되어 라스건을 분해하고 재조립할 수 있었다.
사격 솜씨는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소르손’은 최소 3발중 2발을 과녁에 맞출 수 있을 때까지
우주공항의 언덕 기슭에 지어진 임시 사격장에서 개인적으로 연습을 반복했다.
그는 기억했다.
크리그 장교가 처음으로 처음으로 공항에서 나와 냉혹하게 신병훈련의 전 과정을 지켜본 때를 말이다.
그는 곧 발뒤꿈치로 몸을 돌려 떠났으나 다음날 동료와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이틀 후 크리그 장교는 행성방위군의 훈련을 함께 도왔다.
이따금씩은 훈련을 재시작 할 것을 제안했지만, 저녁이 되자 크리그 훈련장교의 말은 명령으로 바뀌었다.
분명히 행성방위군 측 훈련장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분노했었지만 그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걸리서 감시하는 크리그 장교들이 더 있었고, 한주가 끝날 때 즈음에는
행성방위군 훈련장교의 수 만큼의 크리그 훈련장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때는 10킬로미터의 완전군장 행군이 계획되어 있었고 훈련병들의 배낭에는
실전 군장 무게를 재현한다는 이유로 돌멩이가 한가득 차 있었다.
훈련은 해질녘을 넘기는게 일쑤였고 ‘소르손’은 하루에 4시간의 잠을 자는데 익숙해져갔다.
그는 훈련병들의 불평 불만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그조차도 항상 새롭게 요구되는 전투력 기준을 충족하기는 벅찼다.
흥미롭게도 크리그인들은 결코 훈련병들에게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조용하게 말하고 훈련병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는 위협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 중 ‘소르손’도 훈련 중에 한번 그들을 실망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마스크를 쓴 제국방위병이 성큼성큼 다가와
‘소르손’의 귀에 대고 조용하고 절제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었다.
“넌 지금 늙은 폭도나 불구의 돌연변이와 싸우기 위해서 훈련받는게 아니다.”
“넌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와 함께 싸우기 위해 훈련받고 있다.
나는 네가 그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작정이다. 아니면
한번 더 날 실망시켜서 남은 인생을 낭비할 건가?”
‘소르손’의 소대에 앞에 나선 또 다른 훈련장교는 자신이 12살에 라스건을 갖고
돌연변이를 사냥하기 위해 방사능 지대에 보내졌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그 임무에서 그의 분대 중 3분의 1이 전사했고
생존자 중 더 적은 이들이 유전적 폐기물과 싸우는 것보다 더 올바른 대의에 헌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강의했다.
어느 날 아침, 한 크리그 워치마스터가 군화가 충분히 닦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련병에게 팔굽혀펴기 40개를 명령했다.
그 훈련병은 30대 중반의 광부출신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체력이 좋아 훈련장교의 요구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긴 수면 부족으로 인해 훈련병의 심기는 날카로웠다.
그는 매일 밤 그날의 훈련에 대해 불평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고
그에게는 어젯밤의 불평이 인내의 마지막 지푸라기였던 것이다.
그날 아침 훈련병은 장교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명령에 불복종하며 워치마스터의 얼굴에 소리를 질렀고
이곳은 자신들의 행성이며 크리그인들의 행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경고도, 말도 없이 워치마스터는 자신의 라스권총을 뽑아 그 남자를 즉결 처형했다.
훈련병 모두가 경악하는 순간이었다. 그 사태에 크리그 장교는 행성방위병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갔고
한 동안 훈련소에서는 이 사건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한 루머가 파다했다.
많은 이들은 크리그 장교의 처형행위가 행성 총독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훈련장에서 크리그 훈련장교들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그 후 브라운 대령이 직접 훈련병들을 모아 놓고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크리그 워치마스터는 원래 그들의 방식대로 행동하는데 익숙해져있었고 그게 바로 즉결처형 행위였다는 것이었다.
곧 크리그 훈련장교들은 다시 훈련장에 돌아왔고,
‘소르손’은 생활관에서 이제 불평불만의 소리가 사라진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로 돌아오게 된 걸 깨닫게 되었다.
그는 기억했다.
그 날 이후 정신교육도 바뀌었다.
이제 그들의 정신교육은 황제교의 복음을 암기하고 공동 낭독하는 것을 중점으로 진행되었다.
‘소르손’은 황제의 신하들은 황제와 상부의 적법한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가장 심각한 신성모독이라는 것을 배웠다.
훈련병들은 이제 숫자로만 다뤄졌고, 그들의 옛 이름에 대한 미온적인 언급마저도 처벌 대상이 되었다.
‘소르손’은 이제 자신은 ‘나’가 아닌 ‘이 병사’라고 말해야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때면 바위가 가득 찬 군낭을 메고
우주 공항을 세 바퀴나 돌아야했고 종종 너무 굼뜨다는 이유로 추가 한 바퀴를 더 받곤 했다.
또한 훈련병들 중 일부가 서로 친해졌다는 이유로 함께 했던 생활관 동기들은 서로 다른 훈련병들과 교체되었다.
‘소르손’은 그렇게 해서 1419번 병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역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군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느꼈고, 그 짐을 짊어지고,
그의 새로운 신분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아렉스’를 ‘소르손’이 아닌 군인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억했다.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공기는 차가워지고 서리가 흩날리는 들판을 걸더 그때를 말이다.
‘소르손’의 소대는 ‘테로니우스 시티’에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식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식사 대신 상급자인 크리그 훈련교관은 소대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서로 싸우라고 명령했었다.
훈련병들은 처음에는 주저했으며 몇 사람이 내는 으르렁 거림, 권총집에 손을 향하는 훈련교관의 모습에 반신반의했고
곧 패배한 팀이 승리한 팀에 식량배급을 뺏길거라는 경고마저 듣게되자 싸움은 시작되었다.
싸움 속에서 ‘소르손’은 자기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한 거구 훈련병에게 걷어차여 쓰러졌었다.
그가 일어서기도 전에, 맞서 싸우기도 전에 크리그 교관은 중지를 명령했다.
훈련병들은 당연히 교관이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주제로 몇 마디 말을 한 뒤 시범을 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리그 교관은 한 젊은 훈련병을 대열에서 끌어내어 주먹을 불끈 쥐라고 명령했다.
훈련병은 명령에 복창하며 그렇게 주먹을 쥐었고 교관은 리만러스 데몰리셔 전차처럼 훈련병에게 덤벼들었다.
‘소르손’은 훈련병이 턱에 펀치를 맞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손을 드는 걸 보며 움찔했다.
훈련병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가해자의 계급마저 잊어버리고 주먹을 휘두르려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훈련병의 주먹질은 느렸고, 결국 교관은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쳤다.
훈련병은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몸은 망신창이가 되어 싸우기는 어려워보였다.
그의 팔꿈치에 다리가 박혔고 그대로 그는 차가운 땅위에 쓰러져 있었지만
그가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크리그 교관의 잔인한 폭행은 계속됐다.
“그리고 이게..”
거친 숨을 내쉬며 크리그 교관이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스파링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와 1대1로 싸워야 할 것이다.”
다시 훈련병 끼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소르손’은 아까 전에 자신을 쓰러트린 남자를 보았고 ‘소르손’의 팀 동료들이 수적으로 밀리고 있는 걸 보았다.
그는 적수의 어깨를 뒤에서 움켜쥐고 그를 홱 잡아당기면서 빙빙 돌린 후 주먹으로 쳤지만,
충분히 세게 때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소르손’은 동료를 공격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떡대의 사나이는 자신의 우월한 몸무게를 활용해 다시 박차고 일어나 ‘소르손’을 또 다시 바닥에 내리 꽂았다.
“뒤에서 공격하는 걸 주저하지마라.”
‘소르손’을 보고 교관이 소리쳤다.
“이건 체육대회가 아니다! 전쟁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 ‘소르손’은 자신의 실수에 분노를 그꼈고, 교관의 말을 제대로 따르는 거구의 훈련병에게도 화가 났다.
그 다음은 놀라웠다. 몇 분전까지 동료였던 이를 너무도 쉽게 증오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놈은 놔둬라!”
‘소르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교관이 소리쳤다.
“그는 응급처치도구를 가지고 있다. 자기 부상조차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는 문장을 끝낼 필요가 없었다. 만약 병사가 자신을 돌볼 수 없다면, 그는 우리에게 쓸모가 없었다.
‘소르손’은 여전히 거구의 훈련병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얼굴을 가격하기 위해 망치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몸은 지쳐있었지만 ‘아렉스’를 생각하면 그는 젖먹던 힘까지 낼 수 있었다. 깜짝 놀란 듯 상대는 뒷걸음질치며 균형을
잃었고 기회를 잡아 ‘소르손’은 태클을 걸어 쓰러뜨리고 보복하듯 주먹을 휘둘렀다..
“서로 죽이려하지 않는다면,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두 명의 훈련병이 동료를 구하기을 위해 ‘소르손’을 붙잡았다.
‘소르손’은 피하려하지 않고 이 번에는 발을 단단히 붙이고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선 거구의 훈련병에게 돌진했다.
그는 바위같은 사내의 턱을 때렸고 그 충격으로 두 사람 모두 휘청거렸으나
‘소르손’을 붙잡은 훈련병 한명이 손을 뗄만큼 나자빠졌고
‘소르손’은 이를 악물며 거구의 배에 주먹을 꽂고 한쪽 무릎을 들어올려 놀란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는 항복을 선언했지만 그 다음은 멈출 수 없었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점점 더 치령해지는 난투극 속에서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눈 앞의 위협에 대응하고 할 수 있으면 다른 동료들을 보호했다.
어느 순간 상대에게 어깨를 들이받혀 ‘소르손’은 바닥을 굴렀고
가해자의 쇄골이 부러져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동료들의 이름을 모르니 훨씬 이런 일이 쉬워진다고 생각했다.
교관이 휘파람을 불자 ‘소르손’은 무표정하게 자신과 팀 동료 세 명만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들판에는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했고, 아드레날린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스스로 이 상황을 자랑스러워해야할지 부끄러워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지시받은 일을 했을 뿐이므로 어느것도 느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소르손’은 자신이 되고 싶어하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진작에 이런 사내가 되었더라면
‘아렉스’는 지금쯤 구출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소르손’은 오늘 격투싸움에 대해 어떠한 칭찬도 받지 못했다.
크리고 교관은 경기장을 순회하며 깨어있는 훈련병에게 빠르게 발차기를 했고,
소대원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부상자들을 들것에 옮기도록 지시했다.
그 중 몇 명의 부상의 정도는 한 두달 안에 나을 수준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했다.
부상자들이 들것에 실려, 혹은 쩔뚝거리며 공항으로 되돌돌아갈 때 북적거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격장의 훈련대, 언덕 위의 피난민 무리, 경사로에서 훈련 중인 크리그 소위들 모두
부상당한 채 걸어오는 자신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소르손’은 오늘 비공개로 진행된 사건에 대한 질문이 쏟아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날 밤 ‘소르손’은 두통 속에서 잠이 들었고
그 후 며칠간 갈비뼈가 아팠지만 결코 자신의 처우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그날 많은 것을 배웠었다.
서리가 내린 들판, 그는 이때까지 배운 모든 훈련보다 그날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되었고 그 발견은 일시적인 고통을 겪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왼쪽 눈이 퍼렇게 멍든 것은 그날이 아니었다.
그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령부의 불편한 회의에 소집되었었다.
그는 처음 이 초대에서 특권을 받는 듯한 기쁨을 느꼈고, 그 다음에는 마음이 불편해졌었다
.
왜냐햐면 그들이 원하는 건 1419번 병사가 아니라 옛날의 ‘소르손’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르손’에게 있어
자신의 과거는 후회로 가득찬 흑역사였다. 그래도 그 만남은 그의 목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르손’은 그날 하루 훈련을 면제받고 사령부 한 구석에 작은 책상과 광산 터널의 낡은 지도 데이터를 받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서 최신본 지도를 기억해내고 그걸 업데이트하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었다.
그는 최대한 기억을 복원하려 애썼지만 모호한 그림과 도면의 나열은 절대 이 지도를 완성시킬 수준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헨릭’ 총독이 그렇게 호들갑 떠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르손’은 결국 대령이 나타나 사석에서 지휘관을 만나자고 할 때는 마음이 놓였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지도 만들기를 포기하고 병사로 되돌아가려 했지만 ‘헨릭’은 계속 그를 놔주지 않았다.
대신 총독과 대령은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몸짓은 ‘소르손’의 어깨를 짓누르며,
자신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만들었고 온전한 최신 지도를 만드려는 노력을 배가시켰다. 그러나
정신없이 일하는 그도 반쯤 열린 문틈으로 들려오는 ‘헨릭’과 ‘브라운’ 대령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주에만 세 개 소대입니다. 이제는 막대기를 들고 싸워야할 판입니다.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지만 제가 걱정하는 건-”
“자네 걱정은 나도 알고 있어, 대령. 하지만 내 권한이 -”
“의무동에 14명이 병사들이 추가로 들어왔습니다 – 실탄을 사용한단 말입니까?”
“그 문제에 관해 186번 대령과 여러 차례 논의했어, 그의 의견에 -”
“저는 각하, 당신이 지휘권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
“저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면.”
‘헨릭’이 허둥지둥하며 말했다.
“- 우리는 그것들이 필요해. 그들의 물자, 헌신, 경험이 필요하단 말이야 -”
두 사람의 이야기를 완전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브라운’ 대령은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러나 큰 목소리가 ‘헨릭’의 말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어, 브라운 대령.”
그가 말했다.
“전쟁에서는 어떠한 희생이라도 각오해야해.”
그리고 총독이 ‘소르손’이 일하는 방으로 들어왔고 그는 방에 ‘소르손’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은 채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곧 총독은 ‘소르손’을 보았고 총독은 허리를 곧추세운 후 데이터 슬레이트를 발견해 집어들었다.
‘소르손’의 보고는 ‘헨릭’ 총독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었다.
광산 터널에 대한 그의 새로운 업데이트에는 확신이 없는 수정안들이 즐비했고
대부분은 ‘불확실함’이라는 메모가 함께 있었다.
“이걸 어떻게 크리그 대령에게 보여줄수 있겠나? 어?”
‘헨릭’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자는 우리가.. 네가 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 ‘소르손’.
나는 내 목을 걸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게, 이게.. 도대체 뭐냔 말이야! 다 망치고 있어!”
옛 ‘소르손’은 항의하고 싶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헨릭’에게 확실한 지도를 만드는 건 어렵다고 말했었다고.
하지만 그 억울함은 마음 한 구석에 치워버렸다.
이제 그는 1419번 병사였고 그저 “죄송합니다, 장군님.”이라고 할 뿐이었다.
“다시 해야겠어.”
데이터 슬레이트를 ‘소르손’의 책상에 던지며 ‘헨릭’이 쏘아붙였다.
“이 추측을 근거로 100명을 사지로 몰아넣을 순 없어.
자네가 저 100명 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해보게. 지금 내 행동이 과한 건가?”
“죄송합니다만, 장군님.”
‘소르손’이 말을 더듬었다.
“저는.. 아니 1419번 병사는 커미사르 ‘코스텔린’의 팀에 합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헨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네는 행정병이야.”
그가 말했다.
“그런데 행정도 형편없군. 자네는 평생 갱도에 몇 번 가봤나?”
“세 번입니다, 장군님. 하지만 저는..”
‘소르손’은 말을 더듬었다.
자신의 내면에 공포감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저는 다시 돌아가야합니다, 장군님.
저는 돌아가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녀를 구해야합니다.”
“알고 있어.”
‘헨릭’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여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가 말을 삼켰다.
“남은 훈련이 끝나면 기회를 얻게 될 거야. 자네 여자친구를 위해 싸우는 건 한동안..
한동안 크리그에게 맡기게. 자네보다 그 병사들이 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내 생각에는 네가..”
“아렉스입니다, 장군님.”
‘소르손’이 불쑥 말했다.
절박한 순간에 진심을 보이면 상대에게 진정성을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판단이었다.
“장군님의 조카입니다. 저는 그녀를 위해 돌아가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날 걔는 절 보기 위해 집을 나왔고.. 지금도 절 찾고 있을겁니다. 전 그녀를 찾아야합니다!”
순간 ‘헨릭’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어, 어떻게.. 내.. 조카를.. 어떻게.. 자네가?”
그가 말을 잇지 못하는 걸보며 ‘소르손’은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충격을 받은 듯 총독은 비틀거리기까지 했고 그가 진정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곧
‘헨릭’은 눈을 번쩍 뜨고 병사를 향해 분노에 찬 주먹질을 휘둘렀다.
‘소르손’의 왼쪽 눈이 얻어터졌고 몇 번 씩 총독의 주먹이 그의 얼굴로 날아들었지만 ‘소르손’은 피하려하지 않았다.
몇 분이 흐르고 ‘헨릭’은 ‘소르손’을 외면하곤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진정시키기 위한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화가나 휘두른 주먹의 상처를 붕대로 감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헨릭’ 총독은 돌아서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후우...”
“피난민 중에 광산 감독관이 있을지도 몰라. 병사들을 시켜서 찾도록 해.”
“예, 장군님.”
“지금까지 자네가 작성한 지도를 보여주고, 추가할게 있는지 확인하도록.”
“예, 장군님.”
‘소르손’이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장군님.”
2층의 생활관에서 ‘소르손’은 잠에서 깨어났다. 훈련병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장비와 군복을 점검하고 있었다.
‘헨릭’ 총독에게 진실을 말한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소르손’은 갑자기 크리그 병사들이 들이닥쳐서 자신을 침대에서 끌어내 무릎을 꿇리고 총살을 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렉스’를 봐서라도 총독은 그러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더 큰 고민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렉스...
커미사르 ‘코스텔린’의 부대는 ‘소르손’이 준비한 지도를 따라 오늘 도시로 향하지만 그는 그들과 함께 갈 수 없었다.
상관없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헨릭’이 말했듯이 다른 기회가 있을테니까.
그는 지금 그런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 확실성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멍한 잿빛 눈동자와 냉혹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세수를 하다가 깨달은 것이었다.
그가 이질감을 느끼는 건 변화된 얼굴도, 짧은 머리카락도, 홀쭉한 뺨도, 총독에게 얻어맞아 생긴 멍도 아니었다.
자신이 변화했다고 느끼게 만든건 짧은 시간 동안 얻은 경험으로 축적된 냉철한 스스로의 눈빛이었다.
그렇게 광산 감독관 ‘소르손’은 낯선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긴장한 듯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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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 요약
훈련은 실전이다를 몸소 실천하는 크리그 연대 체험기.
그리고 자신이 총독 조카의 남친임을 밝히고 얻어터지는
이등병 141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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