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총독은 ‘히에로니무스 시티’의 최고층에 있는 자신의 대저택을 내려다보았다.
아마도 지금이 그의 저택과의 마지막 인연이 될거라 생각했다.
총독의 도시는 연기와 화재에 휩싸여있었다. 자욱한 화재의 연기는 최하층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1분 전 그는 두 눈으로 고층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 총독은 이 도시의 위험이
자신과 멀리 동 떨어져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그는 개인 착륙장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엔진이 일으키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은 거칠게 헝클어졌다.
곧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고 그를 보좌할 보디가드 두 명이 내려와 안내했다.
총독이 탑승을 마치자 비행선은 다시끔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쿵쿵대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헨릭’ 총독은 이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을 날수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이제 그는 하늘에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후회와 아픔이 삐져나왔다.
총독의 저택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헤드라이트를 키고 대기하고 있었다.
백여명의 하인과 고용인들이 저택의 귀금속과 총독의 훈장, 개인 콜렉션을 옮기고 있었다.
그가 저택을 내려다 봤을 때 개인적으로 아끼던 그림과 의자와 가구가 트럭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엔진시어들에게 리프트에 비상동력을 공급할 것을 명령했으니
운이 좋다면 짐들을 도시 밖으로 무사히 빼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잃을 것을 걱정했다.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면서 이 자리에 올라왔건만.
총독은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행성을 잃은 행성 총독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절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왼편에 앉은 보디가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칼더’에게 다시 다시 연락 해봐.”
총독이 명령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야겠어.”
보디가드는 고분고분하게 전화를 걸었고 10초 후
‘칼더’ 하사의 조각난 음성이 복스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현재 204 구역에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총독님.”
하사가 말했다.
“고가도로가 무너져서 우회로를 탐색 중입니다.”
“추적기는 어떤가?”
‘헨릭’ 총독이 걱정하며 물었다.
“그 아이는..? 그 아이가.. 계속..”
“걱정마십쇼. 조카 분은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15블록 정도 떨어진 지점입니다.
‘아렉스’님을 구조하고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공항으로 복귀하겠습니다.”
‘헨릭’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하필 오늘 ‘아렉스’가 자기에게 반항했는지
왜 충고를 듣지 않았는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그의 조카가 언제나 고집불통의 말괄량이였지만
스스로 위험천지에 뛰어들만큼 완고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도데체 무엇이 조카가 최상층에서 가출하게 만들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추적장치는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총독은 조카의 목걸이에 몰래 설치한 추적장치에 감사했다.
몰래 장치를 설치할 때는 양심이 찔렸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결단 덕분에 지금 행성방위군들이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트렌차드’ 장군은 아직도 소식이 없나?”
그가 함께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지금까지도?”
“예, 총독님.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장군님은 자택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벌레들이 습격했을 때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지금은
‘브라운’ 대령이 ‘트렌차드’ 장군을 대신해 군대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헨릭’은 현재 도시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트렌차드’ 장군의 생사 뿐만이 아니었다.
도시 발전소의 정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전문가와 행성방위군들은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렉스’ 조차..
그는 억지로 조카에 관한 일을 잊으려했다.
행성방위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구출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총독의 비행기는 링 모양의 통로를 지나 공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무도 오랜 시간 정전된 도시의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밝은 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눈뜰 수가 없었다.
텅 빈 공항의 착륙장에 총독의 비행기 혼자만이 착륙했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피난민들을 보았을 때 ‘헨릭’ 총독은 결심했다.
이 행성을 지켜내야만 한다고.
총독이 공항에 등장하자 수많은 시민들이 그에게 호소하고 탄원하기 위해 몰려 공항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그의 호위대는 라스건을 겨눠 시민들을 위협했고 사태는 진정되었다. 지금 총독에게는 시민들의 사소한 불만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을 생각하며 총독은 시민들을 무시하고 걸어나갔다.
그는 제국방위군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총독은 피난민들로부터 격리된 비상구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관계자 외 접근금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방에는 크리그 연대의 병사들로 꽉차있었다.
병사들은 한 때 공항의 행정사무실이었던 공간을 야전 사령부로 개조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가구와 물건들은 버려지고 제국 방위군의 각종 기기가 설치되었다.
왁자지껄할만도 했지만 고요한 침묵 속에 진행되는 이 대작업을 보면서 총독은 불안해졌다.
마치 이 병사들의 행동이 인간이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령.”
‘헨릭’ 총독은 대령의 계급표를 달고 있는 군인을 불렀다.
“난 이럴 시간이 없어 당장 이곳의 책임자와 만나고 싶네.”
그러자 방독면을 쓴 대령은 몸을 돌려 총독을 쳐다봤다.
그리고 마스크의 검고 탁한 고글 사이로 빤히 총독을 노려보았다.
“무슨 용건이지? 날 아나?”
그가 말했다.
총독은 대령의 건방진 태도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의 어깨에 달린 연대휘장이 번쩍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군, 미안하네.”
그가 말했다.
“전에 만났던 42번 대령인 줄 알고.. 구면인줄 알았소.
그렇다면 자네는 186번 대령이겠군. 행성총독 ‘헨릭’일세.”
“그렇군.”
186번 대령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히에로무스 세타’는 오늘부로 계엄령이 선포되었소, 총독.
그런 이유로 오늘 당신의 총독직위도 함께 해제 될 것이오.”
그리고 대령은 휙 돌아서서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 뒷 모습을 ‘헨릭’ 총독은 황당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자, 잠깐만 대령!”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대령은 무시한 채 제 갈길을 갔다.
곧 또 다른 한 사람이 총독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70대 백발의 커미사르 ‘코스텔린’은 총독에게 공손히 자기소개를 했다.
“제가 대신 대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헨릭’은 자기를 무시하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대령에 대한 불만의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악수를 청하는 커미사르의 손을 뿌리치고 여전히 화가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책임자에게 안내하는 걸 허락했다.
늙의 커미사르의 사무실은 한쪽 구석의 작은 방이었다.
커미사르는 총독을 위해 따뜻한 리카프(워해머 세계관의 커피류 음료) 한잔을 대접했으나 총독은 거절했다.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우에 화가 났음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진정되면서 커미사르의 리카프를 거절한 걸 후회했다.
오늘 밤 그에게 가장 필요한건 카페인이었기 때문이다.
‘코스텔린’의 온화하던 표정은 의자에 앉으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현재 우리는 이 행성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현재 수도에서 정찰임무를 수행중인 우리 부대의 보고에 따르면,
아마도 총독님이 알고 있는 것보다 사태가 더 심각할지도 모릅니다.”
“내 도시에 병사들을 보냈소?”
‘헨릭’이 불쑥 말했다.
“고작 두 개 소대입니다. 작전 목적은 -”
“난 자네 병사들의 임무 따윈 관심 없네. 난 여전히 이 행성의 총독이야.
그 데스 마스크를 뒤집어 쓴 대령이 무슨 생각이 있던 상관없어. 나는 이 행성의 시민들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어.
이 곳에서 일어났고 앞으로 일어난 모든 일이 내 책임이란 말이야! 이렇게 사전보고 없는 군사작전은 인정할 수 없네!”
“행정 절차를 고려하지 않은 무례함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커미사르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186번 대령이 다소 무뚝뚝한 성격인 것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비상식적인 태도라고 말하고 싶군.”
‘헨릭’ 주지사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코스텔린’이 대답했다.
“대령은 오직 이 행성과 시민들을 위해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행성에 관해서는 그 대령보다 내가 더 적격 있는 책임자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대령이 말했듯이 이건 군사작전입니다. 군사작전에서 가장 중요한건 시간이죠.
우리는 촉박한 시간 속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했습니다. 그러니 제 말 뜻은 -”
“후.. 그럼 그렇게 하시오.”
‘헨릭’ 총독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피해 상황은?”
그래서 ‘코스텔린’은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이미 ‘헨릭’이 전해들은 금속 벌레 무리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미처 보고받지 못한 잔해더미에서 기어 나오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행성 궤도를 돌고 있는 군함의 위성분석에
따르면 100개 이상의 탑과 40개 이상의 거주구역이 파괴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총독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방금 전 우리 소대 하나가 적의 공격을 받았었습니다.”
커미사르 ‘코스텔린’이 말했다.
"15명 그레네이더(연대의 스톰 트루퍼와 같은 정예병과) 중 4분의 1이 멜타건으로 무장하고 있었지요.
교전 대상은 병력의 절반도 안 되는 구울들이었고 30퍼센트의 아군 측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무찔렀겠지?”
총독이 희망적으로 말했다.
“예.”
‘코스텔린’은 대답했다.
“불행하게도 사령부는 이 괴물들이 훨씬 규모있는 네크론의 선봉대에 불과하다고 판단 중입니다.”
‘헨릭’은 커미사르가 말하는 네크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차가운 커미사르의 말에 그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나?”
총독이 되물었다.
“제 생각에는 지금 당장 해군 기함으로 가셔야할 것 같습니다.”
‘코스텔린’은 즉답을 회피했다.
“수송선을 보낼 수 있는지 연락해보겠습니다.”
커미사르가 목을 축이기 위해 리카프를 마시자 커다란 폭발소리와 진동이 사무실을 덮쳤다.
사무실에 쌓아둔 서류와 잡기들이 지진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헨릭’ 총독은 어안이 벙벙해져 창백한 손으로 의자를 꽉 잡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코스텔린’?”
“도시 밖을 나오면서 우리 연대가 도시를 포위하는 걸 보셨을 겁니다.
공병들이 남은 출구들을 무너뜨리고 도시 안에 네크론을 가둘 겁니다.”
“안돼!”
총독이 소리쳤다.
“아직 그 안에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갇혀있단 말일세!”
게다가 그의 조카 ‘아렉스’도.
“알고 있습니다.”
커미사르 ‘코스텔린’이 대답했다.
“지금 당장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최대한 많은 피난민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미룰 계획입니다.
그러나 총독님, 우리들은 이미 도시를 빠져나온 수 천명의 시민들과 이 행성에 살고있는 수십억 시민들의
안전도 고려해야합니다. 도시에 갇힌 피난민 때문에 모두가 위험에 처할 리스크를 감수 할 수는 -”
“결국 그들을 버리겠다는 거잖소!”
‘헨릭’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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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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