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손’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그의 인생에서 이렇게 집에서 멀리 떨어져본 기억은 없었다.
어쨌든 도시 전체에서 발생한 정전으로 사방은 어두웠고 그저 앞에 있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고만 있었다.
엄청난 인파의 시민들이 병사들의 휘광빔을 따라 피난길을 걷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르손’은 어제 있었던 돌연변이 소동이 생각났었다.
어제도 지금처럼 수많은 인파 속에 끼여있었다. 사실 왜 우리들이 도시를 떠나야하는 지
이유조차 몰랐기에 훨씬 답답한 마음이 컸다.
일단 위험한 일이 생겼다는데 피할 수 있을까는 커녕 어느 방향에서
사건이 터지든 이렇게 많은 인파 사이에 있다면 인지조차 못할 것 같았다.
정체된 도로에서 앞 줄이 움직이면 자동적으로 ‘소르손’이 발을 내딛는다.
얼마나 오래 걸었던지 하반신에 마비가 올 것 같았다.
정전사태를 제외하고 한 시간동안 아무런 폭발소리나 위험한 일은 없었다.
‘소르손’은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최악의 상황이 해결됐기를 소원했다.
일단 피난민들의 목적지는 우주 공항이었다.
그러나 도시 밖을 빠져나갈 방벽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르손’의 오늘 하루는 너무 힘든 날이었다.
그는 오후 내내 경찰서에서 진술을 해야했고 그 다음에는 행성방위군 장교들을 만나 추가 진술을 해야했다.
그는 그날 갱도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태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가 겁쟁이처럼 도망쳤던 일화는 굳이 포함하지 않았다.
장교들이 자리를 떠났을 때는 모든게 끝난 줄 알았었다. 하지만 행성 총독이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었을 때
다시 한번 갱도에서의 사건을 이야기해야했다.
그는 한동안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절차가 끝나고 풀려났을 때는 참았던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본사로 돌아오고 난 뒤 ‘소르손’은 총독의 행정명령으로 인해 광산 폐쇄 절차에 착수해야했다.
그의 하급자들은 저마다 질문이 있었지만 ‘소르손’은 모두들 당황시키지 않게하려고
“나도 잘 몰라. 그냥 단순한 예방절차일거야.”라고 대답하는게 다였다.
폐쇄절차에 관한 행정업무가 끝나고 ‘소르손’은 그의 비서 ‘크레우즈’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홀로 업무실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 그는 쏟아지는 잠에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다.
어제 사건 이후로 36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걸 상기했고 그 자리에서 그는 정신을 잃은 듯 골아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깨어났을 때는 도시가 암흑천지로 변한 뒤였다.
당황한 ‘소르손’은 계단을 올라가 고가도로로 나왔고 그를 본 행성방위군 병사들이 도시 밖으로 대피할 것을 명령했다.
의아한 ‘소르손’이 병사에게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에게
“저도 아는게 없습니다, 선생님. 단순한 예방절차일겁니다.”라는 대답을 받았다.
피난길은 끔찍할 만큼 느리고 지루했다.
교차로에서 종종 무리가 멈추고 병사들의 안내로 다른 피난민 무리가 합류할 때까지 긴 시간동안 정체가 있었다.
사람들 중 일부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집에서 쫓겨난 상황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고
현재 상황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하는 병사들과 언쟁이 벌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소르손’은 우연히 병사들이 개인 무전기로 상부와 연락을 취하는 걸 볼 수 있었고
최소한 정부가 사태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피난민들을 다른 곳으로 통제.. 고가도로가 붕괴..’
뭐? 고가도로가 붕괴?
‘소르손’은 자신이 무전 내용을 정확히 들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옷을 좀 두껍게 입었어야했는데 밤새 부쩍 차가워진 공기에 ‘소르손’은 몸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에이 뭔 일이라도 있겠어? 황제께서 잘 해결해주시겠지.그는 행성방위군의 호송차가 날카롭게 좌회전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차량은 피난민들이 없는 빈 거주지의 골목을 향해 사라졌다. ‘소르손’은 그때 발에 뭔가가 밟히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건축에 쓰이는 플라스크리트 자재덩이였다. 그는 생각없이 그 덩어리를 발로 차 치웠는데 점점 걸어갈수록 즐비해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 무전에서 들린 ‘고가도로의 붕괴’가 떠올랐다.
만약 이 일이 갱도에서 보았던 기둥의 폭발과 관련되어 있다면 도시 곳곳에 아직 그 폭탄들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대피령은 이 폭탄에 대한 조치에 관한 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벽돌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벽돌이 떨어진 자리에는 사체하나가 버려져있었다.
반쯤 불에 탄 채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자 ‘소르손’은 소름이 돋아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건물 더미 사이사이에 깔려죽은 사람의 손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뒤에서 사람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피난민들 사이에서도 주위에 널린 시체들에 대한 인지가 일어난 것이었다.
‘소르손’은 고가도로 밑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있는지 걱정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자고 있다가 변을 당했을 것이다.
겁에 질릴 시간조차 있었을까? 그는 생각했다.
“저길 보세요!”
누군가 외쳤다.
“저기 밑에 누군가 움직이고 있어! 생존자다!”
그 목소리는 ‘소르손’과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들렸다.
시민들이 뛰어가 더미 속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너도나도 벽돌을 치우기 시작했다.
‘소르손’은 그 사이에서 꿈틀대는 생존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벽돌을 치우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생존자는 피투성이였고 ‘소르손’은 자신이 좀 더 용감했다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부상자를 덮은 벽돌을 치우는 행위가
위험하다고 경고한 뒤 가까운 병사에게 메디팩을 요청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 후 피투성이 형체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일어섰다.
‘소르손’은 직감적으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비명소리가 그를 놀라게 만들었고 또 다른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피난민들 사이에서 위험을 경고하듯 비명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르손’은 그의 앞에 있는 피투성이의 존재가 자신의 상상이 아니고 굴절하는 빛으로 인한 헛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놀란 채 같은걸 보고 있었고 피투성이의 그것을 구하기 위해
벽돌을 치우던 사람들도 몸이 굳은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그들을 구할 길은 없었다.
그 기괴한 생물이 어깨를 휙하고 움직이자 두 명의 사람이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르손’은 똑똑히 목격했다.
이 괴물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심장을 꿰뚫는 걸 말이다.
1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한 소녀의 비명소리와 함께 피난민들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르손’은 비상 전등으로 비친 그 괴물의 손톱을 보았다.
그것은 1미터가 넘는 긴 금속 칼날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 괴물은 천천히 앞으로 달려왔고 불행한 세 번째, 네 번째 희생자를 베어 버렸다.
‘소르손’은 이제 완전히 그 괴물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금속 해골의 얼굴에 금속 골격 그리고 사람의 썩어가는 살가죽이 덮힌 모습이었다.
특히 멀리서도 느껴지는 사체 썩는 악취는 끔찍했다. ‘소르손’은 헛구역질을 참기 위해 입을 막았다.
저건 저 괴물의 피부가 아니였다. 죽은 사람의 가죽을 망토처럼 뒤집어 쓴 것이었다.
지능적으로 벽돌 더미에 몸을 숨기고 사람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는 걸 깨달았다.
‘소르손’은 이렇게 끔찍한 걸 본적도 들은적도 없었다.
어젯밤의 돌연변이도 이렇게 가까이 있지 않았다.
도시의 뉴스 어느 채널에서도 이런 괴물에 대해 경고하지도 않았었다.
머리는 그에게 달려라고 명령했지만 완전히 겁에 질린 다리는 꼼짝할 수 없었다.
‘소르손’의 시선은 오직 그에게 다가오는 ‘구울’ 눈빛에 사로잡혀있었다.
어쨌거나 도망친들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미 사방에 그와 같은 ‘구울’들이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앞에 두 명의 병사가 나타나 괴물을 향해 라스건을 겨눴다.
‘소르손’은 기뻐하며 감사의 기도를 중얼거렸지만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두 병사들도 그와 똑같이 겁에 질려 방아쇠조차 제대로 당기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괴물이 코앞까지 와서야 라스빔이 발사됐지만 ‘구울’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사력으로 첫 번째 병사를 쓰러트렸다.
병사들이 결국 그 괴물을 죽이지 못했지만 ‘소르손’은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
구울은 미처 도망치지 못한 시민 두명의 머리를 베며 쫓아왔다.
두 번째 병사가 놈을 향해 라스건을 조준해 발사했다.
구울의 어깨를 라스빔이 명중했다.
곧이어 연속적인 라스빔의 타격으로 놈이 몸을 움츠렸다.
‘소르손’은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구울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며 병사를 쓰러트렸는데 그것은 단지 병사를 죽이지 않았다.
놈은 한손으로 병사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피부를 도려내고 있었다.
‘소르손’은 똑똑히 보았다. 저 구울이 산채로 사람의 피부를 벗기고 있었다.
피부가 벗겨진 병사는 내동댕이 쳐지고 ‘소르손’은 그가 아직 숨이 붙어 꿈틀대는 걸 보았다.
뒤이어 다른 병사들이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뛰어왔으나 이미 결말은 뻔해보였다.
‘소르손’은 도망치는 걸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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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방위군과 제국방위군 간의 짬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편인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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