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은 멘텝이 그의 의식 속에 지어둔 모든 장치 중 가장 강력하면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들을 여는 일을 포함했다.
분할 정신들과는 달리, 그것에는 물리적 구조가 없었지만 대신 그에게 묶여있는 정보의 인공물로서 유지되어 온 것으로, 크립텍은 이를 추억 매개체(evocatory medium)라고 불렀다. 일종의 연결체로, 상념들로 인해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의식 너머 깊은 곳으로 통하는 통로였다. 조용하고, 미지의, 통제되지 않을 무언가.
올틱스는 매개체의 요구에 따라 그가 선택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일종의 몽상과도 같은 형태로, 현실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건 다가왔다. 당연했다. 그건 완벽하게 현실이었으니까.
네크론티르로 있었던 아주 먼 과거에 고향의 크립텍들은 보편적인 진리를 확립했다.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은 곧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네크론 엠그램이 감각의 증거를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정밀했음에도, 그들의 장기적 정확성은 여전히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억의 각각 회상은 생각의 얼룩으로 덮어지고 곧 얇은 막들을 남긴다.
수 세기 동안 이렇게 쌓인 것들은 가장 얇은 막조차도 '기억의 기억'과 같은 왜곡된 덧쓰기(palimpsest)로 만들어버렸고, 이러한 잔인한 논리에 따라 가장 중요한 엔그램은 오히려 가장 빠르게 변형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멘텝이 설명했듯이 매개체는 의식의 간섭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부터 기억을 탐구함으로서 위 같은 문제를 회피했다. 그리고 단순히 오래된 사건들을 재현하는 것 이상으로, 그것은 엔그램 데이터를 헤카틱 비문(hekatic inscription)으로서 취급했다.
현실 그 자체를 마법처럼 만들어낼 수 있는 언령(Words of power)이 그에게 과거의 진실을 보여준다. 이는 심지어 그를 육신을 가졌던 때로도 데려갈 수 있는데, 필멸자의 기억을 담은 엔그램 복사를 불가능한 수준의 높은 싱크로율로 옮겨낼 수 있었다. 매개체가 드러낸 진실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항상, 어떻게든, 올틱스가 봐야 할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엄청난 힘이었다. 허나 그러한 다른 여타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건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대가의 지불이란 것이 올틱스에겐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나 계속해서 오크 선봉대의 혼란스러운 윤곽이 평원의 스모그와 합쳐지고 있었고, 그 광경은 올틱스가 대가를 치르는데 거리낌이 없도록 만들어줬다.
결국 올틱스는 자존심과 두려움을 동등하게 억누르며 매개체에게 현명하고, 고귀하며, 증오해 마지않은 조세라스의 통찰력을 요청했다. 매개체는 이를 받아들였고, 점차 어두워지는 어둠 앞에서 잿빛 눈발이 흩날릴 때쯤 올틱스는 그의 안쪽에서 깊고 깊은 그림자가 입을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낱같은 안도감으로, 그는 그 자신을 놓았다.
아주 오래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옛날이었다. 그러나 올틱스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있었고. 이후에 있었던 모든 시대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 그런 생생한 악몽일 뿐.
그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고, 젊었을 때나 네크론티르에게 주어지는 짧은 힘의 정점기에 도달하고 있었으며, 그에 걸맞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빛이 동쪽 하늘로 올라갈 때면 올틱스는 안티케프에 있는 왕의 지구라트 높은 곳에서 수도 전체를 볼 수 있었는데, 그 광경은 그가 여지껏 봐온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 도시는 왕조의 지구라트를 중심 삼아 창왕 이타카(Ithakka the Founder)에 의해 선언된 대로 동심원 모양의 띠로 배치되어 있었다. 금욕적인 공원 지대가 해자를 이루며 왕궁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해안에는 선왕들의 무덤이 마치 왕좌의 보초석처럼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광대한 건축물들로, 궁전의 첨탑을 지나 처음으로 태양과 맞닿았다.
하나둘씩 선왕들의 주형들이 위치한 높은 정상들이 기념비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잠시 올틱스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과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비록 그는 죽음으로 인해 그의 조상들과 헤어졌지만, 태양은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그늘진 세계 그 위 높은 곳에 있는 자들과의 교감을 허락해주었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무덤의 계단식 측면을 따라 흐르는 빛은 한쪽의 황량한 정원에 모여들었고, 다른 한쪽은 도시로 퍼져나갔다. 곧이어 네크로폴리스의 전반적인 성채가 중간급 귀족들의 무덤에서부터 가장자리의 거의 비어버린 시모리아인(Symorrian)들의 무덤까지 빛을 발했다.
햇빛이 성채 벽 안쪽을 스쳐 올라가 종국엔 정상에서 흘러넘치니, 이내 경계조차 불분명할 정도로 넓디넓은 백성들의 거주구로 빛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며 끝끝내 외벽까지 닿았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올틱스는 오늘이 덥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 건기가 오기엔 일렀지만, 오늘은 바람도 불지 않았다. 실제로 새벽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그가 직접 옷을 입을 때쯤엔 벌써부터 그의 맨발에 닿은 기와가 따뜻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피와 살이 있다니!
음, 그래, 왜 갑자기 그 사실이 그를 그토록 흥분시키는지? 보통의 네크론티르처럼, 올틱스 또한 육신의 짐을 원망했기에 방금의 흥분은 실로 기이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몇 달 동안이나 그를 서 있을 수 없게 만든 혈액 질환으로부터 막 회복된 참이었다. 넓었던 몸은 막대기와 아마포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였고, 그의 형이자 첫 번째 키나즈인 조세라스가 그를 조롱해왔다.
이제 그가 다시 제 발로 설 수 있게 됐기에, 올틱스의 형은 전술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이 이른 시간 올틱스가 깨어나야했던 이유였다. 그래도, 적어도 그는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심 가르침이란 게 왕조의 정교한 석판들을 이용한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전쟁 게임이기를 올틱스는 바랐다. 게임을 좋아하는 운나스는 항상 어린 후계자에게 언젠간 게임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세라스가 그런 그의 생각을 알았을 때, 그는 전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힘을 키울 수 없다고 말하며 비웃음을 보였다.
심지어 그는 올틱스가 지팡이를 가져가는 것도 막았다. 지팡이가 없으니 긴 여정이었다. 태양이 떠오르고, 조세라스가 그를 왕실 지구라트 바깥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네크로폴리스 문을 통과하여 백성들이 사는 시끄러운 빈민가로 인도했다.
백성들의 거주구를 바라보는 건 언제나 그날 아침처럼 위에서였다.
그가 방에서 바라봤을 땐, 여긴 마치 구멍 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처럼 네크로폴리스로부터 중구난방으로 뻗어나온 흐릿한 난장판이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지금 거리를 걷는 것이 만족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땅에서부터 본다면, 여긴 너무도 흐트러지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모든 것이 갈색빛을 띠고 있었고, 좁은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냄새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네크로폴리스의 티끌 하나 없는 홀과 목욕탕에서 일생을 보낸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악취였다.
높이 솟은 무덤과 네크로폴리스 성채의 기념비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의 건물들은 흙 위로 간신히 걸친 수준이라 할 법했다. 별의 심장을 멈추게 하거나 행성의 철심(iron core)을 표면에 닿지 않고도 빨아들이는 능력을 지닌 문명의 중심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여전히 진흙 벽돌로 지어진 것이었다.
그 모습에 올틱스가 이유를 물으니, 조세라스는 ‘기억될 가치가 없는 이들에게 있어 영속성이란 뭐지?’라는 말로 답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수십 케트를 걸은 후, 그들은 거주구 가장자리에 있는 훈련장에 도착했다. 오그도베크 왕조(Ogdobekh Dynasty)에 대항하기 위해 보병들이 훈련받고 있는 곳이자, 동시에 트라이아크의 명예를 다시금 이타카스에 돌려놓기 위한 훈련 중인 블랙 가드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최고의 전사들을 훈련시켰고, 키나즈는 올틱스에게 그를 가장 기껍게 할 군단을 하나 선택시켰다. 무예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는 올틱스였기에 그는 무작위로 하나를 골랐고, 곧 그들은 차게 식힌 와인을 따라 보병들이 서로 대련하는 것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병사들의 봉이 충돌하고, 그들은 그들이 선호하는 자를 택한 채 새로운 챔피언의 기량을 놓고 논쟁했다. 한 항아리의 물이 빠지면 후에 또 다른 항아리가 빠졌고, 논쟁은 점점 격해진다. 이들은 웃으며 서로의 속임수를 비난하고, 잠시 후 올틱스는 조세라스를 향해 가르침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세라스가 미소를 지었으나, 그것은 마치 끔찍한 무게를 견디는 것처럼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그런 미소였다. 키나즈는 아직 가르침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일어나 흥이 다 빠진 채 대련 중인 병사들에게 다가갈 때, 올틱스는 그의 멘토가 자신보다 더 술이 깼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트.’ 조세라스가 군단장에게 비켜달라고 손을 흔들며 명령했다. 봉 소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이내 그가 다시 입을 뗐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오늘 오후의 승리에 따라 내림차순으로 줄을 짓도록.’
병사들의 규율에 따라 그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일렬로 정렬했다. 천둥이 치는 것처럼 무거운 공기가 내리앉았다. 올틱스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으나, 감히 떠올리진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전사들이 그의 직감을 똑같이 느꼈다면, 그건 분명 일어날 일이었다. 정렬한 대열에는 다리의 떨림도, 얼굴의 떨림도 없었다.
조세라스는 군단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일절 말을 하지 않고는 열을 따라가며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두 번째 병사의 머리를 쏴버렸다.
올틱스에게 죽음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네크론티르였으니까. 그러나 살인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는 네크로폴리스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방금 있었던 일의 오만함, 즉 조세라스의 부적절한 행동에서 나오는 혐오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잘 알았다. 키나즈는 결국 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고, 대범한 운나스는 그들을 꾸짖기보다는 형의 창의성에 웃을 가능성이 더 컸다. 오늘은 부적절한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올틱스가 가르침에 분노한 진실한 이유는 냉담한 낭비에 있었다. 훈련장에는 백 명의 숙련된 전사들이 있었고, 그들에겐 이름과 가족이, 최소한 선호하는 모래폭풍의 종류가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오십 명이었다.
그는 숫자에 대해 분노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이면에는 잃어버린 게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공포감이 깔려있었다. 왕가의 인물이란 건 차치하고서라도, 네크론티르라면 그런 식으로 생각해선 안됐기에 그는 그의 생각이 빠져나가기라도 할까 두려워 입을 꾹 다물었다.
그와 조세라스가 목욕을 마친 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공전 정원에 앉아있는 동안, 결국 늦은 밤 댐이 무너졌다. 올틱스에겐 다행스럽게도, 침묵을 깬 건 그의 형이었다.
‘네가 이해해라, 올틱스. 맹세코 그 가르침에 유희 따윈 없었다. 살인은 암울한 일이거든. 진정한 고귀함은 그런데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
‘아, 그래서 거기에 가르침이 있긴 했다는 거군.’ 더 이상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올틱스가 틱틱거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두 가지 가르침이 있었다. 둘 모두 피비린내 나는 것이지. 만약 네가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게다.’
‘첫째, 네크론티르는 죽기 위해 태어난다. 죽음은 잔혹하지도 않고, 미덕을 존중하지도 않지.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이고,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어쩌면 단순한 진리일 수 있지만, 네가 왕조를 이끌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거다. 그러니 운나스의 두 번째 후계자여, 죽음은 그 전사들만큼이나 왕조와 나 둘 모두에게 존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너 또한 명심해야 한다.’
‘좋아.’ 올틱스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않은 채, 인정했다. ‘하지만 죽음만이 그 전사들을 데려간 건 아니지. 네가 그들을 쐈잖아.’
그의 형은 코웃음을 쳤고, 대답하기 전에 손을 다시 한 번 닦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봐, 올틱스. 그 모든 전사들에겐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그 품으로 안내했을지언정, 이미 죽음이 그들에게 맞닿아있었다는 말이지. 오그도베크와 싸우는 전쟁터나, 아니면 그들의 육신 안에 말이다.’
올틱스가 시무룩하게 투덜대며 동의했다. 모성에 내리쬐던 별보다도 훨씬 더 자애로운 안티케프의 태양 아래라 할지라도, 그들의 백성들은 병에 걸릴 운명이었다.
매일 잠에서 깰 때면, 모든 네크론티르들은 그들의 몸에 난 거친 부스럼들을 쓸어내거나, 죽음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딱딱히 묻힌 덩어리들을 찾곤 했다. 이는 절대로 쉬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이 올 때면 자비롭지도 않았다.
심지어 왕실의 의사들조차, 콘클라베의 무한한 과학을 동원할 수 있는 그들조차 고작 40년의 병마를 막아낸 것만으로 그들은 행운이라 여기곤 했다. 그렇기에 백성들은 이러한 온코맨서(oncomancer)들을 접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훈련장의 많은 전사들이 종양과 병변으로 얼룩져 있었고, 그들의 모래시계는 뒤집힌 지 오래였다.
올틱스의 빈 잔을 채우려 앞으로 나선 종복조차도 얼굴도 이미 해면 조직으로 반쯤 가려져 그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젊은 날의 본능에도 불구하고, 올틱스에겐 영원한 삶이란 없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 멀리 내다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가르침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경청하거라.’
‘그 군단의 공백은, 전임자들의 무덤에 모래도 채 자리 잡기 전에 메워질 것이다.’
키나즈는 정원을 가로지르며 네크로폴리스의 벽 뒤로 가려진 널찍한 백성들의 거주구를 가리켰다.
‘내일과 모레면, 죽은 이들을 대신할 더 많은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언제나 더 있을거다, 올틱스. 개인은 잃을지언정 군단은 남아있을 테고,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우리의 신하들에게서 찾아야 할 가치일 터. 그들 개개인만으로는 하등 가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을 살아있었어, 안그래?’ 올틱스가 반박했으나, 그의 말엔 힘이 없었다.
‘어쩌면 형과 나는 다른 방식을 취했을 수도 있어. 8번째 예식이 우리에게 그들의 의식이...부족하다는 걸 알려줬듯 말이지. 하지만 그들은 왕조를 위해 일하고 싸웠잖아, 그렇지? 어떤 이들은...사랑받기도 했을 거야. 그건 분명 그들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그러자 조세라스가 기다란 손에 머리를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다.’ 그가 말했다. ‘허나 이는 작디작은 사실로, 만약 네게 더 큰 것들이 위험에 처했다면, 네가 아무리 그렇게 되길 바란다 할지라도, 너는 그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순 없는 노릇이다.’
그는 동쪽 산맥이 별을 가려 까마득하게 잠긴 어둠을 바라보곤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예시가 좋겠군. 네가 저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고 치자.’
‘난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데.’ 올틱스가 공격적으로 답했다.
‘그렇다고 치자. 네가 밤을 새기 위해 천막을 치고, 구름 한 점 없는 밤의 추위에 맞서 장작불을 피웠을 정도로 그걸 매우 즐기고 있다. 이때 얼어버리면 안되겠지? 그래서 넌 불을 피워야만 할 터, 근데 바로 옆 산등성이에 숲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해도 모든 나뭇가지를 뜯어갔다는 사실에 슬퍼할 게냐?’
‘내가 가우스 화로를 사용하지 않고 왜 굳이 나뭇가지로 불을 피우겠어.’ 올틱스가 완벽히 진심인 것처럼 포장하며 조세라스를 자극했고, 키나즈는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이건 은유니까, 어리석긴! 그 불은 이타카스의 유산이다. 그리고 하늘의 태양처럼 밝은 것이 번성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소모되어야 하지. 연료가 없으면 그것은 줄어들 것이고, 시간이 지난다면 꺼져버릴 것이다. 고로 대가를 지불해야할지니, 우리의 백성들은 장작이다, 올틱스. 그들은 빠르게 타오르지만 그만큼 넘쳐나지.’
‘그리고 나무가 태우는 것보다 더 빨리 자라는 한.’ 올틱스는 조세라스의 주장에 자신의 의지가 반하는 것을 느끼며 내심 주저한 채 말했다.
‘불은 꺼지지 않겠지. 그 말은 연료로서 나무가 가진 이차적 정체성을 더 중시한단 소린데, 그렇다면 나무를 나무 그 자체로 여길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정확해.' 조세라스가 마침내 훈련장에서 보았던 미소를 지으며 동의했다. 그리고는 그의 주장을 이해한 것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운나스에겐 이를 인정하지 않겠으나, 훈련장에서 돌아오며 난 내가 한 짓에 대해 역겨움을 느꼈다. 허나 그 전사들은 네게 '불'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기 위해 태워야만 했던 장작이었다.’
그 말을 들은 올틱스는 갑자기 몸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만약 그가 오늘의 일로 배운 것이 없었다면, 그때야말로 그 전사들의 죽음은 실로 무의미해질 것이고 이는 그의 책임이 될 터였으니까.
이제는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조세라스가 말을 계속했다.
‘우린 괴물이 아니다, 올틱스. 만약 지켜야 할 유산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 육신의 덧없는 필요성을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었겠지. 심지어 백성들의 육신 또한 말이다.
하지만 내 가르침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네게 남아있다면, 그냥 넘겨버려라. 육신은 사라지지만 돌은 영원하다. 우리의 정복과 정복에 대한 권리, 우리의 모든 권력은 우리가 지금껏 쌓아 올린 돌 그 안쪽에 안치되어 있고, 증명되어 있다.
다른 모든 것, 즉 네가 명령하는 생명들, 더 나아가 너 자신의 생명까지도 돌들의 영속성을 지켜내기 위해 사용되어야만 한다. 영속성의 가치에 비하면, 그 밖의 것들은 의미가 없을 터, 알아들었느냐?’
이해했음을 표하기 위해 올틱스의 고개가 숙여졌다. 그는 여전히 동의한다고 확신하진 못했지만, 삶이 짧긴해도 그 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조금은 더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좋다.’ 키나즈가 끝을 맺었다. ‘그때를 위해 마시자꾸나. 사실, 아마 네가 건배를 제안할 수도 있겠지.’
그가 잔을 들어 질문과 함께 기울였다. ‘왕조의 힘은 어디에 있다고, 올틱스?’
‘돌 안에요, 키나즈.’
‘돌 안에 있지!’ 조세라스가 흥겹게 따라말했고, 그들은 그들의 잔을 깨끗이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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