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이 자아는 뭐지? 이 침묵하는 관찰자
엄하고 말 못하는 비평가, 누가 우릴 겁 주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헛된 짓거리를 하라고 재촉하는지
그리고 종국엔, 우릴 더 엄히 심판하게 해
우릴 몰아붙인 그의 비난에 담긴 잘못을 위해서?
브리타니아의 서기 엘리엇의 구절
테라 시대 제1 천년 기
친우여, 거만히 굴지 말라. 어이하여 이 아침 도살될 짐승에게 새벽녘부터 물을 주느뇨?
이메냐스-손-이메나의 문구
고대 집투스, 테라 시대 이전
추방
1장
애처로운 짐승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칼바람과 같은 낮은 목소리로, 짐승이 널돌(flagstone) 위에서 피 흘리는 모습을 보던 올틱스가 홀로 으르렁거렸다.
한 때, 올틱스는 천 개의 별을 지배했던 제국의 가장 빛나는 후계자였다. 위대한 이타카스 왕가의 세 번째보다 앞선 서열의 키나즈였으며, 언젠간 왕좌에 오를 운명을 지닌 자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이곳에 오게 되었다.
세드(Sedh), 이 독성 높은 진눈깨비의 행성은 더 이상 자전하지 않았다. 제자리에 박혀있었고, 덕분에 절반은 언제나 죽어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타카스 왕조의 변경에 위치한 황량한 프린지 월드, 버려진 자와 미치광이들의 고향. 군주 운나스가 올틱스의 계승권을 빼앗고 궁정에서 추방했을 때, 그는 올틱스를 세드의 노마치로 임명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국경 너머에서 몰려오는 해충들의 침입을 처리하라고 그 끝없는 황혼으로 올틱스를 버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올틱스의 시야 구석에서 소복히 쌓인 눈더미를 한 구의 부들거리는 녹색 덩어리가 더럽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제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은 아무래도 저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하찮은 노마치조차 유기성 폐기물을 치우는 추잡한 일에 매달려있었음에도, 올틱스는 그의 교리 정신 -분할 정신 중 첫 번째인- 이 침입자에 대한 분노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신이 그가 겪은 쓰라린 경험을 통해 그가 직접 부상당했던 일을 다루기 전까진 말을 멈추지 않을 거란 것도.
왕관을 쓴 머리가 지치는군, 자조적인 생각을 하며, 그는 무덤 입구에서부터 침입자가 쓰러져있는 곳까지 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수아리의 성문(Ossuary’s gate)들은 단지가 지어진 절벽에서 돌출된 암벽으로 깎아진 근엄한 포르티코(portico,기둥을 받쳐 만든 현관 지붕)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올틱스는 지난 열두 시간 동안 어둠 속에 서서 보병 소초 너머를 그저 우울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이 침입자는 분명 그를 여기 널린 여러 건축물 중 하나로 여겼음에 틀림없었다. 기둥 옆에 서있는 고요하고 생기 없는 해골 거인 조각상. 그러나 만약 흩날리는 눈 사이로 더 가까이와서 보았더라면, 철제 갈비뼈 사이의 구멍에서 꺼져가는 석탄처럼 희미하게나마 타오르는 에메랄드 불꽃을 볼 수 있었을 터.
분노가 그의 깊은 중심핵(core-flux)에서 솟구쳤을 때, 그 석탄은 불길에 휩싸이며 그의 뼈대를 순식간에 가로질러나가 배열된 방출 노드로 퍼졌고, 이는 그를 스쳐지나갔던 눈송이에 녹색 후광을 비칠만큼 충분히 밝게 빛났다.
올틱스의 분노는 결코 꺼진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그저 이유가 부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리고 이제, 여러 가지 이유가 생겼다.
그는 그가 손을 뻗어야할 군단이 전열을 유지하는데 실패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는 그를 내쫓아 이렇게까지 격하시킨 자들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는 그 짐승에 대해 분노했다.
세드는 비참한 영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이곳으로 오게된 것은 운나스의 철저히 계산된 모욕인 게 틀림없었다. 허나 이 차갑고 독성 가득한 변경땅은 여전히 이타카스, 그리고 네크론티르의 영토인 것도 틀림없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제기된 그들의 주장은 한번도 철회된 적이 없었다. 이 고대의 경계 안에 위치한 모든 영토, 심지어 세드와 같이 메마른 대지조차 육신의 이해 영역 너머에 위치한 신성한 신들과 그 종복들에게만 허가된 켐메트(kemmeht)였다. 산 자들을 위한 땅은 없었다.
이 무덤은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 그랜드 오수아리(The Grand Ossuary) -크라운월드 안티케프(Antikef)의 무덤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는 세드의 무덤 중 가장 위대한 무덤이었다. 이곳은 이 땅을 맡은 변경백들을 위한 요새이자 휴식처였고, 일어난 이들이 머무르는 곳이었으며 동시에 갤러리들이 여전히 긴 잠에 빠져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물론, 가장 깊숙한 지하묘지에는 음울하게 끓어오르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저주의 두 번째 죽음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타카스 왕조는 이웃 왕조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났고, 그 치열하고도 자랑스러운 개척기 동안 오수아리는 굳건히 국경의 요새로서 자리를 지켰다. 영토에 굶주린 불결한 어린 종족들의 끊임없는 침입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기 동안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비록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줄어만가는 세드 수비대의 지칠 줄 모르는 밤샘 덕분에 그 신성함이 보존되었다. 그러나 지금, 올틱스의 눈 아래, 그것의 돌들은 더럽혀져 있었다.
침입자는 무덤 입구의 성역인 테메노스(Temenos)까지 다가왔다. 그의 교리 정신에게서 흘러나오는 경건한 속삭임이 이미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듯이, 이는 충분히 심각한 위반이었다.
내 주인님의 명예에 흠집난 상처는, 귀족적인 경멸로 가득찬 비웃음이었다, 지워지지 않겠군.
침입자를 바라보던 올틱스는 그 말에 동의했다. 이 모욕은 아마도 올틱스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마주친 불결한 짐승들 중 가장 가엾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노려보며 정확한 명명을 위해 외생학 정신을 불렀다.
그롯(Grohtt), 잠시후 그의 다섯 번째 분할 정신이 말했다. 이것의 이름은 오크의 언어로 그롯입니다.
‘그롯.’ 한차례 마치 더러운 물건을 뒤집는 것 같은 소리가 음성 장치에서 흘러나오고, 이내 올틱스가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별다른 게 없다면, 적은 의성어에 재능이 있었다. 그 짐승은 제 이름처럼 역겨웠으니까.
코를 훌쩍이며, 구멍이 난 흉부를 통해 숨을 헐떡이는 이 왜소한 녹색 것은 겁많은 짐승의 꿈틀거림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내구성은 있었다. 노예-짐승은 보병진에서 2케트(khet, 네크론의 길이단위)나 떨어져나왔고, 잿빛 눈 속에서 긴 얼룩 –올틱스가 극도로 혐오하는- 을 남겼다.
'곱게 죽어버릴 순 없나?' 큰소리로 되물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향해서. ‘사방에 흩뿌려대지않고?’
이제는, 그에겐 극심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게도, 그것은 아래층 계단에 그 더러운 발톱 하나를 걸어두고선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지막 몇 발자국만 남겨뒀던 올틱스가 순식간에 녀석을 잘라냈다. 급습하는 맹금과도 같이 빠르고 조용했다. 그는 지금 극도로 짜증이 나 있었다.
오크 무리의 대열에서 쫓겨난 그롯의 여덟 갈래의 파도가 진눈깨비 평원을 가로질러 오수아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올틱스는 오크들이 수비대의 탄약을 소진시킬 정도로 어리석었는지, 아니면 그들이 그들의 노예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즐거워했던 건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잔인했던만큼 멍청했을 뿐이었다.
어느 쪽이든, 파도는 네크론의 대열과 부딪히며 갈대처럼 잘려나갔고, 수비대의 비참한 수리 상태에도 불구하고 고졸한 효능으로 소멸되었다. 아니면 적어도 올틱스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살아남은 것은 수비대의 빈틈을 발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스스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겠지. 올틱스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곤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문기둥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 위에 우뚝 섰다. 그가 작위를 빼앗겼을 때, 그는 이타카스의 빛나는 은빛 도금을 그의 강철판에서 태우는 박피 의식을 받았었다. 괴사되어 안쪽이 드러난 그의 네크로더미스(necrodermis) 피부는 용암 바위처럼 거칠고 밤처럼 어두웠으며, 그 위로 방전된 노드가 마치 녹빛 잉걸불마냥 가로질러 퍼져 있었다.
그롯의 시야엔 보이지 않았으나 그것들은 올틱스의 글리픽 카르투슈(glyphic cartouche) -왕조의 상징이자 그의 핵심 동력으로 직접 빛을 내는- 의 타오르는 불길로 점차 물들어가고, 그 위로 악의에 찬 경멸어린 눈동자가 외계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올틱스가 그의 중심핵에 자리잡은 밀도 높은 별을 점차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자, 더 많은 에너지가 플럭스를 통해 방출되기 시작하면서 그 빛이 녹색에서 불타는 흰색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원자로가 요란하게 울리며 그의 철판에 닿는 오염된 잿눈송이들을 증기로 만들어버리니, 마치 그의 분노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만 같았다. 비록 그것이 모욕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저 추잡한 것들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만들어버릴 순 있었다.
들쭉날쭉한 노란 주둥이를 드러내며, 흉측하고도 새빨갛고 가늘게 뜬 눈으로 그롯이 올틱스를 응시했다. 추위에 떨며 한참을 바라보던 놈은 특별히 경악하는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혼란스러워 보였는데, 결국 놈은 축축하고도 격한 기침이 된 꽥꽥소리와 함께, 그의 발판에 커다란 검은 점액 덩어리를 토해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끝끝내 그의 분노를 격노로 바꾸기엔 말이다.
인지의 영역에서 시작된 분노는 곧 빠르게 논리 상태의 붕괴로 접어들었고, 리프레이션(refrenation) 및 계단식 귀납 추리의 실패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정신과 육신이 진정으로 분리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대신 그는 곧 휘몰아치는 중심핵과 함께 불협화음이 그를 타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한때 피를 지녔던 감각이 그를 덮쳤고, 이 예상치 못한 자극에 올틱스의 마지막 자제력이 뜯겨나갔다.
발뒤꿈치가 짐승의 두개골을 납작하게 짓눌렀다. 그롯은 두개골 안에 담겨있는 액체를 뿜어내 그를 더더욱 분노케 했으며, 그 분노의 형상은 증기로 감싸진 방전된 노드들을 건드렸다. 다리의 철갑을 가로질러 부채꼴로 된 핏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의 교리 정신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살점이야!” 교리 정신이 비명을 질렀다.
그게 금기, 금기, 금기의 공포스러운 속삭임에 빠져들기 전에,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양의 청소 스캐럽들이 올틱스의 틈새 노드로 소환되었다. 하지만 올틱스가 그 모든 덩어리들을 치워버렸을 때, 분할 정신이 잃어버린 명예에 대해 애걸한 후에는 그는 그 거만한 작은 귀신이 고통스럽게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달리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분할 정신의 비명를 잠재웠다.
“프라이토르 네스(Praetor Neth)!” 울부짖는 바람 그 이상으로 큰소리를 내며 그가 외치자, 눈 덮인 오수아리 벽의 프리즈(frieze)를 타고 그 거친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이리 오라, 워든이여, 이리 와서 직접 설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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