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워해머 소설 번역/야른하마르 3부작 Jarnhamar

아사하임의 피 - 1장 : 고향으로 돌아오다(2)

by 맥주수염 2021. 2. 16.

 “형제여, 우린 다쳤어.” 건라우거가 말했다. 세어봐, 우린 로사날Lossanal에서 얼프Ulf를, 크타르C‘thar에선 스반프니르Svanfnir를, 그린 스킨들한테는 틴드Tínd를 잃었다고.”

 

 그가 말을 할 때, 그의 검은 눈동자가 장작의 따스한 빛을 반사했다.

 

 “우린 약해졌어.” 그가 말을 이었다.그가 돌아와야 해. 오로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마땅히 갈 곳이 어디 있겠어? 데려갈 사람은 있고?”

 

 발티르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가늘고 긴 얼굴은 불가의 열기로 달아올랐고, 그 불빛은 그의 빰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들을 드러냈다.

 

 건라우거와는 달리 그의 손은 고요했다. 발티르는 결코 날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 그의 장검, 홀드비터holdbitr는 언제나 그랬듯이 등에 매어 있었는데, 이 무기는 전투나 예법, 아니면 의례를 지키기 위해서만 뽑혔고, 그도 아이언 프리스트Iron Priest*가 그 안에 담긴 살인령spectres of murder을 보았을 때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언 프리스트 : 스페이스 울프의 테크 마린

 

 스베르드제라sverdhjera*는 기이한 일족으로, 그들의 무기를 마치 어린아이 돌보듯 수호하는 이들이었다.

 

 “그가 떠나기로 했잖소.” 발티르가 말했다. 그는 남을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우리는 그를 환영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는 경쟁할 수도-”

*스베르드제라 : 검의 대가Blade Master를 뜻한다

 

 “너도 그가 했던 것과 같은 선택을 했겠지.” 건라우거가 말했다. 나도 그랬을 거야, 그들이 부탁했다면.”

 

 불 속을 향해 그가 가래를 뱉었다. 미량의 산성액이 숯을 화르륵 솟구치게 만들었다.

 

 “반대할 수도 있어.” 건라우거가 말했다. “블랙메인께서 블러드클로Blood Claw*를 준비시켜 두셨다더군, 녀석이 우리와 호흡을 맞추길 원하시는 눈치야. 만약 그가 온다면 우린 다시 사냥하기 충분한 숫자, 여섯 명이 될 테고.”

 

*블러드클로 : 갓 스페이스 울프가 된 신병

 

 발티르가 코웃음을 쳤다.그게 지금 우리가 이 꼴이 된 이유요?”

 

 건라우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많은 무리pack가 상처 입고 있어.” 그가 말을 이었다. 매년 그 주기는 줄어들고 있지. 흐요르투르가 죽었을 때가 기억나? 우리가 그 이야길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기억나냐고. 근데 말해봐, 지금 베랑기가 사냥당해서 죽었다는 이야길 듣는다 한들, 그때처럼 놀랄까?”

 

 발티르가 싱긋 웃었다.

 

 “그대라면, 그럴 거 같소.”

 

 건라우거는 웃지 않았다. 불 속을 응시하는 그의 칼날이 빙글빙글 돌더니 손가락 사이로 번뜩였다.

 

 “나는 블러드클로를 받아들일 거야. ” 그가 말했다. 우리에겐 신선한 피가 필요해. 그리고 녀석은 올게이르Olgeir로부터 빨리 배울 테고, 하지만 그에 대해선....”

 

 발티르가 건라우거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블랙메인께서 선택하시겠지.” 건라우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하실거야.”

 

 단검이 멈췄다.

 

 “우리의 젊은 왕께선.” 그가 눈알을 굴렸다. 제법 날카로우시니까. 우리가Hel*이라도 가고 있는지 모르겠군. 안그래, 형제여?”

*헬: 펜리스인들이 믿는 사후세계

 

 잠깐은, 발티르가 대답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의 대가는 그의 날렵한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질문할 사람을 잘못 찾았소.” 그가 답했다.

 

 

 

 잉그바르는 블랙메인의 앞에 섰다.

 

 습관적으로 그의 눈이 야를Jarl*의 아머를 훑으며 약점을 찾아내고 그의 역량을 평가하며 효율적인 공격로를 탐색했는데, 이 모든 과정이 무의식인 행동으로서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야를: 스페이스마린 캡틴, 달리 울프로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잉그바르가 마지막으로 펜리스의 필멸자로 지냈을 당시만 해도 라그나르 블랙메인이라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진 않았다. 베렉 대중대의 블러드클로였던 라그나르는 이미 그때부터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였지만, 빙판 위를 견뎌낸 수많은 광전사들보다는 덜 유명했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늑대 새끼는 다 자라있었다. 라그나르의 얼굴에는 여전히 젊음이 넘쳤지만, 그의 아머는 다른 야를들이 그러하듯 흉터투성이에다 세월을 잊은 듯한 무공 훈장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베렉이 사용하던 옛 중대의 상징인 포효하는 늑대 문양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블랙메인의 닳고 닳은 견갑엔 룬문자가 그려져 있었고, 그의 허리춤엔 여기저기 긁힌 자국의 거대한 체인소드가 매달려 있었다.

 

 라그나르가 짧지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윤기 나는 구레나룻이 그의 양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각기 길게 땋아내린 모습이 어깨의 가죽 털과 썩 잘 어울렸다.

 

 “난 너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블랙메인이 말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잉그바르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팔뚝의 모든 털이 바짝 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를 두려워하고 있단 말인가..?

 

 “돌아온 기분은 어때?” 라그나르가 두 개의 돌 의자 중 하나를 권하며 물었다. 이상한가?”

 

 잉그바르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걸터앉았으나 마치 맨몸으로 노출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그의 검, 도즈브저dausvjer가 허리춤에 걸려 있었음에도, 그의 회색 털 망토가 팽의 끝없는 냉기를 막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그가 대답했다.

 

 라그나르는 반대편에 앉아있었다. 그의 행동은 대체로 무난하고 편해 보였는데, 그의 아머 체계에서 내는 기계음조차 조용했다. 그에게선 무언가 자신감, 열정, 활력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젊은 왕은 그림나르Grimnar의 연륜에 찬 위엄도, 스톰콜러Stormcaller의 원초적인 능력도 없었지만, 그와 직접 마주한 순간 잉그바르는 그가 어떻게 그토록 빨리 승급했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간에 있었던 일들이 궁금한데,” 라그나르가 말했다. “난 펜리스를 위해서만 봉사했거든, 내게 이야기 좀 들려줘.”

잉그바르는 야를의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조금, 유감스럽지만.” 그가 말을 받았다.무례를 용서하시지요, 주군. 허나..”

 

 “...이단 심문소가 이미 족쇄를 채워뒀나 보군.” 라그나르가 말을 끊었다.그리고나서 내 것이 됐단 말이지. 좋아, 그럼 비밀을 지키도록. 하지만 다른 자들은 널 더더욱 압박할 거란 것만 명심해둬라.”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잉그바르가 답했다. 말할 게 없는 건 아닙니다. 사냥은 훌륭했고, 전 다른 이들의 방식을 배웠으며, 그들은 저희의 방식을 배웠습니다. 믿기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그들은 함께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가 가장 뛰어났겠지.”

 

 잉그바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 또한 그러길 바랐으나,” 그가 말했다.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라그나르가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데스워치에서 복무한다는 건 많은 챕터들로부터 영광으로 여겨진다더군.” 야를이 말했다.

 

 “여기서는 그게 그리 큰 의미로 와닿지는 않지. 네가 그들과 함께한다고 말했을 때, 넌 네 무리를 깨뜨렸다, 잉그바르. 만약 내가 야를이었을 때 그들이 찾아왔더라면, 난 너를 떠나게 두지 않았을거야.”

 

 잉그바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베렉은 관대한 사람이었다.” 라그나르가 말했다.

 

 “그는 하고픈 대로 행동했고, 남들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내 말을 믿어, 나보다 더 그를 사랑한 자는 없었으니. 하지만 그것이 그의 약점이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해. 그는 네 안에서 뭔가를 봤겠지, 자이르팔콘. 그건 분명할 거야. 근데 너도 알잖아, 그때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흐요르투르가 살해당했을 때, 베렉이 그의 무리를 위해 뭘 해줘야할 지 몰랐다는 것을.”

 

 잉그바르는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옛이야기를 꺼내는 건 꺼려졌지만, 막지는 않았다.

 

 “너 스스로 도망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라그나르의 말은 계속됐다. “건라우거는 너와 겨루지도 못하고, 아무런 시련도 없이 울프가드가 됐다. 넌 그를 무시한 거야.”

잉그바르는 피곤한 듯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고향에 오자마자 이렇게 심문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오래 전 있었던 일을 가지고.

 

 “저는 그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소환이 와서 수락했을 뿐, 그때가 다시 온다한들 저는 똑같이 할 겁니다. 전 그들과 해낸 일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제 형제들과 함께 한 일들이 자랑스럽단 말입니다.”

 

 “어떤 형제들?”

 

 잉그바르는 무심코 그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힘을 풀었다.

 

 “전부,” 그가 말했다. 제 곁에서 싸웠던 모든 이들이 말입니다.”

 

 라그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아.” 그가 말했다.

 

 그의 두 손이 오므라들었다. 손가락에 연결된 세라마이트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딱딱하게 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라그나르가 말했다. 나는 그저 다른 이들이 그들의 가슴에 품고 있을 생각을 표현할 뿐이야.”

 “다른 이들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그나르가 충혈된 눈동자 위의 헤진 눈썹을 치켜올렸다. 처음으로 잉그바르는 그가 지쳐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이곳, 신들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질투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라그나르의 말이었다

 

 “넌 내가 여기저기 들려오는 속삭임들로부터 귀를 닫고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아직까지도 그들은 내가 너무 어리기에 울프로드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베렉이 나를 승급시킨 건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마른 웃음을 지었다.

 

 베렉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옳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나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 나는 그따위의 속삭임들을 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던 거야. 나는 네가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고 있는 지가 궁금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잉그바르가 말했다.

 

 “나는 네가 확신한다고 느끼지만, 혹시 모르니 네가 우릴 떠난 이후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말해주자면. 건라우거는 야른하마르 무리를 탁월하게 이끌었다. 그는 발티르와 훌륭하게 협력했고, 무리 전체가 강해졌지. 흐요르투르의 죽음에서 일어섰고, 너의 빈 자리를 잘 채워주었다. 그런고로 나는 지금 고민이 있어. 너를 그들에게 돌려보내야하나,는 고민이야. 다른 칼을 써도 좋겠지만, 지금은 네가 더 걱정되는군. 지휘권을 두고 너는 한때 건라우거의 경쟁자였잖아. 어때, 그를 섬길 수 있겠어?”

 

 잉그바르는 시선을 들어 야를의 지친 눈동자 속 금빛 안광을 똑바로 보았다.

 

 “그런 질문은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네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을 정하는 중이야.”

 

 잉그바르는 그의 자존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펜리스의 불가해한 위계질서 속에서 블랙메인이 그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야를의 말은 법이었고, 그가 헬의 아가리로 들어가라 명령하면 잉그바르는 절대적인 복종을 해야만 했다.

 

 너무 어려.

 

 “돌려 보내주시지요, 주군.” 잉그바르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어조는 부탁이 아닌 고집에 가까웠다.

 

 “건라우거는 언제나 저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제가 떠나지 않았다 한들, 그는 베랑기가 되었을 것이고 저는 기꺼이 그를 따랐을 겁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 무리에 속해 있으니까요.”

 

 라그나르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나는 그때의 너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데스워치가 널 변화시켰는지도 알 수 없어. 하지만 그들은 알겠지. 만약 이단심문소가 네 생각을 바꿨었다면, 그들 또한 네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야.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라, 우린 그 이름만큼이나 성질 급한 늑대들이니.”

 

 그 말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잉그바르의 몸이 번개처럼 튀어올랐고, 순식간에 그의 검이 허리춤에서 뽑혀있었다.

 

 예리한 검날이 라그나르의 목 앞에서 멈춰섰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경색된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라그나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건 칼이야, 잉그바르.” 그가 말했다.많이 본 물건이지.”

 

 그는 자신을 방어할만한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는데, 둘 모두 현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진실로 잉그바르가 라그나르를 위협할 생각이었다면, 그의 검이 검집을 떠나기도 전에 라그나르가 그를 죽였을 것이었다.

 

 “오래된, 검입니다.” 잉그바르가 말했다. 그의 피가 관자놀이로부터 솟구치고 있었다.이곳만큼 오래된 물건이고, 이곳의 고리만큼이나 오래되었죠.”

 

 라그나르가 잉그바르의 시선을 그대로 응수했다.이곳은 유물로 가득 차 있는데, 어쩌라는 거야?”

 

 “이건 베렉께 하사받은 겁니다.” 잉그바르가 말을 내뱉었다.

 

 “이건 그의 것이었고, 그 이전엔 다른 많은 이들의 것이었습니다. 백 명의 손을 거쳐서 그들 모두의 흔적이 자루에 남아 있다는 겁니다. 이 검은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으며, 지금껏 맛 본 피만 해도 세상을 잠기게 할 수 있을 정도죠. 그는 이 검으로서 저를 영광되게 만들어주었고, 저는 그 이후로 다른 검은 일절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수십 년 전의 사건들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해냈다.

 

 "심지어 그들이 제게 터미네이터 아머조차 양피지처럼 잘라버릴 수 있는 제노 글레이브xenos glaive를 가져가라고 했을 때도 말이죠. 저는 이 검과 함께 우주를 헤쳐나갔고, 고향에 대한 메마른 속삭임들을 들었으며, 이게 제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되새기기 위해 휘둘렀습니다.”

 

 검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역장은 켜져 있지 않았으나, 그 표면엔 실처럼 얇은 은색 선을 따라 룬의 윤곽이 뚜렷하게 비쳤다.

 

 “이 검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베렉께선 이를 피올스바드피fjorsvdfi라 부르셨고, 그 외에는 헬스버드helsverd, 플러드스테프너floodstefna, 둠흐링거doomhringir 등 다양하게 불리기도 했죠. 전설의 시대, 오그림 레그르 브라프손Ogrim Raegr Vrafsson이 지니고 다녔을 땐 ‘도즈브저’라는 이름을 가졌었고요. 이미 이 검은 저희 삶의 일부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선택받은 이만이 휘두를 수 있지요.”

 

 라그나르의 황금빛 눈이 잠시 감겼다가 칼날의 끝에 그 시선을 고정시켰다.

 

 “베렉께선 제가 이 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된다고 여기셨습니다.” 잉그바르의 말엔 열기가 담겨있었다. 당신이 야를이 될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바로 그 말입니다! 당신 또한 그의 판단을 믿었잖습니까!”

 

 여전히 그는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굳건히.

 

 “전 러스의 아들입니다.” 잉그바르가 강조했다.제겐 증명해야 할 것 따윈 없는 것 같군요.”

 

 라그나르의 눈동자가 다시금 번쩍 떠졌다. 그 상태로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다.

 

 블랙메인의 호박색 눈이 잉그바르의 회색 눈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마치 그가 어떻게든 그 너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점차 강렬해졌다.

 

 반대로, 잉그바르는 점점 블랙메인을 마주하는 것에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라그나르의 시선을 간신히 받아내는 것만 해도 벅찰 지경이었다.

 

 그 앞에 선 이는 절대적인 확신과 믿음의 화신이었다.

 

 그 누구도, 베렉도, 심지어 흐요르투르도, 그런 타고난 위엄으로 스스로를 무장하진 못했었다.

 

 젊은 왕.

 

 그때까지도 칼날은 제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결국 라그나르가 지친 듯 고개를 저었다.

 

 “이쯤하면 된 거 같군.” 그가 잉그바르에게 검을 집어넣으라고 손짓했다. 이 일은 연극으로 결정될 게 아니니, 일단 앉도록 해.”

 

 잉그바르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제서야 그는 그의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빈손을 의자에 두니 냉기가 올라왔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자이르팔콘.” 라그나르가 말했다. “네 기개가 마음에 들어.”

 “그럼 절 돌려보내 주시죠.” 잉그바르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라그나르가 미소를 지었지만, 그 안에 온기는 없었다. 그저 얼굴을 찡그렸을 뿐.

 

 “아마도.” 그가 말했다. 그리 할 생각이야, 너도 그래야만 할거고.”

 

 잉그바르는 야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라그나르에게선 정신 나간 수준의 자신감과 탈진한 것만 같은 피로감이 뒤섞인 기묘한 공존이 엿보였다. 대중대를 이끌어간다는 건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고된 일이었으리라.

 

 “은하가 변하고 있어.” 블랙메인이 말했다.

 

 “늙은 야를들은 지혜를 잃어가고, 어린 것들은 힘을 잃어가지. 스톰콜러는 매일 밤 꿈을 꾸는데 그 꿈이 그를 초췌하고 만들고, 힘을 쉽사리 쓰지 못하게 만든다더군. 그 그림나르조차 예전처럼 웃지 않고 있다.”

 

 울프로드가 두 손을 맞잡자 각기 천 개의 목숨을 앗아갔을 그 치명적인 두 건틀렛이 거대한 무덤을 형성했다.

 

 “한동안 야른하마르를 이곳에 머물게 하고 싶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힘을 회복해둘 필요가 있고, 나는 이 결정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끌고 싶은 심정이야.”

 

 잉그바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 딱히 대답을 바라진 않았던 듯, 곧바로 라그나르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야만 해. 그리고 이런 때야말로 지혜가 가장 먼저 바닥나는 법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 일은 최대한 빨리 결정하도록 하지. 곧 너도 알게 될 거야.”

 

 잉그바르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그 후엔, 주군.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넌 여전히 칼을 지니고 있으니.” 라그나르가 답했다.고향의 의례를 다시 익히고, 칼끝을 날카롭게 유지해라.”

 

 라그나르의 얼굴이 엄숙히 가라앉았다. 그의 혈기 넘치는 황금빛 안광이 불빛을 적시고 또 비쳤다.

 

 자신감, 그리고 피로감.

 

“내가 너를 어디로 보내든지 간에,” 그가 말했다.그게 필요할 테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