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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해머 소설 번역/야른하마르 3부작 Jarnhamar

아사하임의 피 - 서장

by 맥주수염 2021. 2. 7.

 

 

아사하임의 피

 

 

서문

 

 목구멍에서 핏덩이가 솟구쳤다.

 

 갈라진 입술과 깨진 송곳니 사이로 쏟아진 그것에는 피거품과 뼛조각들이 섞여 있었다. 철갑이 구부러지는 것을 느끼며, 쇳소리와 함께 그는 불안정한 걸음걸이를 이어갔다.

 

 총성, 위쪽에서 총성이 울려 펴졌지만, 그건 그저 하늘을 떠다니던 아르주트급 중형 보병 수송선의 느린 죽음을 고하는 응어리진 분노였을 뿐, 별로 신경 쓸 소음은 아니었다.

 

 제국은 별로 아쉬울 게 없었다. 저런 기체 수백만 척을 마구 던지고서도 내색조차 안 할 것이었다.

 

 다시금 목구멍이 수축되는 것을 느끼며 이전보다 더 많은 피를 토했다. 이에 그가 미소를 짓자, 격자로 그을린 흉터 중 그나마 약한 부위의 살점이 찢어져 나갔다.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피투성이, 짐승 살해자, 이야기꾼이었던 펜리스의 울프 가드를, 베렉 썬더피스트의 베랑기vaerangi* 를, 흐요르투르 아지르 흐밧 블러드팽Hjortur Ageir Hvat Bloodfang을 제국은 그리워할 것이다. 영웅담들은 그의 죽음을 기념할 테요, 필멸자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흠모했듯 그를 두려워하고 흠모하는 스칼드skjald*들에 의해 그의 영웅담은 고향의 얼음 궁륭에서 이야기될 터였다.

 

*베랑기vaerangi: 울프가드를 뜻하는 펜리스어

*스칼드skjald: 이야기꾼을 뜻하는 펜리스어 

 

 그는 다리를 절면서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핏줄기가 턱을 타고 흘러내리며 덥수룩한 수염으로 스며들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는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으나, 그 이상의 상처를 놈들에게 입혀줄 수 있었다. 하지만, 러스의 피에 대고, 그는 놈들에게 좀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만들었어야 했다.

 

 비틀거린 순간, 결국 그는 무릎을 꿇고야 말았고 덕분에 깨진 무릎 보호대의 균열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깜빡거리며 맛이 가버린 헬멧 안쪽에서, 그는 다 갈라진 채 꺽꺽거리는 그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위쪽 천장에는 불타버린 파이프라인들이 어지러이 얽혀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둠 속에서 나무줄기가 뻗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곳 어딘가에선 붉은빛이 박자에 맞춰 회전하는 것이 보였고, 더불어 지나치게 큰 경고음이 들려왔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더 먼 곳, 더 아래쪽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분명 쇠로 된 부츠가 바닥과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이었으며, 총탄이 장전되는 장전음이었다.

 

 흐요르투르는 다시 일어섰다. 밀폐된 복도들을 달려나가 가파르게 꺾인 아래로 뛰어들었고, 그곳엔 수송선의 기관실이 있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금속들은 뜨거웠다. 그는 그것들에 기대어 비틀거렸는데, 부딪칠 때마다 그의 아머들이 조각조각 깨져나갔으나 그는 계속해서 그렇게 걸어 나갔다. 그는 완전히 포위되어 궁지에 몰렸음을 직감했다.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20미터 가량 뒤편에서 누군가 기척을 숨긴 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히 숨기기엔 충분치 않았다.

 

 흐요르투르의 허리가 비틀리며 단박에 방아쇠가 당겨졌고, 탄환이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것을 그의 핏물에 절은 눈동자로 지켜보았다. 누가 쓰러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머가 파괴되는 소리와 살점이 조각나는 소리, 그리고 질식할 듯한 폭발음을 통해 그는 누군가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 순 있었다.

 

 비명 따윈 없었다. 그를 습격한 사냥꾼들은 절대로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는 놈들의 정체도 몰랐다. 아마 인간이긴 할 테지. 만일 그렇다면, 녀석들은 고도로 증강되고 생체공학적으로 시술된 이들일 게 확실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그처럼 움직였고, 거의 그에 못지않게 타격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우려스러운 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다시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고, 망가진 호흡 아래 끓어오르는 가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망막 디스플레이는 이제 그를 향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가 얼마나 심한 부상을 입었는 지 상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두 개의 폐는 제 기능을 못했고, 흉강은 피로 차 있었으며, 칠십 개의 작은 골절들과 여섯 개의 큰 골절들과 함께 그의 피부는 플라즈마로 인해 군데군데 녹아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고통과 통증 억제제로 뒤섞여 그의 몸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좋지 않았다. 그 옆의 배처럼, 그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더 많은 수의 발자국들이 복도를 덜커덩거리며 내려오는 것을 들었고, 사냥꾼들이 웅크리고 앉아 사격 자세를 취하면서 침묵이 찾아왔다. 그 순간, 그가 질주하기 시작했고, 끔찍한 고통이 산산조각난 그의 정강이를 타고 올라왔다.

 

 눈 깜짝할 사이, 복도는 회오리바람으로 가득 찼다. 동시에 굉음을 내며 날아드는 총탄들이 그의 등판을 후려쳤고, 곧이어 그는 그것들이 손상된 세라마이트를 찢고 그 밑의 살갗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T자형의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 그는 구석으로 몸을 던져 엄폐하는 데 성공했고, 바닥에 부딪혀 헐떡이며 총탄 세례가 터져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교차로는 어두웠다. 공기에선 엔젠의 기름과 선박의 고인 물맛이 났다. 칠흑 속에서, 그는 다섯 걸음 앞조차 거의 볼 수 없었다. 눈을 깜빡이니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총성이 그쳤다. 그는 2초를 더 기다렸고, 놈들 중 처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 복도를 뛰어는 녀석을 기다렸다. 그는 놈들이 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심지어 아래층 갑판의 악취 나는 혼합물 너머로도 놈들의 낯선 냄새를 감지할 수 있었다.

 

 누구냐, 넌? 대체 어떤 종류의 괴물체인거냐?

 

 첫 번째 녀석이 다가오자, 드디어 그의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그의 크고 파괴적인 육신이 움직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복도로 뛰어들었고, 두 파워 클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격자는 미끄러지듯 멈춰섰지만 이미 기름기 낀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아머가 그의 코앞까지 전진해있었고, 뒤늦게나마 뒤쪽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그 추진력으로 인해 치명적인 상태에 처하고 말았다.

 

 흐요르투르의 발톱들이 맹렬하게 몰아쳤다. 거기에 씌워진 동력장은 진작에 소진된 지 오래였으나, 깊게 갈린 칼날은 여전히 날카로워 사냥꾼의 아머를 가르고 녀석을 꿰뚫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의 공세가 한층 더 매서워졌고, 적의 갈비뼈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면서 가까운 벽면에다 놈을 날려버리니 사냥꾼의 몸뚱아리는 그저 하나의 혈구에 불과했다.

 

 다른 한 녀석은 지나치게 가까웠다. 놈은 클로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히 물러났는데, 검은 팔다리가 금속 위로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벌레와도 같았다.

 

 흐요르투르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발톱이 아래로 휘갈겨지며 사냥꾼을 다시 끌고 들어왔다. 꿰어진 전사는 몸을 비틀려고, 총을 집어들려고 노력했지만, 이 일련의 행동들이 모두 너무 느렸다.

 

 그는 다른 발톱을 내려치며 사냥꾼의 헬멧을 짓이겼고, 바이저와 두개골을 유리조각 섞인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피가 흐요르투르의 팔뚝을 따라 튀어 올랐고, 이미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핏줄기와 오물들에 버무려졌다.

 

 그때, 이미 겪은 적 있던, 그의 아머에 단단한 고철들이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둘,셋 직격으로 박힌 총탄들이 그의 등을 흔들었고, 그의 가슴판 사이의 틈새로 뚫고 들어가 살점을 찢어버리고 뼈를 부러뜨렸다.

 

 흐요르투르가 빙그르르 돌아서며 으르렁거렸고, 어둠 속에서 목표물을 찾기 위해 붉게 물든 시야를 깜빡였다. 그런 그가 처음 파편 수류탄을 눈치챈 건 팅-팅-팅거리며 복도를 튕겨 내려오는 부드러운 소리 덕분이었다.

 

 만약 그의 감각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는 그것을 좀 더 빨리 발견했을 것이다. 만약 그의 근육이 찢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제 때에 뛰어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의 아머가 깨져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폭발을 견뎌냈을 것이다.

 

 수류탄이 터졌다.

 뒤이어 충격파가 그를 덮쳤고, 그의 육신은 그대로 뒤로 내동댕이쳐져 교차로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흐요르투르의 머리는 거칠게 젖혀졌는데 그의 뒤틀린 목에선 이제 새로운 종류의 고통이 날카로운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그보다도, 그는 그의 내면에서 더 날카로운 무언가가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뜨거운 핏물이 그의 오장육부를 타고 흘러넘치는 게 느껴졌다.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심한 현기증이 그를 엄습했다. 손이 차가워지면서 그는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대는 손가락으로 인해 볼터가 떨어지는 것을 무력하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휘청거리면서도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불현듯 그는 그의 앞에 서 있는 수많은 이들의 실루엣을 보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을 향해 어설프게나마 주먹을 휘둘렀는데 칼날 하나가 그의 팔목을 꺾으며 왼편에서 튀어나왔다.

 

 흐요르투르는 그의 부서진 팔뚝 보호대 아래로 차가운 금속이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그대로 그의 클로와 함께 잘라버리는 것도 느꼈다.

 

 더 많은 칼날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예상대로 그것들은 모두 그의 몸속으로 찔러 들어왔고, 넝마나 다름없는 그의 몸뚱이를 꼬챙이에 꿰듯 금속 갑판에 꽂아 고정시켰다.

 

 그의 등이 아치형으로 굽었다. 그의 입에선 너덜너덜해져, 쉬어버린 신음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사냥꾼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는데,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계속해서 칼끝을 찔어넣었다. 마치 그가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들은 그의 발목에 족쇄를 채웠고, 그의 몸통을 따라 홈을 파내어 핏물로 반들거리는 내장을 드러냈다. 그의 다리와 목을 가로질러 쇠사슬을 묶었고, 그의 머리는 바닥으로 다시 끌어당겼다.

 

 그 모든 일이 끝났을 때, 흐요르투르 아지르 흐밧 블러드팽, 펜리스의 울프가드, 베렉 썬더피스의 베랑기는 수집가에 의해 박제된 곤충처럼 아르주테급 중형 보병 수송선의 하단 갑판에 박제되어있었다.

 

 열두 개의 짧은 칼이 그를 그 자리에 고정시켰고, 여섯 개의 아다만티움 사슬이 그를 붙잡았으며, 일곱 개의 대못은 그의 가슴에 박혀 각기 반쯤 응고되다 만 피 분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오로지 그 하나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흐요르투르는 축축하고도 음울한, 만족의 코웃음을 토해냈다. 그는 고통의 신기록을 세웠다.

 

 그가 죽인 사냥꾼들, 그 수가 얼마나 됐지? 한 백 명은 됐을 터였다. 이건 분명 중대한 작전이었을 게 틀림없었다. 놈들은 제대로 준비해서 왔었으니까.

 

 흐릿한 검은 형체들이 물러나는 게 보였다. 흐요르투르는 고개를 들려고 했으나 곧바로 쇠사슬이 팽팽히 당겨졌다. 그의 숨결이 가파르고 짧게 헐떡거렸다. 그는 자신의 아머가 점차 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고,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라. 흐요르투르는 정신이 혼미했다. 죽음이라는 거지.

 

 사냥꾼 중 하나가 연기에 휩싸인 환영처럼 그 얼굴을 드러냈다. 덕분에 그는 가까이 다가온 헬멧의 흐릿한 윤곽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놈의 이마에 새겨진 황금빛의, 비탈길에 박힌 듯한 모양으로 천사의 상징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머가 반짝거리는 것을, 무광의 검은색과 그 테두리가 은빛으로 되어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차디찬 총구의 기름기를 맡을 수 있었으며, 전원함이 돌아가는 것도 희미한 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주변의 세계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집중했다. 집중하여 그의 살인자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작정했다.

 

 펜리스.

 

 문득 그 단어가 그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거대하고 새하얀 눈으로 뒤덮힌, 아사하임Asaheim의 봉우리들이 서릿발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는 더 이상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그곳의 칼바람을 혀끝으로 느낄 수도 없을 것이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지금 그의 몸에 새겨진 백 가지 상처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흐릿한 형상이 더 가까이 다가왔고, 흐요르투르의 옆에 무릎을 뚫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흐요르투르는 유리처럼 빛나는 바이저에 자신의 얼굴이 어둡게 비치는 것을 보고는 간신히 그 자신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대신하겠지, 그가 생각했다. 늑대 무리엔 지도자가 있어야하니까.

 

 사냥꾼이 끝이 뽀족한 총을 꺼내들었다. 기묘하게 생긴 무기로, 구부러지고 넓은, 조각과도 같았다. 흐요르투르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내가 후임자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자이르팔콘Gyrfalkon? 건라우거Gunnlaugur?

 

사냥꾼이 흐요르투르의 골절된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곤 그대로 살갗과 함께 찔러넣었다. 극심한 고통의 불협화음 속에서, 흐요르투르는 간신히 정신을 붙들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군지 아는가?’

 

 그 목소리는 심하게 변형되어, 깨진 복스 변환기로 흘러들었다. 인간인 거 같기도 했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흐요르투르는 대답하려고 했지만, 이미 차오를 대로 차올라 목구멍과 입안으로 넘쳐흐르는 피로 인해 재갈을 문 것처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뾰족한 총구 탓에 관자놀이가 헤집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사냥꾼은 자유로운 그의 남은 손을 뻗어 헬멧 옆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그의 바이저가 내려갔고, 짙은 붉은빛 내부에 놓여있는 하나의 수척한 얼굴이 드러났다. 흐요르투르의 살인자가 더 가까이 붙었다.

 

 ‘누가 우릴 보냈는지 아는가?’

 

 나는 그들 중 한 명을 선택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했어야 했는데, 베렉께선 누굴 뽑을 생각이시지?

 

 흐요르투르는 집중하려고 애썼다. 힘든 일이었고, 그의 세계는 유리 위로 서리 끼듯 점점 더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사냥꾼은 그의 왼쪽 손바닥을 보였는데, 그 안에는 작은 황금빛 천사의 얼굴이 가시관으로 둘러싸인, 검은 가죽 같은 것에 포개어있었다.

 

 ‘누가 우릴 보냈는지 아는가?’

 

 내가 선택했어야 했어.

 

 마지막으로 단 한 번, 그는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이라도 그의 시야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발악했다.

 그리고나서, 깨달음이 밀려왔다. 깨질듯한 두통처럼.

 

 ‘그래,’ 목이 멘 목소리로, 흐요르투르가 답했다.

 

 살인자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얇고 가식적인, 메마른 겨울 같은 만족감이 담겨있는 그런 미소였다.

 

 ‘좋군, 자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서 정말 마음에 들어.’

 

사냥꾼이 방아쇠를 당겼다. 볼트가 흐요르투르의 뇌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이는 연극적인 몸짓이었고, 이미 그에게 닥친 죽음에 대한 불필요한 가속제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이 자비를 베푸는 행위는, 다른 시대에선 암살자의 예우라고 불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흐요르투르는 필사적으로 몇 초 더 버티며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미 그의 몸은 굳어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몸은 고통스러운 폭발로 가득 찼고, 외로이 뛰던 심장도 잠시 부풀었다가 이내 축 처졌다. 부러진 턱에선 피투성이의 침이 줄지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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