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른하마르JARNHAMAR
1장
U-6743을 떠난 후, 그는 오렐리아Orelia에서부터 워프를 통해 이단심문소 소속 순양함 결벽증Obsession for Integrity을 타고 꽤 오랫동안 공간 도약과 진저리나는 여정을 거쳤다.
그의 꿈들은 언제나 우주의 지옥을 건널 때처럼 좋지 않았는데, 그 탓인지 그는 항해간 독방에 남아 남들과 어울리지도, 음식을 거의 먹지도 않았다. 강행된 일주일 동안 강철 벽도 끊임없이 계속 덜덜 떨어댔다.
순양함은 니샤가르Nishagar의 현실 우주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그는 이단심문관 할리아피오레Halliafiore의 통신 요원에게 마지막이자 최소한의 공식적인 파견 종료 의례를 치렀다. 아직까지도 그가 간직하고 있던 대부분의 물품들, 아껴둔 오닉스 해골 펜던트와 그가 이전부터 선호했던 고드윈-마크제 보다 더 선호하게 된 스토커 볼터 등도 그때 제출했다.
기기들, 처치 기록이나 아머 장식 따위의 나머지 물품들은 잃어버렸지만, 그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반쯤 남은 꿈들의 편린이었고, 기억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는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로는 이름도 모를 임페리얼 네이비의 호위함에서 중거리 항해를 이어갔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의 흐릿한 회색 눈길이 승무원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는 점만 빼면.
그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으나, 그들이 그를 향한 경외심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은 그를 약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카트야크Kattyak에 다다르고서야 그는 비로소 펜리스로 가는 쾌속정, 이베크Yvekk로 갈아탈 수 있었다. 승무원들은 전부 카알kaerl*에다 낡은 엔지나리움 격벽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이베크의 승무원들은 쥬비카Juvykka*가 섞인 말로 그에게 말을 걸기는 했다.
고딕어에 오랫동안 노출됐던 그였기에, 그마저도 한동안은 꽤나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카알들은 그를 경외하진 않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게다가 그들은 하늘의 전사에게 건네야 할 적절한 존경의 예를 표할 줄도 알았기에 그 또한 큰 도움이 됐다.
*카알: 펜리스의 행성방위군
*쥬비카: 펜리스의 방언
고딕어에 오랫동안 노출됐던 그였기에 그마저도 한동안은 꽤나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카알들은 그를 경외하진 않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게다가 그들은 하늘의 전사에게 건네야 할 적절한 존경의 예를 표할 줄도 알았기에 그 또한 큰 도움이 됐다.
마침내, 그들이 펜리스 성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면사포 지대를 뚫고 나아갔을 때, 그는 갑판 위에서 중얼거리는 쥬비카 어를 들을 수 있었고 약간의 즐거움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그 언어는 그의 어린 시절 곧잘 듣곤 했던 소리였으며, 그가 사냥할 때 얼음 위에서 내질렀던 소리였고, 스페이스 마린이 된 후엔 프리스트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소리였던 것이다.
삶의 모든 즐거움이 의무에 짓눌려 포기된 것은 아니었던 듯, 링 이양의 마지막 순간은 그를 추억 속에 잠기게 해주었다. 그 소리, 그 냄새, 오래된 건조 모피의 질감과 룬이 새겨진 강철들, 잘 말린 가죽들과 아머에 눌린 머리카락까지.
순간 속에서 그는 다리 위로 올라섰고, 화면을 바라보며 필멸자들과 서비터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입항 절차를 준비하는 것을 둘러보았다.
행성의 회백색 곡선을 따라 전방의 시야가 가득 찼다.
그는 북반구를 떠돌며 거대한 폭풍우 속 소용돌이로 뒤틀린 구름의 천둥을 보았다. 그는 저 구름의 그늘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문득 저 각진 빗줄기 기둥을 망치로 두들겨 대양을 납작하게 만들고, 그것들이 포절선에 다다를 때까지 고군분투하는 드렉카르drekkar의 갑판을 적시는 상상을 했다.
아주 오랫동안 가까이서 살아온 이 행성의 폭력성을 멀리서 본다는 건 이상하고도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잠시 떨어져 있었음에도 분명 이상한 일이었음엔 틀림없었다.
쾌속정의 선장, 루릭Rurik은 눈처럼 회색빛의 피로한 얼굴을 한 채 서 있는 그에게 몸을 흔들었다. 루릭은 워프의 마지막 장막을 넘어왔을 때부터 줄곧 말을 걸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이는 비굴하다기보단 그저 주군들 중 한 명과 한번 말을 섞어보고자 하는, 이해할 수 있는 소망일 뿐이었다.
하늘의 전사가 오늘처럼 이베크와 같은 지원선을 타고 다니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 타게 된 건 긴 시간 이곳의 지휘 체계에서 떨어져 있어 잘 몰랐던 탓이었지만.
‘돌아와서 좋으십니까, 주군?’ 루릭이 물었다, 감히 미소를 지으며.
한때는 자이르팔콘Gryfalkon이라 불렸던, 잉그바르 옴 에버슨Ingvar Orm Everrson은 그 질문에 대해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화면 속 시야로 행성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아니면 궤도 방어 기지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것처럼, 무수한 감정들의 격류가 그의 몸을 통과해 흘러가고 있었음에도 그는 그러한 감정들을 분석하거나 분류할 수조차 없었다.
똑같으면서도 똑같지 않았다. 너는 같은 강물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 칼리마쿠스Callimachus는 제국 그 자체가 만물을 앞섰던 지혜의 파편이라는 오래된 격언을 전해주며 그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구름을 뚫고 그 아래의 폭풍우 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라도 하듯, 잉그바르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아래 어딘가에 얼음이, 그가 왔던 곳이, 그를 벼려낸 야만적인 고향이 있을 터였다.
돌아와서 좋냐고?
‘배를 착륙시키게.’ 그의 어조는 부드러웠으나, 그 회색빛 눈동자만큼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래에서, 그가 다시금 그의 발밑에 있는 산의 화강암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낯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어쩌면 맡아본 냄새였을지도 모르고, 그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57년이라는 시간은 분명 그에게도 긴 시간이었다.
잉그바르는 아로마 혼합물을 그에게로 여과시켰다. 오랜 세월 단련된 그의 감각은 더 풍부하고, 더 깊어졌으며, 더 넓게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덕분에 그는 숙달된 전투 형제들이 놓칠 법한 흔적들도 찾아내곤 했다.
어뎁투스 아스타르테스의 모든 전사들은 그들이 초인이 되는 과정 중 정제되었다고 믿는데, 블카 펜리카Vlka Fenryka*는 그런 전사들보다 이러한 점들에서 더욱 특화되었다고 믿었다.
*블카 펜리카: 스페이스 울프를 지칭하는 펜리스어
잉그바르는 그런 자만심을 의심하는 법을 배웠었다. 펜리스의 늑대들은 자화자찬하곤 했지만, 에트Aett의 홀에서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그는 그것들의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그는 오닉스와 그 다양성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잉그바르는 항상 칼리마쿠스보다 예민했고,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사냥감의 냄새를 맡았었다. 조셀린Jocelyn보단 훨씬 빨랐고, 레오니데스Leonides를 상대로는 시험해보지 않았었다. 그들은 모두 그에 대해 웃곤 했는데, 그들은 그의 뛰어난 감각을 보며 신기해하면서도 인상적이라고 느끼곤 했다.
‘그렇게 냄새를 잘 맡으면,’ 블러드엔젤 레오니데스가 말했다. ‘대체 왜 그리 안 씻는거야?’
잉그바르는 그 웃음을 기억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제들끼리 모인 새로운 무리에 갓 끼어든 블러드클로가 해야했던 일들도 기억했다. 제 자리를 찾고, 서열을 정하고, 그에 걸맞는 일들을 행하는 것 등.
만약 그때 그가 진지하게 대답하고 싶어했다면, 그는 후각이 쉽게 과소평가될만한 능력이라고 지적했을 것이었다. 후각은 위험을 재빠르게 경고해주었고, 적들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게 해줬으며, 타락을 드러낼 수 있었기에.
근데 그렇다고 그들이 감명 받았을까? 아니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울트라마린을 감동시키긴 어려웠다. 블러드 엔젤도 얼추 비슷했고.
잉그바르의 코로 숨을 들이쉬며 심호흡을 했다.
잔잔한 습기로 축축히 젖은 오래된 바위부터, 20미터 아래쯤 누군가 흘린 식은땀, 교체 기간이 지난 엔진의 윤활유, 경화된 가죽, 먼 곳에서 온 엠버들과 부식된 청동,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본 외계 물질까지.
잉그바르는 자신을 향해 조소를 지었다.
이게 나구나, 그저 이방인에 불과한.
돌이 포자를 짓누르듯 에트는 내가 더 이상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을 막고 있는 문은 두 개의 놋쇠 고리로 잠겨있었는데, 그 고리는 각기 용과 크라켄, 그리고 바다뱀의 조각들로 화려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문틀은 순수하게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가 걸어 내려온 터널의 벽처럼 뭉툭하고 들쭉날쭉한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펜리스식 병치였다.
“열게.” 그가 입을 열자 잠긴 그의 목소리가 주변의 돌을 타고 둔하게 울려 퍼졌다.
청동문이 부드럽게 미끄러져 열렸다. 그리고 그 안쪽, 연기가 자욱한 화로에 은은히 불이 켜져있는 방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한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 자이르팔콘.” 라그나르 블랙메인Ragnar Blackmane이 말했다.
“거 진짜요?” 발티르Váltyr가 물었다.
건라우거Gunnlaugur가 투덜거렸다. “그래.”
발티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언제 말했소?”
“6시간 전.”
“스킷쟈Skítja*” 발티르가 욕설을 내뱉었다.
*스킷쟈: 시발, 제기랄 등과 유사한 펜리스어.
“쾌속정으로 들어왔다던데, 그들이 군함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만약 그들이 그걸 보냈더라면 내가 좀 더 일찍 알 수 있었겠지.”
발티르가 가느다란 두 손을 맞잡았다.
“그가 돌아올 거 같소?”
건라우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내게 왜 말했겠어?”
두 사람은 화로에 몸을 웅크리고선 은은한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었다.
건라우거의 숙소는 아사하임의 칼바람이 사냥꾼의 틈새Hunter’s Gap를 넘어오는 가장자리로. 팽의 동쪽 측면에 위치한 고지대였다. 드물게 맑은 날에는 외벽에 설치된 좁은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전투 아머를 벗은 두 전사의 몸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남들이 해골파쇄자Skullhewer라고 불렀던 건라우거의 온몸이 우락부락한 근육질이었고, 앞의 전사에 비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키가 작았다는 것만 빼면.
그의 수염은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회색빛을 보이며 뻣뻣해졌지만, 그래도 그의 짧게 깎은 머리는 아직까지도 불꽃처럼 붉은 머리카락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의 용모는 한때 그가 필멸자던 시절, 게링스Gaellings 부족의 족장 자리를 차지했을 때처럼 변함없는 엄격함과 잔혹함을 담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육중해져 공격적인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화로 앞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있는 그는, 크고 구부정한 자세로 있었고, 어깨는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는 두껍고 섬세한 손으로 단검을 튕겨내는 놀이, 킬링 엣지killing edge를 즐기며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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